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노트 제작, 심설인 연출, 김문정 음악감독, 이현정 안무의 한국 초연 뮤지컬 <제이미(JAMIE)>가 7월 4일부터 9월 1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영국 최고의 시상식 왓츠온스테이지 어워드 ‘최우수 신작 뮤지컬상’ 포함 3개 부문 수상한 작품으로, 아시아 최초로 한국 무대에서 선보이고 있다. 이 작품의 부제는 ‘Everybody’s Talking About Jamie’이다.
<제이미>에 상담 이론 중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commitment therapy, ACT)의 ‘개념화된 자기(conceptualized self)’와 ‘맥락으로서의 자기(self as context)’의 개념을 제이미 뉴(조권, 신주협, MJ, 렌 분)에 적용하면, 제이미 본인과 주변 사람들이 제이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 ‘수용전념치료(ACT)’ 개념화된 자기 vs. 맥락으로서의 자기
수용전념치료(ACT)는 수용(Acceptance)과 전념(Commitment)을 강조하는 심리치료 방법이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문제를 그 자체로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문제를 없애는데 주력하기보다는, 존재하는 문제가 큰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수용전념치료(ACT)는 심리적 고통(Pain)을 회피하거나 통제하려고 할 때 더 큰 괴로움(Suffering)을 겪게 된다고 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기, 다가가기, 수용하도록 돕기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 제이미의 개념화된 자기? 맥락으로서의 자기?
개념화된 자기는 “나는 OO다.”라고 규정하는 것을 뜻한다. ‘나는 고등학교 학생이다’, ‘나는 드래그 퀸(Drag queen) 공연 아티스트이다’처럼 직업적인 면이 들어갈 수도 있고, ‘나는 당당하다’, ‘나는 초라하다’, ‘나는 혐오스럽다’처럼 관념적인 면이 들어갈 수도 있다.
<제이미>에서 제이미 자신이 스스로 정하는 개념화된 자기는 ‘드래그 퀸’이다. 휴고/로코 샤넬(윤희석, 최호중 분) 또한 제이미를 같은 개념의 인물로 여긴다. 드래그 퀸은 남자가 예술이나 오락, 유희를 목적으로 여장을 하는 행위 또는 그 사람을 뜻한다.
반면에 현실감을 강조하는 헷지 선생(김지민 분)은 제이미에게 ‘고등학생’이라는 개념화된 자기를 가지기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제이미를 폄하하는 딘(조은솔 분)과 같은 사람은 제이미에게 ‘역겹다’라며 개념화하려고 한다.
<제이미>에서 제이미는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개념화된 자기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주입되는 개념화된 자기가 완전히 상충하는 고통을 겪는다. 서로 다른 개념화된 자기는 제이미에게 외적 갈등과 내적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아무도 나를 몰라.”라는 제이미의 말은,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개념화된 자기를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한 아픔과 상처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제이미>를 직접 관람하면, 제이미는 무척 당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런 제이미의 캐릭터는 관객이 불편함에 매몰되지 않게 만든다. 제이미가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제이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제이미의 맥락으로서의 자기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사람이 주변에 한 명도 아닌, 무려 세 명이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이미의 엄마 마가렛 뉴(최정원, 김선영 분)와 이모 레이(정영아 분)는 제이미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입하거나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제이미를 인정한다. 엄마와 이모는 제이미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간에 수용하는데,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전폭적인 수용을 받는 제이미의 내면은 단단해지고 당당해질 수 있는 것이다.
제이미의 친구 프리티(문은수 분) 또한 제이미를 맥락으로서의 자기로 인정하고 존중한다. 드래그 퀸과 고등학생이라는 두 개의 개념화된 자기가 충돌하며 내적 갈등을 겪는 제이미에게 프리티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도 멋지고 의미 있다고 지지하면서 공감한다.
맥락으로서의 자기라는 관점에서 제이미의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존중하는 엄마와 이모, 친구가 하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너 하고 싶은 거 싹 다 해.”, “꾸미지 말고 너로서 가라는 거야.”, “너한테는 이게 평범한 거야.”라는 말은 제이미를 맥락으로서의 자기로 인정하는 말이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제이미의 개념화된 자기와 맥락으로서의 자기를 실감 나게 표현한 렌!
<제이미>에서 렌은 제이미의 개념화된 자기와 맥락으로서의 자기를 실감 나게 표현한다. 수용전념치료(ACT)의 시야에서 보면, 렌이 표현하는 당당함과 솔직함, 좌절과 상처의 디테일은 무척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렌은 또 다른 나, 내면의 나, 안에 있는 나를 표현할 때 단편적인 면만 가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표현하지 않고, 개념화된 자기와 맥락으로서의 자기가 공존하는 인물로 표현한다.
렌은 무대에서 워킹을 할 때와 춤을 출 때, 그리고 노래를 부를 때 여성적인 면과 남성적인 면을 교차해 보여주는데, 장면마다 적용하는 설정이 개념화, 맥락의 측면에서 볼 때 무척 밀착돼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렌은 수용전념치료(ACT)의 개념을 알고 제이미 역을 소화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감각적으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뮤지컬 무대에서 렌의 표현력이 계속 풍성해지고 깊어지면서 빛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는 이유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