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 끝의 만남이었다. 폭스바겐코리아가 야심 차게 준비한 8세대 골프를 드디어 부산에서 조우했다.
1974년 탄생한 골프는 오늘날까지 폭스바겐을 이끌어준 중심 모델이다. 디자인을 맡은 이탈디자인의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상업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모델이기도 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골프는 더욱 커지고 세련되게 다듬어졌지만, ‘해치백의 교과서’라는 수식어는 여전히 따라붙는다.
신형 골프의 차체 크기는 길이 4285㎜, 너비 1790㎜, 높이 1455㎜, 휠베이스 2636㎜다. 7세대 골프보다 30㎜ 길어지고 10㎜ 좁아지고, 5㎜ 높아졌다. 휠베이스는 4㎜가 줄었다. 일반적으로 구형보다 길어지고 넓어지고 낮아지는 최근 추세와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준중형급 해치백의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키 177㎝ 성인 남성이 앉았을 때 앞, 뒤 모두 편안한 느낌을 주고, 레그룸, 헤드룸 모두 넉넉하다. 특히 구형에 없던 전동 시트와 메모리 시트, 허벅지 지지대, 요추 지지대, 마사지 시트(이상 프레스티지 모델)를 갖춰 더욱 편안한 운전을 돕는다. 트렁크 용량은 기본 381ℓ이고, 2열 시트를 완전히 접으면 1237ℓ로 확장된다.
인테리어는 극적으로 달라졌다. 아날로그 기반의 구형과 달리, 클러스터와 센터 디스플레이, 라이트 컨트롤 스위치 등이 모두 디지털 방식의 ‘이노비전 콕핏’으로 바뀌었다. 10.25인치 고해상도 디지털 계기반 ‘디지털 콕핏 프로’는 클래식, 주행보조 시스템, 간소 모드 등 3가지 뷰(View) 모드 중에 고를 수 있다.
물리적 버튼이 사라진 건 최신 트렌드에 잘 맞춘 것이지만, 사용 편의성에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특히 스티어링 휠과 공조, 볼륨 장치는 간혹 잘못 터치하는 경우가 생겼다.
전통적인 기어 레버는 ‘시프트 바이 와이어(Shift-by-Wire)’ 방식의 전자식 기어 셀렉트 레버로 대체됐다. 포르쉐의 모델들에서 보던 것과 비슷하다. 개인적으로는 손에 착 감기는 디자인의 기어 레버를 더 선호하지만, 기어 레버는 사라지는 추세임이 분명하다.
신형 골프는 차세대 EA288 evo 엔진을 품었다. 부분 변경 티구안에 이미 선보여 성능을 인정받은 그 엔진이다. 최고출력 150마력, 최대토크 36.7㎏·m로, 최대토크는 1600~2750rpm에서, 최고출력은 3000~4200rpm에서 뿜어낸다. 7세대 골프 TDI의 140마력, 25.5㎏·m에 비해서 출력과 토크 모두 대폭 향상됐다.
기술적인 핵심은 트윈 도징 시스템. 하나의 SCR 촉매변환기를 썼던 기본 방식과 달리, 하나는 초기 연소 단계에, 또 하나는 배기 단계에 촉매변환기가 작동하도록 해 질소산화물을 80%까지 제거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당 104g으로, 7세대 골프 TDI의 128g보다 대폭 낮아졌다.
실제 주행에서는 뛰어난 정숙성과 진동 저감 능력이 돋보였다. 실내 소음은 귀를 쫑긋 세워도 잘 들리지 않는 수준이고, 진동도 거의 없다. 다만 저속 주행과 급가속 때 ‘가르릉’ 거리는 디젤 특유의 소리는 남아있다.
엔진의 진동이 줄어들면서 승차감도 확실히 좋아졌다. 앞 스트럿, 뒤 멀티링크로 이뤄진 서스펜션은 때론 부드럽게, 때론 탄탄하게 차체를 잘 받쳐줬다.
