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원, 김정현 극본, 신용휘, 윤라영 연출, tvN 금토드라마 <보이스4: 심판의 시간>(이하 <보이스4>) 제12화는 ‘소낭촌의 비밀’이다. 대상관계이론(對象關係理論, Object Relation Theory)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의 ‘자기대상(self object)’ 개념을 <보이스4>에 적용하면, 동방민(이규형 분)과 강권주(이하나 분) 사이의 관계성과 그로 인해 형성되는 핵심 정서를 더욱 잘 파악할 수 있다.
◇ 대상관계이론, 하인즈 코헛의 ‘자기대상’
‘대상관계이론’은 현재의 인간관계가 과거에 형성된 인간관계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심리학 이론으로, 개인 내부의 심리 못지않게 대상(사람) 사이의 관계성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은 ‘자기대상’의 개념을 정립을 통해, 자기의 내부 세계보다 다른 사람을 포함한 환경과의 유기적인 관계에 더 초점을 두고 관계성을 도출했다.
‘자기대상’은 ‘자기의 일부로 경험되는 대상’을 뜻한다. 자기를 세우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와 연결된 외적 대상이 필요하고, 그 대상들과의 지속적인 자기대상 경험 속에서 자기가 강화되고 유지된다. 나의 가치와 의미, 매력은 나를 직접 바라봄보다는 나를 인정하는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자신감과 자존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자기대상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거울 자기대상(mirroring self object), 힘없는 자기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힘이 있고 완벽하고 전능한 이미지와 융합하려고 찾는 이상화 자기대상(idealizing self object), 부모와 유사하거나 동일하다는 느끼길 원하는 쌍둥이 자기대상(twinship self object)이다.
◇ ‘자기대상’의 관점에서 바라본 동방민과 강권주의 관계성
동방민은 자신이 강권주와 같은 부류의 인물이고 강권주와는 샴쌍둥이라고 강권주에게 반복해서 어필한다. 단순한 어필이라기보다는 그런 자신의 생각과 믿음을 강권주에게 확인받고 싶어 한다. 표면적으로는 두 사람의 관계성을 만드는 사람은 동방민이지만, 실제로 두 사람의 관계성을 결정짓는 사람은 강권주라고 볼 수 있다.
동방민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하며 악행을 저지르는 빌런이라기보다는, 강권주를 자극하거나 강권주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보인다. 이런 측면을 종합해 보면, 강권주는 동방민이 자기를 세우기 위해 자신과 연결된 외적 대상으로 선택한 강력한 자기대상일 수 있다.
◇ 강권주는 동방민의 거울 자기대상, 이상화 자기대상, 쌍둥이 자기대상
동방민에게 강권주는 기본적으로 거울 자기대상이면서 이상화 자기대상이기도 하고, 쌍둥이 자기대상이 되기도 한다. 동방민은 특수 분장으로 사전에 제작한 강권주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에 부착시켜 강권주의 모습으로 보이기를 원한다.
동방민에게 강권주는 단순히 심리적으로 반영되는 거울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완벽하게 동일 인물로 반영받기를 원하는 강력한 거울이라고 볼 수 있다. 동방민이 권주 특수 분장을 자신의 얼굴에 부착하는 장면에서 거울이 항상 눈앞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은, 거울 자기대상의 이미지를 더욱 명확하게 전달한다.
동방민이 강권주에게 메일을 보내는 내용을 보면 기본적으로 협박이 주를 이루는데, 이 협박에는 강권주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해 관심을 끌고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보이스4> 초반에는 동방민이 서커스맨의 모습으로 나올 때, 동방민에게 강권주 못지않은 뛰어난 청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중반 이후에는 동방민에게는 실제 강권주와 같은 초청력이 있는 게 아니라, 강권주처럼 되고 싶어서 특수 보청기를 쓰고 있다는 암시를 보여주었다.
동방민은 힘없는 자기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하여, 즉 강권주처럼 무슨 소리든 듣는 능력이 없는 불안감을 없애기 위하여 특수 보청기를 통해 강권주가 가진 완벽하고 전능한 이미지와 융합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신 또한 초청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동방민에게 강권주는 이상화 자기대상이다.
동방민은 자신과 강권주가 샴쌍둥이라고 지속적으로 말한다. 강권주가 자신의 쌍둥이 자기대상이라는 것을 대사를 통해 명확하게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거울 자기대상, 이상화 자기대상, 쌍둥이 자기대상 하나만 해당이 되어도 자기대상으로의 의미는 강력한데, 동방민에게 강권주가 세 가지 모두의 자기대상이 된다는 것은 동방민이 내적으로 무척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안정감과 안전감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의 자존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러할 수 있다. 동방민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있을 때 강권주를 자기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다른 인격이 나와 자신을 점령하고 있을 때 강권주를 자기대상으로 더욱 갈구한다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