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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최고의 아날로그 감성, 마세라티 기블리 리벨레

발행일 : 2020-07-22 10:34:18
[시승기] 최고의 아날로그 감성, 마세라티 기블리 리벨레

“너, LP 레코드가 뭔지 아니?”

“아, 어떤 건지는 아는데, 소리를 들어보진 못했어요.”

“하긴, CD 플레이어도 없어지는 추세인데…. 잘 모르는 게 당연하겠구나.”

“선배, 저 아주 어릴 때 CD 들어서 사실 기억에도 없어요.”

어느 시승회에서 만난 후배와의 대화다. 업계에 오래 있다 보니 거의 아들, 딸 같은 후배 기자들과 취재 현장에서 어우러지면서 겪게 되는 상황이다. 그들은 MP3로 음악을 본격적으로 감상했고, 수동변속기는 아예 다룰 줄 모르는 이도 많다.

이런 이들에게 LP 레코드는 상상 속에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LP 레코드 특유의 따듯하고 묵직한 소리,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을 줬던 CD의 특성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고역일 수 있다.

자동차 업계에도 최근 혁명에 가까운 변화의 바람이 휘몰아친다. 물리 버튼은 터치스크린으로 대체되고, 업체들은 앞 다퉈 자율주행 기능을 개발하고 있다. 자동 주차 기능은 소형차까지 확대되고 있고, 운전자가 직접 할 일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사람을 편하게 만들지만, 과거 브랜드마다 뚜렷했던 감성은 점차 희석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BMW도, 렉서스도 모두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을 때 만난 차가 마세라티 기블리 리벨레 에디션이다. 마세라티의 중심 차종인 기블리 중에서도 국내에 단 15대만 공급되는 레어 아이템이다.

▲마초 느낌 물씬한 스타일

[시승기] 최고의 아날로그 감성, 마세라티 기블리 리벨레

기블리는 ‘사막의 모래 폭풍’을 의미하는 이탈리어다. 1966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2도어 쿠페 타입으로 처음 공개됐다. 현대차 포니를 디자인해 유명해진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손길을 거친 기블리는 팝업 헤드램프와 패스트백 타입의 매력적인 스타일이 돋보였다. 1967년 공식 데뷔했고, 1969년에는 V8 4.9ℓ 330마력 엔진을 얹고 시속 280㎞까지 달릴 수 있었다.

1973년 단종 후 한동안 공백기를 가졌던 이 차는 1992년 2세대 모델로 등장한다. 스타일은 2도어 쿠페를 유지했고 V6 2.0ℓ 302마력 트윈 터보 엔진을 얹었으며, 수출형에는 V6 2.8ℓ 280마력 엔진을 장착했다. BMW M3의 대항마로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시승기] 최고의 아날로그 감성, 마세라티 기블리 리벨레

98년 2세대 단종 후 또다시 자취를 감췄던 기블리는 2013년 한국 시장에서 공식 판매되며 국내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7년부터는 디자인과 장비를 업그레이드한 뉴 기블리가 출시됐다. 럭셔리 감성의 ‘그란루소(GranLusso)’와 스포티한 매력의 ‘그란스포트(GranSport)’ 등 듀얼 트림 전략으로 선보인 것. 이 무렵 한국은 판매량 기준으로 마세라티의 5대 주요 시장으로 떠올랐다. 2018년에는 기블리, 콰트로포르테, 르반떼에 한정판 네리시모 에디션을 더하면서 다시 한 번 가치를 높였다.

[시승기] 최고의 아날로그 감성, 마세라티 기블리 리벨레

올해는 15대 한정판인 기블리 리벨레 에디션이 등장했다. ‘리벨레(Ribelle)’는 반항아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센터 콘솔 한 가운데에 자리한 ‘30분의 1(One of 30)’ 기념 배지는 기블리 리벨레의 희소가치를 나타낸다.

블랙 컬러의 외관은 강렬한 레드 컬러의 브레이크 캘리퍼와 어우러져 시선을 사로잡는다. 실내는 마세라티 라인업 최초의 레드 & 블랙 투톤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다듬었다. 최고급 천연 가죽 시트에는 한국인들이 특히 선호하는 통풍 기능까지 추가됐다. 스티어링 휠과 카본 패들을 비롯해 곳곳에 카본 인테리어 마감도 훌륭하다.

