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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호흡’ 가해자와 피해자!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아픔을 가진 삶을 살다

발행일 : 2019-12-09 04:44:42

권만기 감독의 <호흡(Clean up)>은 아이를 납치했던 자신의 범죄에 짓눌려 사는 정주(윤지혜 분)와 납치되었던 그날 이후로 인생이 무너져 내린 민구(김대건 분), 다시 마주친 두 사람의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악연의 소용돌이를 담고 있는 영화이다.
 
과거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모두 아픔을 가진 피해자가 돼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내적 갈등을 담고 있는 심리 드라마로, 한국어 제목과 영어 제목이 주는 상징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절대 쉽지 않은 내면 상황을 담담하게 소화하는, 윤지혜와 김대건, 두 사람의 연기는 무척 감동적이다.

‘호흡’ 스틸사진.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KAFA FILMS), 영화사 그램 제공 <‘호흡’ 스틸사진.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KAFA FILMS), 영화사 그램 제공>

◇ 과거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모두 피해자가 돼 있는 두 사람!
 
<호흡>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내적 갈등, 확인받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있다. 아무 데도 갈 곳이 없고 아무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수가 없을 때의 막막함과 불안함은, 지금 당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누적된 삶 속에서 계속 지속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서 더욱 막막하고 불안하게 느껴진다.
 
<호흡>은 피해자가 그 이후에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가해자도 얼마나 편할 날 없는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영화이다. 그렇지만 가해자도 힘들었다는 것에 초점을 둔 채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미화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불편함을 느끼는 관객을 너무 자극하지는 않는다.

‘호흡’ 스틸사진.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KAFA FILMS), 영화사 그램 제공 <‘호흡’ 스틸사진.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KAFA FILMS), 영화사 그램 제공>

<호흡>은 어쩌면 가해자도 힘든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가해자가 뻔뻔하게 잘 사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에, 관객은 영화 속 정주의 괴로움과 반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아니 이해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종교적으로 용서받았다고 믿는 모습은 더욱 그렇게 느껴지게 만든다.

‘호흡’ 스틸사진.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KAFA FILMS), 영화사 그램 제공 <‘호흡’ 스틸사진.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KAFA FILMS), 영화사 그램 제공>

◇ 한국어 제목과 영어 제목이 주는 상징성
 
<호흡>은 한국어 제목과 영어 제목이 주는 상징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한국어 제목을 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생존을 위해서 누구나 언제든 쉬지 말고 해야 하는 호흡을 뜻할 수도 있고, 사람 관계에서 보면 두 사람이 얼마나 조화롭게 어울리는지를 뜻할 수도 있다.
 
서로 악연인 정주와 민구의 호흡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도 있고, 윤지혜와 김대건의 연기 호흡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도 있다. 영화의 한국어 제목은 생존 혹은 조화로 해석할 수도 있다.

‘호흡’ 스틸사진.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KAFA FILMS), 영화사 그램 제공 <‘호흡’ 스틸사진.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KAFA FILMS), 영화사 그램 제공>

영어 제목인 ‘Clean up’은 청소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과 함께, 삶에서도 깨끗이 치워야 할 것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관계에 대한 정리 혹은 관계에 남아 있는 앙금에 대한 정리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영어 제목과 상징적으로 연결된다고 여겨진다.
 
◇ 연기가 아니라 그냥 다큐멘터리를 스크린에 담은 것 같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친, 윤지혜와 김대건
 
<호흡>에서 윤지혜와 김대건은 절대 쉽지 않은 내면 상황을 담담하게 소화했다. 감정에 격한 부분을 연기할 때보다 외적으로는 차분한 상황을 연기할 때 더 힘들었을 수도 있다.

‘호흡’ 스틸사진.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KAFA FILMS), 영화사 그램 제공 <‘호흡’ 스틸사진.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KAFA FILMS), 영화사 그램 제공>

연기가 아니라 그냥 다큐멘터리를 스크린에 담은 것 같은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순간적인 강렬함을 발휘하기보다는 감정을 계속 쌓으면서 축적해 발휘하는 강함을 발휘한다.
 
윤지혜와 김대건이 안으로 쌓이는 괴로움을 표현하기보다 밖으로 표출하는데 더 초점을 둬 연기를 했다면, 순간순간이 더욱 강렬했을 수는 있지만 관객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 오래 여운으로 남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호흡’ 스틸사진.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KAFA FILMS), 영화사 그램 제공 <‘호흡’ 스틸사진.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KAFA FILMS), 영화사 그램 제공>

겉으로 표출하는 연기를 했다면 진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배역에서 빠져나왔을 수 있지만, 속으로 삼키는 연기를 했기 때문에 영화 촬영이 끝난 후에도 윤지혜와 김대건은 한동안 정주와 민구로, 정주와 민구의 마음으로 살았을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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