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스포츠는 타이어 메이커들의 전쟁터다. 국내 최대 규모 모터스포츠 대회인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도 마찬가지다. 최상위 레이스인 슈퍼 6000 클래스는 각 팀이 자율적으로 타이어 메이커를 선택할 수 있는데, 레이스 기록과 순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타이어이기 때문에 드라이버, 혹은 팀의 성적이 타이어 제조사의 희로애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슈퍼 6000 클래스에는 금호타이어를 대표하는 엑스타레이싱과 한국타이어를 대표하는 팀인 아트라스BX 모터스포츠가 있어 경쟁의 양상이 첨예하다.
아트라스BX 모터스포츠와 엑스타레이싱이 슈퍼 6000 클래스에 참가하기 시작한 지난 2014년부터의 역대 전적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는 금호타이어를 사용한 팀들이 시즌 팀 챔피언의 영광을 안았다. 라운드 별 우승자들을 살펴봐도 금호타이어가 우세한 성적을 거뒀다. 금호타이어의 선공, 한국타이어의 역공이 펼쳐지며 팀 챔피언 역대 전적에서 3-3으로 균형을 이뤘다. 2016년 정의철이 드라이버 챔피언에 오르고, 엑스타레이싱이 팀 챔피언을 2연패 하면서 경쟁에서 확실하게 앞서나가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2017년 조항우가 아트라스BX를 이끌고 드라이버와 팀 챔피언을 동시 석권한 이후 지난해까지 3년간 아트라스BX 모터스포츠가 팀 챔피언에 올랐다.
금호타이어는 지난 29일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개최된 '2020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8라운드를 끝으로 슈퍼6000 클래스 올해 드라이버와 팀 모두 시즌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이번 시즌 결과는 지난 2016년 드라이버, 팀 종합우승 이후 4년 만에 이뤄낸 결실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이날 열린 시즌 최종전인 8라운드에서 팀의 에이스이자 맏형인 정의철은 예선 2위로 출발해 최총 2위를 기록하며 팀에 우승 포인트를 안겼고, 2우와 불과 2점 차이로 누적 점수 1위를 기록해 시즌 드라이버 챔피언에 등극했다. 지난해 처음 6000 클래스에 데뷔한 신예 듀오 노동기, 이정우 선수도 전날 열린 7라운드에서 1, 2위 원투 피니시로 포디엄을 장식해 팀의 시즌 우승을 도왔다.
금호타이어의 우승행진은 4라운드부터 시작되었다. 금호타이어 장착 팀들은 4라운드 예선에서부터 선두권을 휩쓸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준피티드레이싱의 황진우가 결국 우승을 차지하면서 시즌 중후반 금호타이어의 돌풍을 예고한 바 있다. 5, 6라운드부터는 엑스타레이싱팀이 경기를 주름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열린 7, 8라운드의 예고편처럼 노동기, 이정우가 원투 피니시로 포문을 열었고 이미 5라운드에서도 컨디션 난조에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정의철이 6라운드 우승을 차지하며 시즌 우승까지 예고했다.
마지막 7, 8 라운드는 선두권 선수는 누구나 시즌 챔피언을 노릴 수 있을 정도로 점수 차가 크지 않았고 팀 포인트 역시 선수 개인의 활약뿐 아니라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경기였다. 경기 감각이 최고조에 올라있던 엑스타레이싱팀으로서는 6라운드에서 많은 핸디캡 웨이트를 부여 받은 정의철을 7라운드 포인트에서 제외함으로써 8라운드에 승부를 걸었다. 그리고 마치 짜인 각본처럼 두 팀원인 노동기, 이정우가 7라운드 포디엄을 휩쓸어 최종 우승을 위한 초석을 다지며 완벽한 전략의 승리를 만들 수 있었다. 대회 관계자들은 모두 한 결 같이 이번 시즌 대회를 엑스타레이싱팀이 만든 또 하나의 드라마로 표현한다.
금호타이어와 엑스타레이싱팀은 과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15~16 시즌 연속 통합우승을 하는 등 뛰어난 기술력과 오랜 팀워크를 갖추고 있다. 비록 금호타이어가 경영정상화 과정을 거치며 아무래도 이전보다는 지원을 덜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3년 동안에도 꾸준히 2위를 기록했고, 지난해 2분기 영업 흑자를 기준으로 금호타이어가 다시 R&D에 힘을 싣기 시작하며 엑스타레이싱팀도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힘든 시기에도 묵묵히 팀을 지키던 김진표 감독과 처음 수퍼루키로 팀에 입단해 이젠 베테랑이 된 정의철 그리고 언제나 이들을 지원하는 미캐닉들이 있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데뷔했음에도 놀라운 실력으로 팀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운 신예 노동기, 이정우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열정적인 엑스타레이싱 소속 레이싱 모델들의 응원도 우승에 힘을 보탰다. 타 팀의 경우 레이싱 모델들이 자주 바뀌지만, 엑스타레이싱은 유진, 반지희 등 간판 레이싱 모델들이 꾸준히 자리를 지키며 경기에 나가는 선수들을 응원해왔다.
사실 금호타이어의 모터스포츠는 2016년 더블챔피언을 달성한 이후 경영정상화의 일환으로 전사적으로 비용을 절감하면서 아주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연구개발 비용으로 인해 테스트 횟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그에 따른 수집된 데이터의 절대량도 부족했다. 이는 결국 경쟁사와 벌어진 데이터의 차이로 이어져 지난해까지 좋은 결과를 내기 힘들었다.
올해 성공의 발판은 2019년 말부터 조금씩 마련되었다. 지난해 2분기, 금호타이어는 10분기 만에 영업흑자로 전환하면서 R&D에도 다시 힘을 쏟기 시작했다. 공격적인 투자 결정으로 1대의 스톡카를 추가하며 타이어 테스트를 늘려갔고 테스트를 진행할수록 타이어의 성능은 빠르게 발전했다.
또한 한 번의 테스트를 진행하더라도 기존 테스트보다 양질의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테스트 프로세스를 변경했고, 테스트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통해 개발 방향이나 방법들이 기존과 다르게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바뀐 하나하나의 일들이 올 시즌 중후반 경기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다.
올해는 변경된 개발 프로세스를 통해 그 어느 해보다 많은 데이터들을 수집했고 단순히 수집만 한 것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직접적으로 타이어 개발의 방향을 결정하고 또, 설계에 적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개발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제한된 조건에서 최적의 성능을 낼 수 있는 레이싱 타이어 기술이 마련되었고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더블 챔피언이라는 대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금호타이어 대표이사 전대진 사장은 “엑스타레이싱팀이 초중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대역전에 성공해 금호타이어가 ‘기술의 명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며 “올해 얻은 경험과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내년에도 경쟁사를 더욱 압도할 수 있는 뛰어난 타이어를 만드는 한편, 국내를 넘어 해외 유수의 경기들에 다시 도전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