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철 작/연출, 지공연협동조합 제작, 연극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가 1월 8일부터 19일까지 동숭무대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자신의 인생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고 생각하는 차명호(김윤태, 이종승 분)가 그렇게 자신을 몰아세운 과거의 사람들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근현대사와 개인사를 넘나들며 몰입감 있는 스토리텔링을 선사한 창작 초연 작품인데, 초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연출과 배우들이 만든 몰입감과 시너지는 관객이 벅찬 감동으로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게 만드는 여운을 남긴다.
◇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근현대사와 개인사를 넘나들며 몰입감 있는 스토리텔링을 선사한 창작 초연 연극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는 현재의 상황의 원인이 된 사건과 시간, 사람을 찾아나간다.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직접적으로 알려주기보다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준다는 점이 주목된다.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40주년이 됐지만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명호가 자신과 악연으로 엮인 인물 세 명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근현대사의 이야기이면서 개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사회적 이슈와 개인적 이슈를 넘나들며, 정범철 연출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과거의 일을 바라보는 의식이 다르다는 점도 놓치지 않는데 비난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시야를 공존하게 만든다는 점이 눈에 띈다.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미해결과제이지만 누군가는 지친다고 여기는데, 이 또한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개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67년생, 총으로 세 명을 쐈다는 남자 명호와 명호의 대학 동기 김판식(문태수, 공재민 분), 명호의 아내 이지숙(조주경, 변윤정 분)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선생으로 30여 년 교직에서 일하고 은퇴한 노혜자(박선옥, 전서진 분), 군 복무 시절 명호를 괴롭혔던 선임 구동만(손정욱, 맹봉학 분), 명호가 제작한 영화를 혹평했던 영화평론가 심미화(김미준, 노윤정 분) 또한 우리 각자의 모습이거나 혹은 우리 주변의 모습이라는 게 무대를 통해 전달된다.
◇ 김윤태의 눈물 연기! 행동을 통해 내면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에서 김윤태는 여린 내면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 궁금하게 만들면서도, 그럴 정도로 극심하게 힘들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수긍하게 만드는 연기력을 발휘한다.
김윤태는 명호가 가진 불편함을 서서히 강도를 높여가며 표현한다. 잘못에 사죄, 사과하지 않는 행동들에 대한 분노와 실제로 행하지 못한 내면의 앙금을 김윤태는 공감하게 만든다. 김윤태의 눈물 연기는 조주경의 눈물 연기와 함께 관객도 울게 만든다.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에서 반전 후 명호의 내면과 행동에 더욱 개연성이 부여된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입장이 바뀌었을 때, 관객이 느끼게 될 카타르시스와 죄책감/죄의식의 양가감정(兩價感情, ambivalence)을 김윤태의 몰입력은 관객이 공유하게 만든다. 양가감정은 두 가지 상호 대립되거나 모순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를 뜻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는 범죄극을 심리극으로 바꾸는데, 김윤태가 내면을 통해 내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행동을 통해 온몸으로 내면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점과 맥을 같이 한다.
◇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김윤태와의 케미에 집중한 문태수! 극의 중심을 잡고 완충의 역할을 하다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에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현재 시점에서 질주하거나 분노를 유발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판식은 내면 깊숙한 곳을 드러내기보다는, 겉으로 관조적이면서 포용적으로 보이려고 숨기는 인물이다.
문태수는 판식 캐릭터를 극단으로 몰아 대립과 갈등을 직접 고조하기보다는, 김윤태와의 케미를 통해 이야기의 정서가 명호 캐릭터에게 유지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팀워크의 연기를 보여준다.
문태수의 강약 조절, 완급 조절은 극의 중심을 잡고 완충하는 역할을 하는데, 판식 캐릭터 또한 극단으로 질주했다면 관객의 피로도는 더 커졌을 수 있다. 긴장감이 너무 강해졌을 때 웃음으로 완충하는 캐릭터가 없는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에서, 문태수의 중심잡기는 관객이 감정선을 그대로 이어가면서도 잠시 멈춰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