에코, 노멀, 스포츠, 인디비주얼로 세분화된 주행모드의 구분도 확실했다. 스포츠 모드 주행 때 확실히 힘이 넘치는데, 시승 과정에서 체크해 보니 연비가 18㎞/ℓ에 이르렀다. 힘을 쥐어짜면서도 좋은 연비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인증 연비는 도심 15.7㎞/ℓ, 고속도로 21.3㎞/ℓ다.
신형 골프의 가격은 프리미엄 3625만4000원, 프레스티지 3782만5000원이다. 3000만원 초반대부터 시작하던 기존 모델과 비교하면 시작가는 올랐지만, 트래블 어시스트,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레인 어시스트 등이 포함된 ‘IQ,DRIVE’가 기본 적용된 걸 고려하면 크게 비싸진 건 아니다. 150만원 정도의 가격 차이에 비해 편의장비 차이가 뚜렷하므로 가성비는 프레스티지 모델이 더 낫다.
반나절 동안의 짧은 시승 시간이었지만, 신형 골프의 진가를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마디로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이게 해치백이다’라는 메시지 전달이었다.
◆빛나는 조연, 폭스바겐 아테온
이날 시승회에서 ‘의외로’ 만족스러웠던 건 아테온이다. 사실 아테온은 꽤 여러 번 시승했던 모델이고, 이번 모델은 부분 변경에 그쳤지만, 골프와 비교하니 그 가치가 더욱 두드러졌다. 골프가 못하다는 뜻이 아니라, 아테온이 상대적으로 더 좋아 보였다는 의미다. 가격이 더 비싼 데 더 좋은 건 당연한 게 아니냐고? 5000만원대 가격을 주고도 만족스럽지 못한 차는 차고 넘친다.
신형 아테온은 이전 모델 대비 10마력 상승한 200마력의 최고출력과 40.8㎏·m의 최대토크를 발휘하는 차세대 EA288 evo 2.0 TDI 엔진을 탑재했다. 복합 연비는 15.5㎞/ℓ로, 초기 모델의 15.0㎞/ℓ, 2020년에 나온 모델의 15.2㎞/ℓ에 비해 또 한 번 향상됐다.
아테온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승차감이다. 비슷한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골프는 ‘두둑’하고 두 단계로 움직인다면, 아테온은 ‘스윽’하고 부드럽게 한 번의 동작으로 넘어간다. 245/40R 19 사이즈의 휠과 타이어도 안정적인 주행감각에 일조했다.
아테온은 우선 앞바퀴굴림 프레스티지 트림 한 가지만 들어오고, 가격은 5490만8000원이다. 이후 프레스티지 4모션과 R-라인 4모션이 추가될 예정이다.
◆엔진 라인업은 다양화할 필요
모든 게 더 좋아진 골프와 아테온이지만, 엔진 라인업의 선택 폭이 좁다는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유럽에서는 이미 판매 중인 골프 GTE와 아테온 e하이브리드 등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PHEV) 모델이 한국에 도입될 계획은 아직 없다고 한다. 이들 모델은 미국에서 판매되지 않아 국내 법규에 맞춘 별도의 튜닝 과정이 필요한데, 아직 판매 규모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파는 아테온 가솔린 모델 역시 폭스바겐코리아는 수입 계획이 없다고 했다. 물론 고성능 가솔린 모델 ‘신형 골프 GTI’는 예정대로 상반기 중 선보인다.
폭스바겐그룹은 모든 계열 브랜드가 전동화를 서두르고 있다. 순수전기차인 ID.4도 상반기 중에 한국에서 데뷔할 예정이다. 여기에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 모델이 가세한다면 폭스바겐의 경쟁력은 국내에서 더욱 높아질 것이다. 현재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카에 대한 세제 혜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입차가 인기를 끄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폭스바겐코리아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