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작/연출, <꽃의 비밀>이 2019년 12월 21일부터 2020년 3월 1일까지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2관에서 공연 중이다. 메시지를 담기 위해 웃음을 포기하지도, 웃음을 주기 위해 메시지를 희석하지도 않은 연극이다.
절제미를 발휘하는 배종옥의 연기를 보면, 기존의 배종옥이 아닌 그냥 연극배우 배종옥이라고 느껴진다. 무척 여성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중성적인 매력을 발산한 김규리를 보면, 앞으로 무대 공연에서 더 진한 내면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 메시지를 담기 위해 웃음을 포기하지도, 웃음을 주기 위해 메시지를 희석하지도 않은 연극
<꽃의 비밀>은 한정된 공간을 표현하면서도 오픈형으로 넓게 보이는 무대에서 펼쳐진다는 점이 눈에 띈다. 좁음의 이미지와 넓음의 이미지가 동시에 공존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 및 내면과도 연결해 볼 수 있다. 목재의 느낌, 목재의 질감과 색감이 많이 전달되는 무대 설정은 이런 공존을 정서적으로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꽃의 비밀>은 메시지를 담기 위해 웃음을 포기하지도, 웃음을 주기 위해 메시지를 희석하지도 않은 연극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등장인물들과 과정을 공유하며 감정이입한 관객은 연극이 어떻게 끝날까 궁금해질 수 있다. 작품의 출구전략도 훌륭한데, 너무 허탈하지는 않으면서도 빠져나올 수 있게 만든 배려의 디테일, 장진 감독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등장인물은 모두 단선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소피아(강애심, 이선주 분)는 처음에 그냥 푼수 왕언니처럼 보일 수 있지만 주도면밀한 면을 가지고 있고, 자스민(배종옥, 조연진 분)은 소심함과 털털함을 모두 가지고 있다.
공대 수석 졸업생인 고급 인력 지나(문수아, 박지예 분)는 공연 초반에는 서둘러 알고 싶은 마음과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데, 숨기고 싶었던 것에 대한 불안감과 초조함이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모니카(김규리, 김나연 분), 카를로(박강우, 최태원 분), 산드라(전윤민, 김명지 분)는 다른 캐릭터에 비해서는 복잡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언제든 반전을 꾀할 수 있는 복합성을 가지고 있다.
<꽃의 비밀>에서 이탈리아 남자들의 특징과 이탈리아 북부 여자들의 특징에 대한 반복이 나오는데,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개연성과 당위성을 부여하는 설정이다. 단순히 코믹한 설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인과관계의 반전이 가능하게 만드는 설정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데, 이 또한 장진 감독과 배우들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 기존의 배종옥이 아닌 그냥 연극배우 배종옥
<꽃의 비밀>에서 배종옥의 술 취한 연기를 보면, 기존의 배종옥이 아닌 그냥 연극배우 배종옥이라고 느껴진다. 드라마, 영화에서의 모습을 보면 연극 무대에서는 굉장히 강한 연극적 연기를 할 것이라고 기대한 관객도 있을 것인데, 오버하지 않는 절제의 미를 발휘한다.
배종옥의 예상을 뒤엎는 절제미 속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면, 부드러운 역할을 하거나 갈등이 많은 인물들을 조율하는 역할에도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된다. <꽃의 비밀>은 배종옥이 센 역할을 잘하는 배우가 아닌, 이전 작품에서 센 역할도 잘했던 배우라는 것을 느끼게 만들어준 시간이다.
◇ 무척 여성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중성적인 매력을 발산한 김규리
<꽃의 비밀>은 김규리의 첫 연극 도전 작품이다. 스크린에서의 움직임과 무대의 움직임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카메라의 시야 안, 사각 안에 들어가 있는가, 들어가 있지 않는가의 차이에 따라 배우의 동선과 연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규리는 때로는 사각의 시야 안에서 움직이며 관객의 집중도를 높이기도 했고,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현장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부각하면서도 주변 인물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법을 직접 보여준 김규리의 무대 매너는 앞으로를 더 기대하게 만든다. 정극의 연극을 할 경우, 무대에서 더 진한 내면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꽃의 비밀>에서 김규리는 무척 여성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모니카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중성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모니카가 너무 여성적으로 보이면 극의 초점을 분산시킬 수도 있고, 남자로 분장한 모니카가 너무 남성적으로 보이면 현실성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김규리는 두 가지 영역이 공존할 수 있도록 중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연기를 펼친다는 점이 돋보인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