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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7)

발행일 : 2021-09-15 15:11:44
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7)

서소문동에 서소문이 없다?

정동길에서 배재학당 지나 숭례문을 향하는 길에 언덕이 있다. 언덕을 오를 것인가, 내려갈 것인가? 잠시 길 위에서 내려다보니 기차가 지나간다. 도심 한복판 건널목에 차단기가 내려가고, 경고음 소리와 함께 차도 사람도 잠시 서 있다. 진기한 풍경이다.

서울역을 향하는 KTX 고속열차가 눈앞에 천천히 지나간다. 이곳은 100여 년 전 성문이 있었던 언덕이다. 숭례문과 돈의문 사이에 있었던 ‘소의문(昭義門) 터’다. 대문과 대문 사이 한양도성 서쪽의 소문이다. 소의문은 서소문이라 불리었다. 그런데 소의문은 어디에 있을까?

소의문은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빌딩과 빌딩 숲 사이에 성벽만 남아 있다. 길 건너 배재학당 역사박물관과 대한상공회의소 성벽을 따라 걸어도 성문은 보이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사라지고 없다. 서소문은 일제강점기 가장 먼저 없어졌다. 1914년 소실되었다. 가슴 아픈 성문에 얽힌 이야기가‘서소문동(西小門洞)’에 있다.

소의문이 없는 서소문동은 정동과 태평동 사이에 있다. 소의문은 광희문처럼 도성 밖으로 상여가 나가는 소문, 시구문이라 하였다. 서소문 밖 저잣거리였던 이곳은 중죄인을 처형하는 형장이었다. 특히 천주교 교인 44명이 처형 된 후 가장 많은 성인과 목자가 배출된 최대 순교성지다.

최철호 소장과 함께하는 우리동네 방방곡곡(7)

서소문 밖에는 마포나루와 양화진에서 수산물과 청과물이 거래되는 상업의 중심지로 칠패시장(七牌市場)과 서소문시장이 있었다. 칠패시장이 있던 이곳은 서소문 순교자기념관과 약현성당이 있는 역사적인 공간이다. 이곳에 죽음의 상징인 칼과 생명의 상징인 물을 대비시키는 탑도 있다. 또한 가장 오래된 성당인 약현성당도 서소문 밖에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다. 서소문은 서소문동과 중림동의 경계다. 도성 안 대한문 건너 환구단이 있는 소공동과도 경계가 된다. 이제 소의문이 있어야 도성 안 역사가 살아 숨 쉬듯, 서소문 고가차도에 소문이 있어야 도성 밖 분위기도 따뜻해질 것 같다.

서소문 밖이 변하고 있다. 가을에 딱 걷기 좋은 동네로 탈바꿈하였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자, 문화를 소개하는 시민들의 휴식처다. 한강으로 가는 길에 모든 물자가 서소문 밖으로 모여들었듯, 용산과 마포로 가는 길에 서소문 옛길이 포근하게 바뀌었다. 서소문동도 혜화문이 있는 동소문동처럼 성문이 언덕 위에 다시 세워졌으면 좋겠다. 우리 곁에 소의문이 다시 보이는 그날을 그려보자. 꿈은 이루어진다.

가을에 서소문동을 거닐며 마음 판에 옛적‘서소문’을 스케치해 보자. 마음이 닿는 곳에 발걸음이 가는 곳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어! 보인다. 소의문은 이렇게 살아난다.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남서울예술실용학교 초빙교수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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