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자동차들은 전통적으로 소형차에 강점을 보인다. 70~80년대에 기아자동차가 라이선스로 생산했던 푸조 604만 하더라도 중대형차로 인기를 모았지만, 점차 이 시장을 경쟁 메이커에 내주고 소형차에만 집중했다.
2014년에 첫 선을 보인 2008 역시 SUV 시장에서는 매우 작은 차에 속했다. 소형차에 해당하는 B-세그먼트의 개척자로서 한동안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후 시장이 커지면서 푸조도 크기를 키운 신형 2008 SUV를 최근 내놨다.
5일 스타필드 하남에서 실물로 만난 2008 SUV는 사진으로 볼 때보다 훨씬 크다. 차체 사이즈는 길이 4300㎜, 너비 1770㎜, 높이 1550㎜다. 1세대 모델에 비해서는 길이 140㎜, 너비 30㎜가 커진 대신, 높이는 5㎜가 낮아졌다. 한불모터스 관계자는 “현대차 코나보다 크고, 기아차 셀토스보다 약간 작다”고 귀띔한다.
대시보드는 5008과 3008에서 선보였던 디자인과 비슷하다. 게임기용 레이싱 휠 같이 작은 스티어링 휠 위에 3D 인스트루먼트 클러스터를 배치하고, 센터페시아에는 큼지막한 모니터를 달았다.
뒷좌석 공간은 기대보다 넉넉하다. 그러나 별도의 송풍구가 없어서 뒷좌석 승객은 한여름에 더위를 느낄 수 있겠다. USB 포트는 2개를 마련했으나, C타입이 없는 건 옥의 티다.
트렁크 용량은 434ℓ로 예상보다 넉넉하고, 현대 코나 일렉트릭의 것보다 크다. 하지만 안쪽의 깊이가 짧아 골프백을 여러 개 넣기는 힘들다. 대신 2열 시트를 완전히 접으면 1467ℓ까지 늘어나므로 시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좋겠다.
승차감은 적당히 탄탄하고 안락하다. 서스펜션은 앞 스트럿, 뒤 토션빔의 조합인데, 동급에서는 기대 이상의 수준이다. 푸조는 예전부터 토션빔 세팅에서 꽤 괜찮은 실력을 보여줬다. 타이어는 215/60R17 사이즈이고 미쉐린 제품이다. 차체 크기로 볼 때 적당한 선택으로 보인다.
작은 스티어링 휠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운전이 재밌다. 그러나 패들 시프트 재질은 개선하는 게 좋겠다. 손에 닿는 부분이 싸구려 소재 같은 느낌을 주고, 조작감도 좋지 않다.
점심 식사 후 잠시 쉬는 틈에 타본 e-208은 색다른 느낌을 줬다. 무게 중심이 낮은 덕에 마치 전기 카트를 타는 것 같은 재미가 쏠쏠하다. 최고출력은 136마력으로, 가속 페달을 밟으면 폭발적으로 튀어나가는 느낌은 적다. 대신 최대토크가 즉각 발휘되는 전기차 특성대로 갑갑하지 않게 적당한 가속감을 준다. e-208 시승차는 두 대 밖에 마련되지 않아 길게 타볼 수 없었으므로, 다음에 시승차가 제공된다면 상세하게 체크할 계획이다.
2008 SUV의 인증 연비는 도심 15.7㎞/ℓ, 고속도로 19.0㎞/ℓ다. 뛰어난 연비를 이룬 비결 중 하나는 1345㎏밖에 안 되는 가벼운 공차중량 덕분으로 풀이된다. 시승회가 열린 날에는 폭우가 내려 실제 연비는 체크하지 않았다. 참고로 이번 시승회에 없었던 e-2008 SUV의 공차중량은 1625㎏이고 전비는 4.3㎞/㎾h다.
푸조 2008 SUV의 가격은 알뤼르 3248만원, GT 라인 3545만원이고, e-2008 SUV는 알뤼르 4590만원, GT 라인 4890만원이다. GT 라인에만 적용되는 사양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 중앙 유지 장치, 오토 하이빔 어시스트, 액티브 블라인드 스팟 모니터링 등 주로 안전사양에 집중돼 있다.
전기차 보조금을 받게 되면 두 모델의 가격 차이가 확 줄어든다. 이럴 경우 총 소유비용은 전기차가 우세한 게 일반적인데, 2008은 정반대다. 디젤 모델의 연비가 워낙 좋기 때문에, 연간 2만㎞를 주행한다고 가정할 경우 디젤 모델이 전기 모델보다 더 적은 비용이 들어간다.
2008 SUV를 국산 SUV와 비교한다면 사실 경쟁이 쉽지 않다. 3000만원대 SUV 시장은 국내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입 SUV 시장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승부다. e-2008 SUV는 e-208의 주행실력을 감안하면 성능과 가격에서 괜찮을 것 같다는 기대가 든다.
한불모터스는 최근 몇 년 동안 좋은 신차를 많이 내놨다. 그러나 판매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제품이 좋은데 많이 팔리지 않는다면 원인은 마케팅과 홍보 전략에서 찾아야 한다. 더 치고 나가야 하는 순간인데 주저하지 않았는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