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산은 서울의 상징이자, 한반도의 중심이다
새해가 밝았다. 목멱산에 떠오르는 태양이 새로운 아침을 알린다. 강추위에 새롭게 뜨는 태양을 보려는 사람들이 목멱산 정상에 서 있다. 바람이 차다. 목멱산 봉수대 앞에도, 목멱대왕 국사당 터 팔각정에도 삼삼오오 모여있다.
모두가 한강 너머 동쪽을 바라보며 뜨는 해를 기다린다. 어둠을 헤치고 소나무 틈새로 영롱한 해가 떠오른다.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와우~ 함성과 함께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나온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남산은 우리에게 친근한 이름이다. 하지만 남산은 서울이 아닌 지방 어디에도 있는 산이다. ‘목멱산은 한양도성의 남쪽에 있는 산으로 남산(南山)’이라 불리며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애국가에서 누구나 함께 부르는 산이 남산이다. 한강에서 청계천 지나 경복궁을 가려면 이 산을 지나야 곧장 갈 수 있다. 남산 1호 터널을 탈까, 3호 터널로 갈까 고민하는 사이 목멱산은 안중에도 없다. 언제부터 목멱산은 남산이 되었을까?
목멱산은 600여 년 전 한양을 설계하며 삼각산과 한강 사이에 위치한 중요한 곳이었다. 백악산과 삼각산이 정면에 있고, 왼쪽에 인왕산과 안산이 보이는 군사적 요충지다. 오른쪽에 낙타산이 있고, 저 멀리 아차산 봉수대가 낮과 밤으로 소식을 전해오는 통신수단 집결지였다.
비가 올 때나 바람이 불고 안개가 낄 때 광주 천림산과 양천 개화산에서 나팔소리로 목멱산 동봉과 서봉에 소식을 알렸다. 목멱산은 봉수제의 종점으로 전국 각지와 연결하는 전략상 요지였다. 목멱산은 서울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목멱대왕(木覓大王)이라 봉하며 목멱산신을 모신 국사당이 목멱산 정상에 있었다.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 상을 모시며 목멱산신은 호국의 신으로, 왕들이 국사당에 거둥하였다. 사직단과 마찬가지로 기우제와 기청제 그리고 기곡제를 이곳에서 지냈다.
봄·가을에 하늘의 별과 달이 머무는 28수에 초제도 지냈다. 국가의 중요한 가치와 행사가 목멱산 정상에서 이루어졌다. 목멱산은 역사 속 영산이자 명산이며, 문화 속 관광 1번지다. 마치 달리는 말이 안장을 벗을 정도로 편안한 산이 목멱산이다.
목멱산 오르는 길에 ‘한양공원(漢陽公園)’이라고 쓰여진 고종의 친필 비석도 있다.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걸으면 백범광장에 김구 상과 성재 이시영 상도 볼 수 있다. 또한 안의사 광장에는 안중근 의사의 순국 전 쓰신 유묵들도 만날 수 있다. 그뿐인가? 남산도서관과 용산도서관 사이에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 상이 당신을 기다린다.
이제 남산을 목멱산으로 되돌려 놓으면 어떨까? 남산공원은 ‘한양공원’으로, 남산타워는 ‘목멱 N타워’로, 남산도서관은 ‘목멱산 도서관’으로 바꾸어 주어야 할 시간이다. 전국적으로 남산이 많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은 고유명사가 아니다.
목멱산은 동봉과 서봉 그리고 잠두봉이 펼쳐져 한강까지 산줄기가 연결된 커다란 산이다. 숭례문에서 광희문까지 이어진 널따란 산이 목멱산이다. 용산공원이 새롭게 바뀌면, 서울의 중심이자 한반도의 허브가 목멱산에서 한강까지 이어질 것이다.
목멱산을 우리가 품어야 할 시간이다.
모두 함께...
으랏차차차~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