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원, 김정현 극본, 신용휘, 윤라영 연출, tvN 금토드라마 <보이스4: 심판의 시간>(이하 <보이스4>) 제9화는 ‘사랑꾼이란 이름의 집착’이다. 스토킹에 대한 잘못된 내면 기저 작용을 보여주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과 모습을 모두 담아 가능한 균형을 맞추려고 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제 싸울 수 있는 용기’는 제작진이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메시지 중 하나일 것이다.
◇ 당신이 사랑이라고 생각한 거, 그거 범죄입니다
스토킹은 자신의 행동이 관계 형성을 위한 노력이었다고 믿는 잘못된 믿음에서 계속된다는 것을 <보이스4> 제9화는 보여준다. ‘사랑꾼이란 이름의 집착’이라는 회차 제목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스토킹을 하는 입장에서 자신을 스스로 사랑꾼이라 여길 수도 있고, 스토킹을 받는 사람이 처음에 스토킹인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때 상대방과 상대방의 행동을 사랑꾼과 사랑의 한 방법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렇게 잘못 오해했더라도 집착이 계속되면 바로 알아차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잘못 들어온 선입견에 잘못된 믿음까지 더해지면, 스스로 깨닫게 되는 데까지 그리고 나서 탈출을 결심하게 되는 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건 단지 그 대상 인물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보편적 문제일 수 있다.
<보이스4>는 성인이 된 후 저지르는 잘못된 행동이 어린 시절의 경험과 결핍에 의한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과 함께, 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도 모든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기에 과거 탓하며 핑계 대는 것에 명분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 또한 명확하게 제시한다.
어릴 적 정신적 학대를 받았던 사람은 학대를 사랑이라 착각할 수 있다. 단순한 착각, 순간적인 일회성 착각이 아니라 살기 위해 그렇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안 그러면 죽을 거 같으니까 그랬을 것인데, 어리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으로 잘못된 행동에 대해 명분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다시 보여주지 않으면, 어떻게 더 위험해질 수 있는지, 어떤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는지 알려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직간접적인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은 피해자가 더 잔인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위험성이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럴 수 있다는 개념 자체를 알게 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보이스4>에서 장효준(김영훈 분)과 권샛별(김시은 분)의 납치범인 치과의사 민혜린(신수현 분)은 어린 시절 자신이 받았던 학대를 사랑이라고 착각했었다. 그래서 모든 걸 엄마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장효준에게 자신이 한 스토킹 또한 사랑이라고 믿으며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렇게 하냐는 식으로 말했다.
민혜린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스스로 견디기 힘든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가해 고통과 괴로움을 줄이려는 투사를 하면서, 마음을 투사한 상태로 두지 않고 실제로 일어나도록 만드는 적극적 투사를 행했다.
민혜린은 장효준을 스토킹하면서 힘 투사적 동일시와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했고, <보이스4> 제9화에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자신의 엄마에 대해서는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를 행했을 수도 있다.
민혜린이 장효준을 남자로 좋아해서 스토킹을 했지만, <보이스4> 제9화에서 성적 투사적 동일시까지 노골적으로 연결하지 않은 것은 절묘하게 똑똑한 선택일 수 있다. 실제로는 성적 투사적 동일시까지 일어났을 수 있지만 작품 속에서 그렇게 표현됐을 경우 납치, 감금, 협박 등의 행동에 대한 초점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사적 동일시는 대상관계이론 심리학자 멜라니 클라인이 제시한 개념이다.
◇ 이하나의 사과와 노력! 대리만족의 제공!
<보이스4> 제9화에서 비모지방경찰청 골든타임팀 112 신고센터장 강권주(이하나 분)는 스토킹의 피해자인 장효준에게 더 빨리 믿고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며 더 노력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강권주의 사과는 <보이스4>가 사건 해결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줌과 동시에, 사과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는 대리만족의 울림을 전달한다.
◇ 이제 싸울 수 있는 용기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어린 시절 학대 경험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다. 훈육이라는 명목하에 폭력이 정당화되던 시절이 꽤 길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더 잔혹한 가해자로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과 위험성을 인지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 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난 결코 그러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사람 또한 있을 것이다. 폭력의 형태는 똑같을 수도 있고, 다른 방향으로 진화됐을 수도 있는데, 어쩌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이지 않을까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모지방경찰청 골든타임팀 콜팀 지령팀장인 박은수(손은서 분)는 현장에 출동해서 사건을 해결한 뒤, 피해자인 권샛별에게 너의 인생은 네가 선택하는 것이니 절대 스스로 학대하지 말라고 말한다.
박은수의 조언과 격려도 감동적이지만, 권샛별의 반응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샛별은 ‘이제 싸울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말한 뒤, 실제로 용기를 내서 자신의 할 말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시도했다.
<보이스4> 제9화에서 강권주의 사과와 앞으로의 노력 다짐, 박은수의 진심 어린 조언과 격려, 권샛별의 이제 싸울 수 있다는 용기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하나, 손은서, 김시은은 촬영하면서, 그리고 촬영이 끝나고 나서 어떤 마음이었을지 궁금해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