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 감독의 <납세자(The Tax)>는 2020 제14회 상록수다문화국제단편영화제 출품작이다. 납세를 돈의 문제가 아닌 인권의 문제로 다뤘는데, 결국 인권도 돈에 연관돼 있다는 현실 또한 담고 있다.
연희 역 천영민의 감정 처리는 흥미롭다. 말을 하지 않을 때도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표정 연기가 주목된다. 어쩌면 천영민은 연기를 한다기보다, 극중 연희에게 감정이입해 연희 안에 그냥 있었을 수도 있다.
◇ 납세는 돈의 문제가 아닌 인권의 문제?
<납세자>는 납세를 돈의 문제가 아닌 인권의 문제, 성적 자기결정권의 문제에서 바라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근미래이다. 취업률과 혼인율이 급락하자 정부는 18~45세의 건강한 성인에게 주기적으로 정자와 난자를 납세하라는 법안을 제정하고, 불법 납세 시장이 암암리에 형성된다.
<납세자>는 선택권이 인권이고,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사람은 선택권이 없음을 보여준다. 영화 속 납세는 표면적으로는 돈의 문제가 아니지만, 그 속성에는 다시 돈의 문제가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려준다. 돈이 아닌 인권에 집중해 나가면서도, 돈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 색깔을 통한 이미지적 표현! 감정과 상황을 색으로 접목시키다
<납세자>에서 색깔을 통한 이미지적 표현은 인상적이다. 감정과 상황을 색으로 접목시킨다. ‘납세자’라는 타이틀이 올라갈 때 마치 연희에게 압류 예정 빨간 딱지를 붙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상징적 암시라고 볼 수도 있다.
영화는 피, 나뭇잎, 가방 등 여러 가지에 대해 빨간색과 주황색을 사용해 정서적 일관성을 유지한다. 종이접기 또한 색을 통한 감정과 상황을 전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소진(홍지민 분)과 브로커(정아미 분)의 역할 또한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상대적으로 분량이 작은 역할들이 이야기의 서사를 담당하고 있다면,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 것 같은 인물들은 정서적인 상징을 주로 담당한다. 영화 전체를 암울함만으로는 채우지 않으려는 감독의 마음으로 느껴진다.
◇ 천영민의 감정 처리! 말을 하지 않을 때도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표정 연기!
<납세자>의 크레디트를 보면 단편 영화 대비 많은 인원이 출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는 연희 역의 천영민이 이끈다. 거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영화의 시선은 천영민에게 집중돼 있다.
천영민이 감정 처리하는 방법은 묘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말을 하고 있지 않을 때도 말을 하는 것 같은 표정 연기가 돋보인다. 표정을 과하게 발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표정하지도 않으면서, 미세한 감정을 표현한다.
어쩌면 천영민은 연기를 한다기보다, 극중 연희에게 감정이입해 연희 안에 그냥 있었을 수도 있다. 영화가 근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의 이야기처럼 생각됐을 수도 있다. 천영민의 연기에서 진정성이 전달되는 이유가 배우의 연기력인지, 연희 캐릭터의 매력인지 궁금하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