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은 절두산 순교성지다
춥지 않은 소한이 없듯, 포근하지 않은 대한도 없다. 겨우내 얼었던 얼음들이 녹기 시작한다. 추위도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다. 서빙고를 따라 노들섬을 지나니 노들강변 봄버들이 손짓한다. 화려한 노들섬에 비하면 밤섬은 갈 수 없는 무인도다. 백로가 노닐던 노들섬과 한강 변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는 듯 색깔이 조금씩 바뀐다. 24절기 마지막 대한이다. 아직 찬 공기가 목덜미에 앉는다. 밤 모양 같은 밤섬에 오리들이 오가며 바뀌는 계절을 알린다. 밤섬에는 사람이 언제까지 살고 있었을까?
강물을 바라보니 출렁대는 물결 소리가 마치 파도와 같다. 원효대교 아래 만초천 만나는 용산강은 바닷물처럼 출렁거린다. 서강 지나 양화진까지 바람결에 걸어간다. 만조시 양화나루에 숭어와 감성돔이 잡힌다고 한다. 사실일까? 양화대교까지 바닷물이 밀려온다. 신기하다. 화려한 아치형 다리와 지하철이 다니는 당산철교 사이 강물이 멈춘다. 출렁이는 물결과 교각에 부딪치는 물소리, 잡히는 고기까지 바다라고 해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양화대교는 수많은 한강 다리 중 가장 많은 사연을 간직한 다리다.
양화진은 서울에서 양천 지나 강화로 가는 유일한 뱃길이었다. 그 옛날 바닷물이 용산강까지 왔으니 용산은 그야말로 도성 밖 가장 번성한 곳이었다. 한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용산강 역할을 양화진이 하였다. 한양도성에서 양천과 강화로 나갈 때 양화나루를 반드시 거쳐야 했다. 한강 3대 나루터로 송파진·한강진 그리고 양화진이었다. 한강 가운데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강변도 용산강과 양화진이다. 정자가 많고, 머무르는 사람도 많았다. 봄이 되면 꼭 가고픈 곳도 양화나루다.
버드나무가 우거져 버들꽃 피는 봄이면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한강에서 솟아오른 봉우리는 마치 머리를 치든 누에와 같아 ‘잠두봉’이라 하였다. 아니 용 한 마리가 한강에서 올라와 봉우리에 앉아 있어 ‘용두봉’이라고도 하였다. 높지 않은 봉우리지만 행주산성과 궁산까지 볼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다. 들머리라 불리는 잠두봉의 시작은 도대체 어디일까? 한양도성을 둘러보니 인왕산과 안산에서 산줄기가 이어진다. 금화산을 거쳐 용머리가 있는 용산과 와우산 지나 잠두봉까지 이어지니 한강 변 양화진이 더욱 중요한 자리이다.
양화나루 언덕에 절두산은 또 어디인가? 잠두봉에서 수많은 천주교인들의 목이 잘려 순교된 가슴 아픈 곳이다. 병인박해와 병인양요가 일어난 양화나루 잠두봉은 역사 속 슬픈 이름도 있다. 꿈틀거리는 누에머리를 닮은 ‘잠두봉’은 누군가의 머리를 자른 절두산(切頭山)이 되어 버렸다. 버들꽃 날리는 양화진은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수천 명의 피가 얼룩진 순교지이자 성지다. 이곳은 절두산 순교성지로 천주교 순교자 박물관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상이 한강 너머 서해를 바라보며 묵묵히 서 있다.
한강 따라 누에머리를 닮은 잠두봉에 다다르면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용산강에서 양화진까지 봄이 오는 소리와 함께 시나브로 걸어 보실래요?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