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담당 기자로 살아온 게 올해로 26년째가 된다. 그동안 타본 차 중에는 시승기가 술술 써지는 차가 있는가 하면, 탄 지 수일이 지나도록 한 글자로 쓰지 못하는 차도 있었다.
최근 시승한 기아 K8은 다행스럽게도 전자에 속하는 차였다. K7의 뒤를 잇지만 한 급 위로 포지셔닝하기 위해 이름까지 바꾼 K8은 여러모로 K7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인상적인 외관, 품위 있는 실내
K8의 외관은 굉장히 독특하다. 특히 차체 색상에 따라서 인상이 천차만별인 게 특징이다. 가장 큰 이유는 범퍼와의 경계를 무너뜨린 입체감 있는 라디에이터 그릴 때문. K7의 마지막 버전이었던 2021년형에 적용된 V자 패턴이 그릴 곳곳에 배치됐는데, 흰색 차체의 경우 이 무늬가 묻혀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이는 흰색 K8을 보고 ‘백사(白蛇)’ 같다고로 말한다. 반대로 검은색이나 파란색처럼 어두운 계열의 색상에서는 이 패턴이 도드라진다. 개인적으로는 은은한 느낌의 ‘스틸 그레이’가 가장 멋지게 보인다.
실내에서는 가로로 길게 이어진 ‘파노라믹 커브드 디스플레이’가 가장 눈에 띈다. 전기차인 EV6에도 적용된 이 디스플레이는 좌우 경계를 무너뜨려 시인성이 좋고, 세련돼 보인다. 클러스터 하우징이 없어도 잘 보이는 편이지만,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의 것처럼 컬러 대비가 좀 더 두드러지면 더 또렷하게 보이겠다.
변속기는 K7의 레버식을 버리고 최근 기아차에 많이 쓰이는 다이얼 타입으로 바꿨다. 특이한 건 이 변속 다이얼을 조작하기 쉽도록 운전자 쪽으로 살짝 솟아올라 있다는 점이다. 변속 모드 등을 바꾸는 버튼들도 덩달아 높아짐으로써 조작이 훨씬 편해졌다.
또 하나 새로운 것은 인포테인먼트/공조 조작계다. 이 부분은 보통 물리적인 버튼으로 조작하도록 하지만 어떤 차들은 터치스크린으로 다 들어가 있기도 하다. 후자의 경우 인테리어를 심플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조작하기 위해 메뉴를 복잡하게 들어가야 하는 단점도 존재한다.
K8은 바로 이 점에 착안해 두 조작계를 터치 하나로 오갈 수 있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서 화살표 모양을 누르면 내비게이션과 기타 조작을 할 수 있도록 버튼이 나타나고, 송풍 모양을 누르면 공조장치 조작을 할 수 있도록 버튼이 바뀐다. 이렇게 하면 물리 버튼을 줄이면서도 터치스크린으로 들어가지 않고 편하게 조작할 수 있다.
▲고속 주행안정감 인상적
휠베이스는 2985㎜로, K7에 비해 40㎜가 길어졌다. 그만큼 뒷좌석 공간도 훨씬 넉넉하기 때문에 기업체 임원용 차로도 손색이 없다.
트레드는 앞 1621㎜, 뒤 1627㎜로 K7의 1602/1610㎜에 비해 17~19㎜가 커졌다. 커진 휠베이스와 트레드는 공간의 여유뿐 아니라 승차감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K7의 경우 부드럽지만, 고속에서는 차체가 살짝 뜨면서 불안한 느낌을 줬다. 반면에 K8은 무게 중심을 낮추고 하체가 묵직해지면서 한층 더 안정감을 준다. 주행성능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변화다.
타이어는 245/40R19 미쉐린 프리머시 AS를 장착했다. 최근 현대차와 기아는 미쉐린 등 외산 타이어를 많이 장착하는데, 이 타이어는 K8과의 궁합이 아주 좋다. 부드럽고 폭신한 주행감각과 저소음이 특히 인상적이다.
속도를 높여도 실내로 들어오는 소음은 꼼꼼하게 차단된다. K7도 정숙성이 좋은 편이었는데 K8은 그보다 한 수 위의 정숙성을 뽐낸다.
최고출력 300마력의 3.5 가솔린 엔진의 가속성능은 폭발적이진 않지만 아주 정직한 반응을 보인다. 급가속 때는 터보차저를 단 엔진에 비해 다소 느리지만, 배기량에 걸맞은 묵직한 감각으로 치고 나간다.
주행모드에 따른 변화는 K7보다 조금 더 커졌다. 그래도 스포츠 모드에서는 좀 더 단단해지면 아주 완벽해지겠다.
1.6 하이브리드는 180마력의 엔진에 44.2㎾ 출력의 전기모터를 조합했는데, 출력이 모자라는 느낌은 없다. 3.5에 비하면 출력이 낮지만, 공차중량이 1630~1650㎏으로 3.5(1640~1715㎏)보다 훨씬 가벼운 덕분이다.
K8의 인증 연비는 시승차인 3.5 19인치 AWD 기준으로 도심 7.9㎞/ℓ, 고속도로 12.0㎞/ℓ, 복합 9.3㎞/ℓ다. 요즘 연비 좋은 차들이 많아서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수준이지만, 배기량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1.6 하이브리드의 복합 연비는 16.8~18.0㎞/ℓ로 훨씬 좋다. 시승회에서 만난 1.6 하이브리드는 리터당 20㎞를 훌쩍 넘기기도 했기 때문에, 연비를 중시하는 운전자라면 하이브리드를 고르는 게 좋겠다.
K8의 가격(옵션 별도)은 2.5가 3279만~3868만원, 3.5가 3618만~4526만원, 3.5 LPG가 3220만~3659만원, 하이브리드가 3698만~4287만원이다. 연비 면에서는 하이브리드가 탁월하지만, 다른 모델들도 각기 장단점이 있으므로 꼼꼼하게 비교하고 선택하면 후회할 일이 없다. 특히 오랜만에 등장한 LPG 모델은 낮은 연료비 덕에 독자적인 수요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