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영 예술감독(안무, 대본, 연출), 댄스시어터샤하르 제작, 발레 <레미제라블>이 9월 23일부터 24일까지 도봉구민회관 대강당에서 공연됐다. ‘레미제라블’을 주제로 한 세계 최초 창작 전막 발레로, 10월 24일 노원문화예술회관 무대에 다시 오를 예정이다.
데나르디에르 부인 역 발레리나 김순정은 악역을 부지런하게 표현해, 관객이 받을 수 있는 정서적 상처를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김순정은 연극적 연기에도 뛰어남을 발휘하는데, 표정과 안무에는 우아함과 표독스러움이 공존한다는 점도 돋보인다.
◇ 원작을 재해석한, 세계 최초 창작 발레
<레미제라블>은 원작을 재해석한 세계 최초 창작 발레이다. 대작을 전막 발레로 만들었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는데, 기존의 내용을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려고 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원작이 장발장을 통해 악에 대항하는 양심의 각성과 성숙을 표현했다면, 발레 <레미제라블>은 극을 시간 순서대로 배열하지 않으면서 다른 시선을 제시했다. 현재와 과거의 시공간을 뛰어넘으며,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초월해 회상 속에서 지난 모습과 현재의 변화를 동시에 바라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기존의 원작의 스토리를 떠올리면서 작품을 보는 관객과, 오롯이 눈에 보이는 공연의 흐름에 집중하는 관객 모두 충분히 감동받을 수 있게 만든다. 원작을 알면 아는 대로 재미있고, 원작을 떠올리지 않아도 신선하게 즐길 수 있다.
◇ 무용수들의 표정 연기 vs. 가면을 통한 얼굴 표정의 차단
<레미제라블>은 무용수들의 움직임 못지않게 표정연기가 돋보이는 공연이다. 발레리노 강준하(장발장 역)와 발레리노 손관중(자베르 경감 역)은 두 사람이 대립할 때뿐만 아니라, 각자 독무를 출 때도 몰입한 표정 연기를 보여준다.
발레리노 윤전일(젊은 장발장 역)과 발레리노 정민찬(젊은 자베르 역)은 빠른 움직임 속에서도 표정을 놓치지 않는다. 발레리노 윤별(마리우스 역)은 표정과 움직임을 이어서 감정 표현을 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발레리나 스테파니 킴(코제트 역)은 표정 연기를 할 때 진지한 몰입을 보여주는데, 한 번에 훅 들어가서 머물다 순간적으로 빠져나와 정서의 반전을 만드는 표정 연기에도 탁월함을 발휘한다.
<레미제라블>은 의도적으로 표정을 차단하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개별무와 군무에서 가면을 사용해 변화하는 표정을 차단하고, 하나의 이미지를 당분간 유지하기도 한다. 이것은 익명성 앞에서 저지르는 폭력 혹은 그 폭력에 무너진 익명성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 악역을 부지런하게 표현해, 관객이 받을 수 있는 정서적 상처를 완충한 발레리나 김순정
<레미제라블>에서 데나르디에르 부인 역 발레리나 김순정은 가벼운 움직임으로 발랄하게 무대에 등장한다. 처음부터 무게를 잡고 등장하지는 않기 때문에, 배역이 줄 수 있는 정형성을 탈피하고 관객에게 호기심을 유발하게 한다.
김순정은 연극적 표현에도 뛰어남을 발휘한다. 악역을 코믹하게 연기할 뿐만 아니라,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지 않는 순간에도 무척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관객의 정서가 너무 심하게 불편하지는 않게 만들면서, 캐릭터의 매력을 높이려는 지속적인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레미제라블>에서 김순정의 표정과 안무에는 우아함과 표독스러움이 공존한다. 앉은 자세에서도 쉼 없는 움직임을 보여줘, 데나르디에르 부인이 잔소리를 많이 하는 것에는 조급함도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레미제라블>은 커튼콜과 공연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마무리한다. 시공간을 이동하는 극의 시점처럼, 본 공연과 커튼콜의 이동 또한 연결한 것이다. 한국 창작 전막 발레 <레미제라블>의 지속적인 공연이 기대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