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지산(屯芝山)은 목멱산과 한강 사이에 있다
서울 한복판에 이름도 생소한 산이 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산이다. 아니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산이다. 아무나 살지 못한 산이 서울에 있다. 아니 서울이 아닐 수도 있다. 서울에 있으면서도 서울이 아닌 ‘금단의 땅’이다. 주소가 없다. 지도에도 없다. 과거 이야기만 글과 그림 속에 전해져 온다.
그곳을 걷고 싶다. 새로운 곳을 걸으면 길이 된다. 목멱산 동봉에서 이태원 부군당 지나 한강으로 가기 전에 보인다. 목멱산 아래 가장 낮지만 가장 멀리 보이는 산이다. 목멱산을 등지고 한강 너머 관악산 봉우리도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이다. 누가 이 산에 살았을까?
김홍도의 스승이자 시·서·화 삼절로 널리 알려진 표암 강세황은 이곳에 살며 글 읽고, 그림을 그렸다. 둔지산 아래 정자를 짓고, 목멱산을 보며 삼각산의 가을 풍경을 담았다. 그림 속 만초천에 흐르는 물소리, 목멱산에서 나무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를 그림에 담았다.
230여 년 전 ‘남산여삼각산도(南山與三角山圖)’ 그림 속 마을이 둔지미 마을 안 정자동(亭子洞)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계단 위에서 바라보는 미군기지 안 산아래가 정자동이다. 수백 년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도 그림 속에 있다. 하지만 115여 년 동안 쉽게 다가설 수 없었던 산이 되었다. 더욱 궁금하다. 역사 속에서 만날 수 있던 산이요, 동네다.
백악산을 주산으로 인왕산과 안산 그리고 목멱산이 빌딩과 빌딩 숲에 살포시 이어져 있다. 서울이 마치 산처럼 보인다. 목멱산에서 한강을 건너기 전 천혜의 요새가 있다. 아니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러일전쟁 후 일제는 이 일대를 조선주차군 사령부의 주둔지로 사용하였다. 목멱산(木覓山)과 한강 사이에 낮은 구릉지대 약 300만 평을 강제 수용하였다. 용산과 둔지산은 바다에서 한강진까지 올 수 있는 수운의 최적지다.
제물포에서 용산역까지 철길도 만들었다. 이촌역 지나 서빙고역 가기 전 이곳에 화물열차도 들어갔다. 경인선과 경부선 그리고 경원선까지 연결된다. 이 언덕에 사령부가 있었고, 총독부 관저도 있었다. 이곳이 둔지산(屯芝山) 둔지미 마을이다. 한반도의 배꼽이자, 서울의 중심에 ‘금단의 땅’ 둔지산의 비밀이 숨어 있다.
둔지산은 해방 후 미군기지가 되어 갈 수 없었다. 이곳은 어디인가? 해방촌과 미군기지 사이 높은 담벼락이 경계다. 버스와 자동차가 멈추지 않고, 사람들도 관심 없이 지나친다. 하지만 목멱산 물길과 둔지산 물길이 만나는 곳이 있다. 미군기지 안 가장 아름다운 곳이 만초천이다.
용산팔경 중 하나인 만초천은 삼각지에서 합류되어 용산강(龍山江)으로 모였다. 둔지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이곳은 아픔의 공간이다. 아무도 쉽게 들어갈 수 없어 시간도 멈춰버렸다. 누구도 즐겁게 볼 수 없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제 함께 가 보아야 한다. 누구나 쉽게 걸어가 시간여행을 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숲속 생태공간으로, 청년들은 역사공간으로, 시민들은 문화공간으로 만나면 좋겠다.
둔지산 정상에 서면 목멱산이 병풍처럼 눈앞에 있다. 목멱산 소월길도 단풍이 들어간다. 서울의 상징 N타워도 웃는 듯 조명이 바뀐다. 한강 앞 관악산 풍경도 봉우리마다 춤추듯, 둔지산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이 가을에 함께 걸어 보실까요!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남서울예술실용학교 초빙교수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