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K7의 첫 등장은 화려했다. 2009년에 선보인 K7(VG)은 전신인 오피러스보다 날렵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준대형차 시장에서 주목 받았다. 때마침 PPL로 참여한 드라마 ‘아이리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K7의 인기도 한 때 뜨거웠다.
그러나 K7의 인기는 거기까지였다. 2010년 등장한 현대 그랜저에 밀려 인기가 바로 수그러들었다. 기아는 2012년에 페이스 리프트 모델인 더 뉴 K7을 내놓았으나, 그랜저로 넘어간 전세를 역전시키지는 못했다.
2016년에는 2세대 K7(YG)은 마세라티를 닮은 외관에 현대차그룹 최초로 개선형 람다2 3.3ℓ 엔진을 달면서 경쟁력을 높였다. 그러나 역시 그랜저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최근 시승한 2021년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인탈리오(음각) 라디에이터 그릴을 바탕으로 항공기 날개를 형상화한 패턴을 반복 적용해 비행기의 힘찬 이륙을 연상케 하는 ‘커스텀 그릴’을 새롭게 추가한 것이다. 비록 ‘끝물’에 적용됐지만 이전 모델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독특해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대시보드 디자인은 2019년에 나온 K7 프리미어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디스플레이 양옆에 있던 송풍구를 그 아래로 옮기고, 디스플레이의 크기를 키운 덕에 정보를 좀 더 시원스럽게 볼 수 있도록 한 것. 기어 레버는 구형보다 조금 짧아졌지만 손에 착 감기는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편의장비와 안전장비는 풍성하게 갖췄다. 새로 탑재한 전방 충돌방지 보조-교차로 대향차(FCA-JT, Forward Collision-Avoidance Assist-Junction Turning)는 교차로에서 좌회전 시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차량과 충돌 위험이 감지될 경우 자동으로 제동을 도와준다.
또한 음성 인식 차량 제어 범위를 확대해 운전자가 음성으로 창문을 여닫을 수 있고, 시트 및 스티어링 휠 열선 기능과 통풍 기능을 켜고 끄는 것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고객 선호 편의 사양인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EPB), 전자식 변속 레버(SBW), 패들 시프트, 고성능 공기 청정 필터를 가솔린 모델과 하이브리드 모델에 기본 적용해 상품성을 강화했다.
2021년형 K7은 편안한 승차감과 주행 성능 강화를 위해 리어 글라스 두께와 운전석 휠 가드 흡음 면적을 증대하는 등 소음진동(NVH, Noise-Vibration-Harshness)도 개선했다.
이 밖에도 기아차의 커스터마이징 브랜드인 튜온을 통해 뒷좌석에서 편리하게 DMB, 영화 등의 미디어 시청이 가능한 후석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탑재할 수 있다. 후석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10.1인치의 화면에서 ▲USB와 외부기기를 연결해 음악, 동영상, 사진 등 다양한 미디어 포맷을 지원하는 미디어 기능 ▲Wi-Fi나 미러링 기능(안드로이드만 지원)으로 유튜브, 인터넷을 지원하는 커넥티비티 기능 ▲언어, 블루투스, 네트워크, 전원, 시스템 초기화 등의 설정을 지원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시승 모델인 가솔린 3.0은 부드럽고 조용한 주행감각이 인상적이다. 최고출력 266마력은 큰 차체를 여유 있게 이끌고, 31.4㎏·m의 최대토크는 부드럽게 올라간다. 넘치는 힘은 아니지만 모자라는 수준도 아니고 차급에 딱 어울리는 수준이다.
승차감은 기본적으로 부드러운 성향이다. 2009년에 K7이 처음 나왔을 때는 승차감이 엄청 딱딱했었고, 이를 지적받자 너무 부드럽게 세팅을 했다가 이후 적당한 승차감으로 바뀐 바 있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야 잘 조율됐는데, 끝나가는 모델에서 완성이 된 게 아쉽다.
R-MDPS(랙 구동형 전동식 파워스티어링)를 적용한 3.0 모델은 칼럼형에 비해 확실히 조향 이질감이 적다. 이 역시 진작 적용되었어야 할 옵션이다.
K7은 등장 12년 만에 ‘K8’에 자리를 물려주고 무대에서 사라진다. 괜찮은 상품성을 갖추었음에도 늘 현대 그랜저에 가려서 빛을 보지 못했던 K7과 달리, K8은 사전 계약부터 좋은 실적을 보여 기대를 갖게 한다. K8 시판 이후에도 K7은 가성비 좋은 준대형차로서 중고차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