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龍山)은 한반도의 배꼽이다
용산은 왜 용산이라 했을까? 용산은 한강에 용이 나타났다고 알려지면서 불리었다. 양화나루 동쪽 언덕을 용두봉(龍頭峰)이라 하였다. 산 모양이 용처럼 한강으로 들어가는 모양새라 용머리 고개다. 과연 어디일까? 가까이 찾아가 저 멀리 산줄기를 바라본다. 용이 살던 곳일까, 용이 나타날 곳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선다.
인왕산과 마주 보는 안산에서 산자락을 따라가니 약현이요, 지금은 중림동 약현성당이다. 이 자리에 왜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이 세워졌는지 이해가 갈 듯하다. 약현성당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서울의 관문인 숭례문과 목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가 막힌 자리다. 그야말로 명당이다.
언덕을 내려가는 듯하더니 다시 오르막이다. 만리재라 불리는 만리현 고개를 넘어 왼쪽으로 돌아서니 너른 언덕 아래 양지바른 곳이 효창원이다. 한때는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와 그의 어머니 의빈 성씨가 안장된 곳이 효창원(孝昌園)이다. 용산과 연결되는 산자락은 누가 보아도 산세가 좋다. 용산은 한강변 높지 않은 산이다.
용산강은 서강, 마포, 양화진과 함께 한강을 통한 물산의 집결지였다. 600여 년 전부터 용산에 군량미 조달을 위한 둔전과 세곡선에서 내린 곡물의 창고가 많았다. 용산은 물류와 교통의 중심지이자, 군사적 요충지다. 옛 지도와 우리나라 철도지도를 보면 그 안에 답이 있다.
옛 용산과 신용산(新龍山)이 함께 있는 곳이 용산구다. 목멱산 동봉을 따라 둔지산 옛길을 걸으면 오래된 느티나무가 언덕 위에 서 있다. 둔지미 마을의 당산 역할을 하였던 느티나무다. 둔지산 물길 따라 만초천 따라가면 용산을 만날 수도 있다.
마포구와 용산구의 경계에 있는 만리재에서 효창원 지나 용머리 고개와 청암동으로 이어지는 긴 산줄기가 용을 닮은 산, 용산이다. 야트막한 산 용산 하지만 산 정상에 오르면 한강 위 노들섬과 밤섬이 보인다. 노량진을 향해가는 한강철교 지나 서달산과 병풍처럼 펼쳐진 관악산 봉우리들도 한눈에 보인다. 이곳이 꿈과 미래를 꿈꾸었던 용산이다.
한강이 보이는 산, 인왕산과 안산에서 발원한 만초천(蔓草川)이 흘러 용산강이 되었다. 만초천과 용산강이 만나는 원효대교 근처 그곳에 용산이 있다. 용산은 조그만 동산들이 서로 연달아 있고, 큰 강을 끼고 풍광이 좋은 언덕배기다. 용산은 미군이 주둔했던 ‘용산기지’와는 거리가 먼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용산역’과도 거리가 멀다.
600여 년 전 한강 따라 조세와 군수 물자를 수송하고 집적하였던 지역이 용산강(龍山江)이요, 한양도성 밖 성저십리에 있던 용산강이 한눈에 보이는 야트막한 산이 용산(龍山)이다. 지금은 그곳에 용산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용산구 산천동과 마포구 도화동의 경계가 용산이다.
한반도의 배꼽, 서울의 중심 용산에서 어떤 기억을 담아갈 것인가? 100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작, 새로운 만남의 장 용산이 우리에게 손짓한다. 그곳을 함께 걷고 싶다.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남서울예술실용학교 초빙교수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