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삭 감독의 <미나리(Minari)>는 정착하려는 이민 가족이라는 전체의 입장 속에서, 구성원 각자의 시야로 바라보는 작품이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생존과 적응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을 포함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 가족의 이야기인 동시에 개인의 이야기
영화 초반 바퀴 달린 집으로 이사하는 가족의 모습은 새로운 상황에 대한 상반된 반응과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빠인 제이콥(스티븐 연 분)은 마치 특별한 곳에 놀러 온 제3자처럼 적극적이지만, 엄마인 모니카(한예리 분)는 이 게 현실이라는 것부터 강하게 받아들인다.
부유하지 않기에 오히려 대자연의 풍요를 만끽하고 향유하는 삶에 대해 <미나리>는 솔직하고 담담하면서도 냉철하게 조명한다. 가족의 이야기인 동시에 개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르게 느낌 속의 갈등은 관객 각자의 성향에 따라서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이는 이민뿐만 아니라 귀농에 관련된 가족 또한 느끼고 있을 갈등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귀농이 아니더라도 결혼 후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주변 사람들과 산 경험이 있는 분들 또한 <미나리> 속 개인이 가진 마음에 대해 크게 공감할 것이다.
바쁨과 느림의 상대성 또한 마찬가지이다. 변화도 실제 변화한 양보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울림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빠름과 느림 또한 그런 시야에서 해석할 수 있다.
<미나리>에서 남편은 빠른 곳에서 상대적으로 느린 곳으로 이주했지만 오히려 더 빠르게 무언가를 한다. 남편은 가족을 위해 명분을 강조할 때도 항상 빠르고 강하다. 이런 몰아침은 남편의 수동공격이 직접공격을 할 때보다 더 아프다고 느껴지게 만든다.
<미나리>는 가족이 하나가 되어 역경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 아니다.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개개인이 새로운 공간 안에 놓인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 맞춰 가는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앤(노엘 조 분)과 폴(윌 패튼 분) 또한 명확한 견해를 가졌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미나리의 속성과 정서! 영화 속 사람들의 정서? 감독의 정서? 윤여정의 정서?
<미나리>에서 할머니인 순자(윤여정 분)는 손자 데이빗(앨런 김 분)에게 훈육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려고 노력한다. 위험을 원천 차단하기보다는 위험이 위험으로 느껴지지 않게 만든다.
작은 위험 앞에서도 데이빗은 문제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그 믿음이 데이빗에게 자신감으로 전달되고 그 자신감은 기적적인 변화를 만든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순자의 대사를 들어보면 내용을 말할 때는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감정과 정서를 강조할 때는 영어를 쓴다. 데이빗에게 ‘strong boy’라고 하고 미나리에 대해 ‘beautiful’이라고 함으로써 마치 비유법을 쓰는 것처럼 강한 정서적 전달력을 발휘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미나리>에서 미나리는 잡초처럼 자라고, 누구든 뽑아 먹을 수 있는 식물이다. 쓰이는 곳이 많고 약처럼 활용되기도 한다고 알려준다. 감독이 말한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은 영화 속 사람들의 정서일 수도 있고, 감독 자신의 경험일 수도 있고, 윤여정의 삶과도 닮아 있다고 느껴진다.
<미나리>는 생존을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렇게 노력해야 버틸 수 있는 상황 속의 이야기이다. 새로움에 도전하는 용기 못지않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하다는 울림은 긴 여운으로 남는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