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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자동차] 블랙머니, 5조원, 그리고 BMW

발행일 : 2019-12-06 04:13:05
[영화 속 자동차] 블랙머니, 5조원, 그리고 BMW

1997년, 대한민국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진 후, 정부는 부실화된 외환은행을 정상화하기 위해 해외 자본을 유치한다. 출자자로 나선 독일 코메르츠방크는 “대한민국 정부도 증자에 참여하라”고 요구했고 정부는 이를 수락한다.

그러나 추가 증자에 부담을 느낀 코메르츠방크와 정부는 외환은행 매각을 추진한다. 국내 시중은행들이 모두 거절하자 2003년에 미국의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나선다.

지난 11월 13일 개봉한 영화 ‘블랙머니’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얽힌 사건을 모티브로 각색된 작품이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이 IMF 사태를 다큐멘터리처럼 다루는 반면, ‘블랙머니’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릴러를 보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최 차장(류승수)은 쌍용 렉스턴에서 차 사고로 죽음을 맞게 된다 <최 차장(류승수)은 쌍용 렉스턴에서 차 사고로 죽음을 맞게 된다>

BMW코리아의 초대로 개봉 한 달여 만에 본 이 영화에서 기자가 주목한 점은 엉뚱하게도 PPL을 어떻게 다뤘을까 하는 점이었다. 지금까지 BMW가 초대한 영화가 PPL과 무관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 ‘굿모닝 프레지던트(2009)’,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011)’,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2015)’ 등이 대표적인 예다.

영화 초반, 금융감독원 최 차장(류승수)과 대한은행 여직원 박수경(이나라)이 함께 타고 나오는 차는 쌍용 렉스턴(Y200)이다. 영화 속에서 너무 오래된 차가 나온다 싶을 때면 얼마 안 있어 사고 장면이 나오는데,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듯한 두 사람을 향해 갑자기 다가오는 덤프트럭은 렉스턴을 무참히 뭉개 버린다.

이후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은 박수경이 모는 차는 현대 아반떼 XD다. ‘정지영 감독이 혹시 올드카 마니아인 걸까?’하는 궁금증도 잠시. 박수경은 도로에서 연쇄 추돌사고를 일으켜 경찰에 붙잡히게 되고, 이후 그녀는 아반떼 XD 안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양민혁 검사(조진웅)의 차는 르노삼성 SM5다 <양민혁 검사(조진웅)의 차는 르노삼성 SM5다>

그런가 하면 박수경을 담당했던 열혈검사 양민혁(조진웅)의 차는 르노삼성 SM5다. 앞서 나온 차들에 비하면 덜 늙은 차지만,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 요즘 개봉한 영화의 주인공이 타는 차에 단종된 모델을 쓰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BMW는 언제 나오는 거야’라며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순간, 국제 통상 전문 변호사 김나리(이하늬)가 양민혁 검사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기자의 시선이 멈췄다.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BMW만의 ‘호프마이스터 킹크’가 등장한 것. “그렇지, 이제야 나오는 구나”하고 중얼거렸는데, 어라? 최신형 7세대(G30/G31)가 아닌 6세대(F10/F11) 모델이 아닌가. 이쯤 되면 ‘BMW가 PPL을 한 걸까’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기 마련인데,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쫄깃해지는 스토리가 이 궁금증을 잠시 접게 만든다.

통상 전문 변호사 김나리(이하늬)는 흰색 BMW 5시리즈와 함께 나오지만 PPL은 아니다 <통상 전문 변호사 김나리(이하늬)는 흰색 BMW 5시리즈와 함께 나오지만 PPL은 아니다>

뛰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남우주연상 복이 없었던 조진웅은 물 만난 고기처럼 영화를 휘젓고 다닌다. tVN 드라마 ‘시그널’의 이재한 형사 모습을 발견하는 건 의외의 소득. 함께 호흡을 맞춘 이하늬는 영화 ‘극한직업’에서의 코믹함 대신 냉정하고 예리한 이미지로 관객 곁에 다가온다.

2003년부터 이어져 온 론스타 매각 사건을 지켜본 이들이라면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결국 매각하고 한국을 떠난 사실까지는 알고 있을 터. 이후 이어진 국제 소송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의 부당한 조치로 매각이 지연되고 더 낮은 가격에 매각할 수밖에 없게 되어 손실을 입었다면서 5조원 상당을 청구하는 ISD(투자자-국가간 소송) 제소를 한 상황. 2015년 5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첫 심리가 열렸다. 한국 정부가 소송비로 쓴 돈만 500억원에 이를 거라는 전망이 있는데, 만약 패소하게 되면 국민 세금 5조원도 날아가게 된다.

[영화 속 자동차] 블랙머니, 5조원, 그리고 BMW

사건이 진행 중인만큼, 이 영화에서 결론은 나지 않는다. 허를 찌르는 반전은 없다는 얘기.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알아야 할 내용을 다시 상기시켜줬다는 점에서 영화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정작 기자가 허를 찔렸던 대목은 딴 데 있었다. “좋은 영화 잘 봤다”는 기자의 말에 BMW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희 이 영화 협찬 안 했어요. BMW가 나오는 것도 몰랐어요, 근데 영화 참 재밌네요.”

영화 평점(별 다섯 개 만점, ☆은 1/2점)
★★★★☆

한줄 평
‘겨울왕국’보다 훨씬 더 와 닿는 스토리. 청담시네시티에 가면 BMW 7시리즈도 볼 수 있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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