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쿠샤(DILKUSHA)’의 비밀이 행촌동에 있다
인왕산과 목멱산이 보이는 성곽은 용의 꼬리가 춤추듯 펼쳐져 있다. 인왕산에서 돈의문을 향하는 성곽길에 노란 은행나무 잎이 여기저기 나부낀다. 도성 안과 밖까지 노랗게 물들고 있다. 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높지만 그다지 험하지 않다.
바위는 성벽이 되고, 나무와 이끼는 성돌과 성돌 사이에 성곽이 되었다. 500여 년을 살아온 은행나무가 이 마을의 수호신처럼 우뚝 서 있다. 세 사람이 손을 잡아도 닿지 않는 널따란 은행나무는 누가 심었을까? 임진왜란 3대첩 중 행주대첩의 도원수 권율 장군 이야기가 이곳에 숨어 있다.
500여 년을 산 은행나무가 있는 이 동네는 행촌동(杏村洞)이다. 도성 밖 내의원들이 살며, 은행나무의 열매를 약재로 썼다. 사위가 된 백사 이항복은 도성 안 필운동에 살았고, 장인인 권율 장군은 도성 밖 행촌동에 거주했다. 은행나무에서 불과 10m 거리에 서양식 근대 건축물이 있다.
오래된 성벽과 오래 산 은행나무 옆에 붉은 벽돌집이 있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 붉은 벽돌 구조다. 예술적 건물이자, 역사적 공간이 인왕산에 있다. 시간이 잠시 멈춘 듯 비장하고 고요하다. ‘딜쿠샤 1923(DILKUSHA 1923)’이라 정초석에 새겨져 있다. ‘기쁨과 이상향, 행복한 마음이 전해지는 꿈의 궁전’이라는 산스크리트어다.
광산 엔지니어이자 UPI 통신원인 앨버트 테일러의 집이다. 앨버트 테일러는 3·1운동과 독립선언서를 전 세계에 타전한 미국인이다. 3·1운동 후 지방 곳곳에 이어진 독립운동도 기사화해 알렸다. 제암리 학살사건도 앨버트 테일러와 스코필드가 있어 가능했다.
앨버트 테일러는 일제강점기 사업가로서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혹독한 시간도 보냈다. 태평양 전쟁이 임박하자 앨버트 테일러는 서대문 형무소에 6개월간 구금되고, 부인 메리 테일러는 ‘딜쿠샤’에 가택 연금된다. 이후 강제 추방되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꽁꽁 묶여있던 ‘딜쿠샤의 비밀’은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방문하며 알려졌다. 1919년 2월 28일 숭례문 밖 세브란스병원에서 독립선언서와 함께 태어났다. 어린 소년은 87세 노구로 책 한 권을 가지고 서울에 왔다.
인왕산 성곽길 따라 제일 높은 곳에 집을 지었던 추억도 되새겼다. 도성 밖 드넓은 집터 옆 커다란 은행나무와 큰 우물이 있던 15,000여 평 규모의 ‘딜쿠샤’를 알렸다. 3·1운동 100주년에 손녀인 제니퍼 테일러가 기증한 유품으로 ‘딜쿠샤와 호박 목걸이’ 전시회도 열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먼 길이지만 ‘꿈과 희망의 궁전’인 딜쿠샤에서 길을 찾았다. 앨버트 테일러 묘는 미국이 아닌 한국에 있다. 한강이 보이는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잠들어 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비바람이 불어도 번개가 쳐도 따뜻한 마음은 그 세월을 이겨 낼 수 있다. 입동이 지나 은행나무 노란 잎이 떨어져도 봄이 오면 <딜쿠샤> 옆 은행나무에 연두색 싹이 필 것이다. 수백 년을 그랬던 것처럼...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남서울예술실용학교 초빙교수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