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일 안무, 장지욱 기획, JHI Ballet Creative의 <Swan Lake ; The Wall>이 8월 17일부터 11월 14일까지 네이버 TV ‘오산문화예술회관’에서 녹화 방송된다. 강나영, 김수희, 김에스더, 김예담, 양영아, 이은혜, 신정윤, 신승우, 권수민, 양희재, 권아영, 전효진, 서송희, 이준구, 정대성, 박종선, 김경록이 무용수로 출연한다.
<Swan Lake ; The Wall>은 선악의 대립이 아닌 내면의 갈등, 끊임없이 주고받는 서로 다른 자아와의 대화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정형일의 발레 바는 때론 거울이 되고, 혼돈과 규칙을 동시에 만드는 오브제가 된다는 점에 공감하면 더욱 감동받을 수 있다.
◇ 선악의 대립이 아닌 내면의 갈등! 끊임없이 주고받는 서로 다른 자아와의 대화를 표현한 작품!
<Swan Lake ; The Wall>은 낭만발레의 대표작인 <백조의 호수>가 재탄생한 작품이다. <백조의 호수>가 백조와 흑조로 대표되는 선악의 대립, 목숨을 줘도 아깝지 않은 낭만적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면, <Swan Lake ; The Wall>은 한 인물의 내면 자체에 더욱 초점을 둔다는 점이 주목된다.
작품을 실제로 감상하면 무용수 한 명의 독립적인 안무보다 두 명씩 같이 등장해 안무를 펼치는 시간이 많다. 두 명의 무용수가 호흡을 맞출 경우 일반적으로는 남녀 무용수의 조합이 이뤄지거나 혹은 군무 속에서의 여여 2인무가 펼쳐질 수 있지만, <Swan Lake ; The Wall>의 메인 안무는 여여 2인무이다.
이는 비슷하거나 공통점을 가진 두 백조의 대화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같은 백조의 내면과 외면과의 대화이거나 같은 백조의 서로 다른 자아의 대화라고 볼 수 있다. 각각의 여여 무용수가 끊임없이 주고받는 안무는 모든 여자 무용수를 주연으로 돋보이게 만든다는 점이 눈에 띈다.
<Swan Lake ; The Wall>의 안무는 철저한 내면의 대화로 심리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고, 현실 사회를 은유하는 예술적 표현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그냥 아름다운 움직임으로 충분히 즐길 수도 있다.
<Swan Lake ; The Wall>의 3인무를 보면 여자 무용수의 또 다른 내면은 남자 혹은 남성적인 면이라는 상상을 할 수도 있는데, 강한 측면보다는 절도 있는 아름다움이 안무 속에서 강조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남녀의 2인무가 아닌 여남남의 3인무의 안무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치 세 명의 무용수가 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2인무가 주고받는 안무라면, 3인무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안무의 느낌을 주는데, 3인무를 선택의 갈등이 아닌 융화와 융합의 측면으로 표현했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
◇ 정형일의 발레 바는 때론 거울이 되고, 때론 혼돈과 규칙을 동시에 만드는 오브제가 된다
정형일의 작품에서 발레 바는 때론 거울이 되고, 혼돈과 규칙을 동시에 만드는 오브제가 되기도 한다. <Swan Lake ; The Wall>에서도 이런 기조는 유지된다. 발레 바가 연습의 도구가 아닌 무대의 주요 소품으로 활용된다. 노출된 콘크리트를 고품격의 인테리어로 사용한 카페처럼, 일상과 평범함을 무대 위에서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승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형일의 작품은 안무 집적도와 밀도가 무척 높은데, 발레 바를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발레 바를 이용해 더 편하게 동작을 취하는 게 아니라, 더욱 다양한 움직임을 시도하는 것이다.
정형일에게 바는 때로는 거울이 된다. 바를 사이에 둔 두 무용수는 거울 동작으로 2인무를 추기도 한다. 거울 동작으로 서로 반대 방향의 움직임을 하기도 하고, 서로 같은 방향의 움직임으로 거울을 유리창으로 변환하기도 한다.
<Swan Lake ; The Wall>에서 바는 혼돈과 규칙을 동시에 만드는 도구로 보인다. 영역을 만들고, 공간을 만드는데, 기존의 안정된 영역과 공간을 다시 재배치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정형일의 바는 자신을 지키는, 자신의 영역을 구분해 확보하는 보호막이자 동시에 자신을 뛰어넘지 못하게 만드는 다른 곳으로의 이동을 한정하는 방해물의 역할을 한다.
주변에서 물리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존재는 보호자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제어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과 연관해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에 무용수들이 바와 함께 하는 장면은, 바와 혼연일치돼 편안하고 안정된 모습으로 볼 수도 있고 반대로 슬프게 산화되기 직전의 슬프지만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