▲이탈리아 감성 느껴지는 예술적인 엔진음

[시승기] 최고의 아날로그 감성, 마세라티 기블리 리벨레

기블리 리벨레 에디션은 블랙 & 레드 색상의 19인치 프로테오(Proteo) 휠이 짝을 이루는 350마력의 기블리 그란스포트, AWD 시스템 및 20인치 우라노(Urano) 휠과 함께 430마력을 자랑하는 강력한 기블리 S Q4 그란스포트 두 가지 옵션으로 제공된다. 이 가운데 이번 시승에서 만난 차는 S Q4 그란스포트다.

페라리의 손길을 거친 V6 3.0ℓ 430마력 엔진은 시동 때부터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경주차에 앉은 듯한 느낌을 주는 우렁찬 음색은 다른 어떤 브랜드에서도 느낄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저속에서부터 주저 없이 뛰쳐나간다. 최대토크 59.2㎏·m가 2500rpm에서부터 발휘되기 때문. 이 느낌은 높은 rpm으로 올라가도 주춤거리지 않고 꾸준히 유지된다. 독일 ZF의 8단 자동변속기와의 조합은 말 그대로 ‘찰떡궁합’이다. 버튼이나 다이얼로 조작하는 변속기와는 ‘비교 불가’이고, 커다란 패들 시프트로 조작하는 손맛도 기가 막히다.

[시승기] 최고의 아날로그 감성, 마세라티 기블리 리벨레

정지에서 시속 100㎞ 가속까지 걸리는 시간은 4.7초로, 테슬라 모델3 롱 레인지와 엇비슷하다. 그러나 가속감은 전혀 다르다. 모델3는 단순히 빠르게 나가는 느낌인데, 기블리는 그 과정에 스릴이 있다.

정확히 앞뒤 5:5인 무게 배분도 뛰어난 엔진과 변속기의 성능을 뒷받침한다. 타이어 사이즈는 앞 245/40 ZR20, 뒤 285/35 ZR20이고, 피렐리 P-제로 제품이다.

개인적으로 피렐리 타이어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기블리와의 궁합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고속에서 착 달라붙는 끈적끈적한 느낌은 최고였고, 정속 주행 때의 정숙성 역시 훌륭했다. 시승 도중 쏟아진 폭우 속에서 차체를 안정감 있게 이끄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시승기] 최고의 아날로그 감성, 마세라티 기블리 리벨레

기블리의 뛰어난 주행성능은 마세라티가 자랑하는 모터 레이싱 DNA를 물려받은 덕분이다. 1926년 시칠리아 섬에서 티보 26을 몰고 출전한 알피에리 마세라티는 생애 첫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1939년에는 월버 쇼가 인디애나폴리스 500 레이스에서 평균 시속 185㎞로 챔피언에 오른다. 1세대 기블리에는 이러한 마세라티의 레이싱 노하우가 담겨 있고,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시승차인 S Q4의 인증 연비는 도심 6.2㎞/ℓ, 고속도로 9.5㎞/ℓ다. 이번에 장거리 시승을 해보니, 급가속을 여러 차례 하는 가혹한 조건에서도 9.0㎞/ℓ의 연비를 나타냈다. 따라서 정속 주행을 이어간다면 더 좋은 연비를 기대할 수 있겠다.

기블리는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후륜구동 기본형은 1억2240만원, 그란루소는 1억3120만원, 그란스포트는 1억2830만원이고, S Q4 기본형은 1억3710만원, 그란루소는 1억4900만원, 그란스포트는 1억5000만원이다. 이번에 시승한 리벨레 에디션은 후륜구동 1억3600만원, S Q4 1억5700만원이다.

[시승기] 최고의 아날로그 감성, 마세라티 기블리 리벨레

기블리는 아날로그 감성과 첨단 기술이 절묘하게 조화된 차다. LP 레코드의 감성과 CD의 날카로운 음색, 블루투스의 편리함을 두루 갖춘 매력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마세라티는 올 가을 기블리에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탑재해 선보인다. 친환경 트렌드에 적극 부응해 탄생한 기블리 하이브리드는 또 어떤 매력으로 다가올지 기대가 크다.
강릉=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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