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브루노, 트로이 콴 감독의 <스파이 지니어스(Spies in Disguise)>은 스파이 액션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애니메이션이다.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진행되지만, 알면서도 느낄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 별남에 대한 인정은 팀워크를 통해 가치가 극대화된다. 이 애니메이션에 숨어있는 K-컬처에 반가운 관객도 많을 것이다. 영어 제목을 한국어 제목으로 바꾸면서 주인공과 정서의 초점을 이동했는데, 동양의 작품이 아닌 서양의 작품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관객들은 상대적으로 큰 저항감을 느끼지 않고 바뀐 정서를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 + 별남에 대한 인정! 팀워크의 가치!
<스파이 지니어스>에서 월터(톰 홀랜드 분)의 엄마는, 세상에 별난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어린 월터를 수용하고 인정한다. 엄마는 경찰인데, 아들에게 훈계하기보다는 포용한다.
아이의 별난 면을 특별함으로 인정하면서 ‘별난 팀’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데, 어릴 적에 보호받고 인정받았던 경험과 기억이 살면서 힘들 때 얼마나 자신을 지켜주는지 <스파이 지니어스>는 보여준다.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 별남에 대한 인정은 팀워크를 통해 시너지를 일으킨다. <스파이 지니어스>가 제시하는 화합과 협동은 교훈적인 면에서도, 감동적인 면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혼자 일하는 게 편하다고 말하는 랜스(윌 스미스)가 팀워크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시련과 결핍을 통해서 다른 이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받아들이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스파이 지니어스>를 B급 정서의 액션과 스토리텔링라고 보는 관객도 있을 것인데, 대놓고 교훈적으로 가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교훈의 가치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보면 제작진은 애니메이션의 교훈적 가치, 교육적 가치를 잘 살리고 있는 것이다.
◇ <스파이 지니어스>에 스며있는 한국적 정서
<스파이 지니어스>는 한국 드라마를 비롯해 영화 곳곳에 숨어있는 K-컬처를 찾을 수 있다. 트와이스의 노래 ‘KNOCK KNOCK’를 들으며 반가운 관객도 있을 것이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 중국의 정서, 일본의 정서, 인도의 정서 등을 종종 채택하지만 우리나라를 본격적인 소재로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크게 의미를 둘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사항이라고 생각된다.
역설적으로 볼 때 한국 애니메이션은 아직 K-컬처의 위상에 부합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한국 영화는 세계 수준이고, 한국 CG도 세계 수준이지만, 애니메이션은 아직 갈 길이 남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영어 제목이 한국어 제목으로 바뀌면서, 주인공과 정서의 초점이 이동한다
영어 제목 ‘Spies in Disguise’을 보면 뛰어난 능력의 스파이 랜스가 주인공인데, 한국어 제목 ‘스파이 지니어스’는 MIT 출신의 엉뚱한 지니어스 월터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한국어 제목으로 바꾸면서 정서의 초점을 이동한 것이다.
만약 이 애니메이션이 동양권 애니메이션이거나 원작이 동양권 작품이었으면 이런 정서의 이동에 우리나라 관객들은 불편하게 느꼈을 수 있다. 동양 작품의 경우 우리나라 관객들은 원작의 정서가 훼손되는 것을 대부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파이 지니어스>는 서양권 작품의 제목을 바꾼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관객들은 주인공을 바라보는 초점의 변화, 정서의 변화를 상대적으로 편하게 수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 역삼각형의 상체, 얇고 긴 다리! 캐릭터의 특징이 의미하는 것은?
<스파이 지니어스>에서 결투를 하는 캐릭터들을 보면 상체는 역삼각형으로 강화되고, 하체는 얇고 긴 다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삼각형의 상체를 통해 남성미를 부각하면서, 얇고 긴 다리를 통해 연예인 같은 스타성을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연예인들 중에는 키가 커도 키 높이 구두를 신는 경우가 많은데, 하체를 더 길어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스파이 지니어스>에서 랜스를 비롯해 결투에 직접 참여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상체가 발달했고 하체는 마르고 긴데,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체형을 더욱 과장해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랜스 목소리를 맡은 윌 스미스와 월터 목소리를 맡은 톰 홀랜드는 캐릭터와 배우의 싱크로율과 케미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는데, 실사 영화로 만들 경우 두 배우가 그대로 캐스팅돼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