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의 중형 세단 K5(코드네임 TF)는 2010년에 처음 등장했다. 국내 중형차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기아차는 K5의 등장 이후 극적인 반전을 이룬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세련된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고, 특히 젊은층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1세대의 인기에 자만했던 걸까. 2015년에 나온 2세대 K5(JF)는 데뷔 이듬해부터 고전하기 시작한다. 2016년에 등장한 르노삼성 SM6, 쉐보레 말리부에 밀리면서 중형차시장 최하위로 전락한 것. 1세대 K5의 디자인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데다 신선함에서 경쟁차에 뒤진 것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2017년 하반기부터는 판매를 어느 정도 회복에 기존처럼 2위 자리를 되찾았다.
기아차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3세대 K5(DL3)는 2세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듯, 디자인 면에서 전혀 새롭게 접근했다.
첫 인상에서는 미국 머슬카를 연상케 하는 강인한 앞모습과 패스트백 스타일의 뒷모습이 눈에 띈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헤드램프 아래쪽을 파고들며 경계를 무너뜨리고, K7에서 선보였던 ‘Z’자 형상의 주간주행등은 더욱 역동적인 형태로 진화했다.
A필러에서 시작해 C필러를 지나 트렁크리드를 감싸는 크롬 장식은 아주 신선하고 도전적인 시도다. 이 라인 때문에 스팅어처럼 패스트백 스타일로 트렁크가 열리는 것처럼 시각적인 착각을 주는데, 실은 크롬 장식보다 안쪽의 라인까지 트렁크가 열린다. 뒤 유리가 많이 누워있고 트렁크 리드가 짧지만, 트렁크 개구부가 크기 때문에 짐을 싣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대시보드에서도 1, 2세대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일부 기자들은 현대 쏘나타보다 고급스러움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무광 우드그레인과 앰비언트 라이트가 적절히 조화된 모습이 외관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다만 레버를 없애고 다이얼 타입으로 바꾼 기어 조작방식이 어떤 반응을 얻을지는 미지수다. 다이얼 방식은 운전할 때의 손맛이 없어 싫어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편하다고 좋아하는 이들이 있어 선호도가 극명하게 나뉘기 때문이다. 신형 K5 LPi 모델은 기존과 같은 부츠 타입 기어 레버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를 가솔린 모델에서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K5의 휠베이스는 2850㎜로, 현대 쏘나타보다 10㎜ 길다. 2세대에 비해서는 무려 45㎜나 늘어난 길이이고 국내 중형차 중 가장 긴 사이즈다. 그동안 현대차와 기아차는 동급에서 플랫폼을 공유하면서 개발비를 절약해왔고, 편의장비나 라인업에서 차이점을 보여 왔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겉모습만 보면 스포티한 K5의 휠베이스가 더 짧은 게 어울릴 것 같은데, 기아차는 비슷한 가격에서 현대차보다 좀 더 얹어주는 전략을 택했다.
라인업은 1.6 가솔린 터보와 2.0 가솔린, 2.0 LPi, 하이브리드 등 네 가지. 시승회에는 이 가운데 1.6 가솔린 터보가 준비됐다. 최고출력은 180마력, 최대토크는 27.0㎏·m로, 현대 쏘나타 센슈어스와 같다. K5의 휠베이스가 쏘나타보다 10㎜ 길지만 17인치 휠 기준으로 두 차의 공차중량은 똑같고, 18인치나 19인치 모델은 오히려 K5가 10㎏ 가볍다.
엔진 반응은 터보치고는 ‘무난’하다. 1500~4500rpm의 넓은 밴드에서 최대토크가 발휘되지만,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도 폭발적인 반응보다는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린다. 패들 시프트를 이용해 다운 시프트를 해도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다.
2세대 모델에 있었던 2.0 가솔린 터보에 필적하는 성능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그러나 기아차는 이 영역을 곧 선보일 새로운 GT 모델로 메울 예정이다. 2세대에는 없었던 전자식 4륜 구동과 2.0 가솔린 터보를 결합해 가속력과 주행안전성을 동시에 잡는다는 전략이다.
운전을 다이내믹하게 즐기는 이라면 이 모델을 기다려보는 게 좋지만, 평범한 운전 스타일이라면 1.6 가솔린 터보도 만족스러운 편이다. 1.6 가솔린 터보는 복합 모드 기준으로 12.9~13.8㎞/ℓ의 인증연비를 받았는데, 시승회에서는 10.5㎞/ℓ를 기록했다. 급가속을 여러 차례 시도한 가혹한 테스트 조건에 비하면 괜찮은 연비다.
2세대보다 가장 발전한 부분은 단단한 차체 강성과 주행안전성이다. 이전까지의 K5가 외모와 달리 다소 헐렁한 느낌을 줬다면, 신형 K5는 급차선 변경에서도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시승차에 장착된 타이어는 피렐리 P-제로 4계절용 245/40R19 사이즈로, 회전저항 3등급, 젖는 노면 제동력 2등급을 받았다. 18인치는 금호타이어 솔루스도 장착되는데, 각 등급은 피렐리와 똑같다.
음성인식 차량제어와 스마트 주차 보조 기능은 약간의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예를 들어 운전 중에 “앞좌석 창문 열어줘”라고 말하면 창문이 열리는데, 닫을 때는 바깥에서 들어오는 소음 때문에 음성인식률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스마트키로 차를 넣고 뺄 수 있는 스마트 주차 보조 기능의 경우, 장애물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차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를 시승회에서 확인했다. 보조 기능으로서는 괜찮지만, 완전히 믿고 맡기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얘기다.
신형 K5의 가격(2020년 1월 기준)은 2.0 가솔린이 2395만~3120만원, 1.6 가솔린 터보가 2475만~3200만원, 하이브리드가 2785만~3400만원이다. 2세대 후기형에 비해 대략 120만원 정도 오른 가격이지만, 값어치는 충분히 하는 걸로 판단된다.
신형 K5는 호불호가 크게 나뉘는 쏘나타에 비해 디자인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인기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나올 4륜 구동 모델도 기대된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엔진/미션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총평: 디자인은 국내 최고. 향후 더해질 4륜 구동 고성능 모델이 기대된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