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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클래식] 발렌티나 리시차 피아노 리사이틀 ‘격정과 환희’ 피아니스트가 공연 중 쏟은 눈물의 의미는?

발행일 : 2020-03-24 10:55:08

오푸스 주최 <발렌티나 리시차 피아노 리사이틀 ‘격정과 환희’>(이하 <격정과 환희>)가 3월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됐다. 발렌티나 리시차는 이번 리사이틀을 위해 베토벤의 초기와 중기, 말기를 대표하는 곡을 한 곡씩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주 도중 눈물을 펑펑 흘린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보며, 아티스트에게 무대란 어떤 의미일까 관객은 같이 느낄 수 있었다. 발렌티나의 격해진 감정은 베토벤의 격해진 감정을 연상하게 만들었는데, 감정이입해 몰입하는 연주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발렌티나 리시차 피아노 리사이틀 ‘격정과 환희’ 공연사진. 사진=오푸스 제공 <발렌티나 리시차 피아노 리사이틀 ‘격정과 환희’ 공연사진. 사진=오푸스 제공>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라단조, 작품번호 31의 2번 ‘폭풍’
 
<격정과 환희>는 베토벤의 작품 활동 시기 전체를 아우르는 연주이기 때문에 베토벤 음악 자서전의 하이라이트 연주라고 볼 수도 있다. 베토벤의 열정은 발렌티나의 열정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피아노 소나타 17번 라단조, 작품번호 31의 2번 ‘폭풍’에서 발렌티나의 연주는 힘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웠다. 순간을 강조하면서도 감정과 정서를 계속 쌓아가는 느낌을 전달하는 연주는, 그냥 크게 폭풍이 치는 게 아니라 선명하고 디테일 강하게 몰려오는 느낌을 전달했다.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바단조, 작품번호 57 ‘열정’
 
두 번째 곡인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3번 바단조, 작품번호 57 ‘열정’을 연주할 때 발렌티나는 완급조절, 강약조절을 하면서도 깊숙이 밀고 들어가는 연주를 통해 감정의 공감을 할 수 있는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려는 것 같았다.

발렌티나 리시차 피아노 리사이틀 ‘격정과 환희’ 공연사진. 사진=오푸스 제공 <발렌티나 리시차 피아노 리사이틀 ‘격정과 환희’ 공연사진. 사진=오푸스 제공>

<격정과 환희>에서 발렌티나는 마스크를 쓰고 무대에 올랐다. 피아노를 칠 때 호흡과 시야가 마스크를 쓰지 않을 때와 같을 수 없는데, 피아니스트는 일관된 모습을 유지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무척 큰 공연장이기 때문에 피아니스트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연주해도 큰 무리가 없을 수 있다. 연주자 간의 거리를 충분히 유지할 수 없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아닌 피아노 단독 연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발렌티나는 관객과 같은 모습을 통해 관객이 편하게 공감하고 감정이입하게 만들었다.
 
마스크 착용을 불편하게 느꼈던 관객도 발렌티나의 이런 모습에 마음이 안정됐을 수 있다. 발렌티나의 연주 실력과 배려심을 보면서, 꼭 다시 우리나라에 와서 관객과 같이 질주하는 시간을 기대하게 된다.

발렌티나 리시차 피아노 리사이틀 ‘격정과 환희’ 공연사진. 사진=오푸스 제공 <발렌티나 리시차 피아노 리사이틀 ‘격정과 환희’ 공연사진. 사진=오푸스 제공>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 바단조, 작품번호 106 ‘함머클라비어’
 
인터미션 후 무대에 다시 올라온 발렌티나는 연주석에 앉자마자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9번 바단조, 작품번호 106 ‘함머클라비어’를 바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관객을 음악으로 확 끌고 들어오는 시작이었다.
 
더욱더 강렬하고 힘 있게 연주했는데, 무척 가까이에서 연주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피아노 연주 하나만으로도 연주의 에너지가 이렇게 강할 수 있다는데 감탄하게 된다. 협연을 하는 것 같은 다채로움을 만드는 피아니스트는, 완급을 유지하는 부분에서는 울림을 이어가는 연주를 들려줬다.
 
제3악장과 제4악장을 넘어가는 부분에서 발렌티나는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흘리며 연주를 멈췄다. <격정과 환희>는 아티스트에게 무대란 어떤 의미일까 같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발렌티나 리시차 피아노 리사이틀 ‘격정과 환희’ 공연사진. 사진=오푸스 제공 <발렌티나 리시차 피아노 리사이틀 ‘격정과 환희’ 공연사진. 사진=오푸스 제공>

공연기획사 오푸스에 따르며 발렌티나는 연주 도중 갑자기 86세 고령인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한다. 코로나19로 계속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하는데, 관객이 모두 마스크를 낀 채로 있는 게 자신의 마음을 건드렸다고 한다. 곡도 공감을 일으키는 곡이라 감정에 북받쳐 연주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발렌티나의 미완의 연주는 감정이 격해진 발렌티나가 감정에 격해진 베토벤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관객의 감동적인 박수가 이어지자 발렌티나는 앙코르곡을 다섯 곡 연주했다.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14번 '월광'을 연주할 때 현란한 기교를 선보이는 구간에서 질주했고, 쇼팽의 ‘녹턴 20번’은 서정적이면서 처연하게 느낄 수도 있는 연주를 들려줬다. 감정의 레벨을 가라앉힌 후의 연주는 차분하면서도 더 깊은 곳의 감정을 관객과 공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 2번’에서는 더 굵은 울림을 주기도 했고, 밝고 경쾌하게 연주하면서 기교적 빠르기 구현하기도 했다.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는 몽환적 분위기를 연상하게 만들었고,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 Op.23 No.5’에서 발렌티나는 생의 마지막인 것 같이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격정과 환희에 찬 연주를 통해 감동의 여운을 남겼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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