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는 미국 자동차회사답게 SUV와 RV에서 경쟁력이 두드러지는 브랜드다. 한국 시장에서도 승용차로는 큰 재미를 못 보았지만, SUV로는 꽤 짭짤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작년 초에는 포드 마니아들을 들뜨게 한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브롱코’의 한국 상륙 소식이었다. 그러나 미국 본토에서의 뜨거운 예약 열기와 반도체 부족 이슈 등으로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2021년을 그냥 흘려보냈다.
그렇게 잊히나 했던 브롱코는 올해 3월, 드디어 한국에서 첫선을 보였다. 그리고 최근 경기도 안성 일대에서 시승회를 통해 기자단에게 체험할 기회가 주어졌다.
◆1966년 첫 등장, 35년 만에 극적인 ‘부활’
‘브롱코(Bronco)’는 야생마라는 뜻으로, 1966년 포드 라인업에 처음 등장했다. 1978년에 2세대, 1980년에 3세대, 1987년에 4세대, 1992년에 5세대가 나왔고, 1996년을 끝으로 시장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다 35년에 지난 지금, 1세대 모델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한 새 모델이 한국에 상륙했다.
한국에 들어오는 브롱코는 ‘아우터뱅크스’ 한 가지다. 차체 크기는 길이 4810㎜, 너비 1930㎜, 높이 1845㎜이고, 휠베이스는 2950㎜다. 지프 랭글러 4도어 루비콘과 비교하면, 너비는 브롱코가 35㎜ 넓지만 길이는 브롱코가 75㎜ 짧고, 높이는 브롱코가 5㎜ 낮다. 휠베이스는 브롱코가 60㎜ 짧다. 전반적으로 너비 빼면 브롱코의 사이즈가 조금씩 작다.
파워트레인도 큰 차이를 보인다. 브롱코는 V6 2.7ℓ 에코부스트 가솔린 엔진을 10단 자동변속기와 연결해 최고출력 314마력, 최대토크 55.0㎏·m를 낸다. 반면에 지프 랭글러 루비콘/오버랜드는 직렬 4기통 2.0ℓ 가솔린 터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해 최고출력 272마력, 최대토크 40.8㎏·m를 뿜어낸다. 공차중량은 랭글러가 2010~2120㎏, 브롱코가 2295㎏으로 브롱코가 조금 더 무겁다. 마력당 중량비(1마력이 담당하는 중량(㎏))는 브롱코가 7.31, 랭글러가 7.39~7.79로, 브롱코가 조금 더 우월하다.
제원에서는 이렇게 차이를 보이는데, 이번 시승에서는 이걸 다 파악하기 힘들었다. 안성 인근의 채석장에서 이뤄진 시승은 오프로드 주파 능력에 초점을 맞춰 온로드 주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1시간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의 세션을 많이 마련해 최대한 많은 이들이 브롱코를 체험하도록 한 것인데, 다음에 시승차를 다시 받아서 온로드에서도 평가해봐야겠다.
◆두 개의 코스, 팔색조 매력
시승 코스는 두 가지가 마련됐다. 하나는 채석장 주위를 타고 오르며 G.O.A.T 모드를 체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다양한 지형지물을 돌파하는 코스로 짜였다. G.O.A.T. 모드는 ‘Goes Over Any Type of Terrain’의 약자로, 6가지 주행모드가 지형에 맞게 작동하는 ‘지형 관리 시스템’이다.
시승은 출발부터 험난했다. 일단 기어를 4L로 바꾸고 G.O.A.T 모드를 진흙길로 바꿨다. 급경사의 언덕길을 돌파하기 위한 준비다. 승차감은 조금 단단한 편. 랭글러는 험로에서 살짝 더 부드러운 승차감을 보였던 데 비해 브롱코는 차체가 단단한 한 덩어리처럼 움직인다. 아쉽게도 서스펜션 강도를 조절하는 기능은 없다.
이윽고 만난 급경사 오르막 코스. 기어를 수동 2단으로 고정하고 엔진회전수를 4000rpm 이상으로 유지해야 돌파가 가능한 곳이다. 상당히 와일드함에도 ‘재밌다’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을 만큼 흥미롭게 코스가 구성됐다. 험로를 주행할 때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카메라로 전방을 계속 비출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차는 카메라로 전방을 비춘 후 조금 달리면 꺼지는데, 브롱코는 계속 켜둘 수 있다는 얘기다. 보닛 아래에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은 카메라가 비추는 영상을 확인하면 되니까 믿음직하다.
급경사 내리막 코스에서는 ‘트레일 원 페달 드라이브’ 기능을 써봤다. 이 기능은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내리막길 안전 주행장치(HDC)와 비슷한 건데, 속도 설정 범위가 좁거나 아예 없는 보통의 HDC와 달리, 운전자가 설정할 수 있는 속도 범위가 꽤 넓고 0.5㎞/h마다 조절할 수 있다. 이 기능을 써서 급한 내리막길에서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코스는 ‘트레일 회전 시스템’을 쓰는 구간이다. 한 번에 차를 회전시키기 어려운 급코너에서는 보통 차를 앞뒤로 여러 번 움직여서 지나가게 되는데, 이 기능을 쓰면 차가 마치 팽이처럼 돌면서 회전반경을 확 줄여준다. 회전하고자 하는 방향의 반대 바퀴의 구동력을 잠그고 나머지 바퀴의 구동력을 높여서 이런 기능이 가능해졌다. 실제로 조작해보니, 마치 차 중간에 바퀴가 하나 더 있는 것처럼 좁은 코너를 자연스럽게 돌파한다.
이어서 마련된 또 다른 코스는 넓은 평지에 다양한 지형지물을 설치해 브롱코의 주행 특성을 속성으로 파악하도록 했다. 한 바퀴로 번갈아 주행하는 범피 코스를 시작으로 사면로, 진흙 코스, 도강 코스, 경사로 오르막, 웨이브, 자갈 코스, 경사로 내리막 코스가 차례로 등장했다.
이 코스는 앞선 코스보다는 감동이 덜했다. 일단 사면로가 너무 밋밋했고, 도강 코스는 너무 얕아서 심심했다. 브롱코라면 경사가 더 심한 사면로와 더 깊은 웅덩이도 거뜬히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렇게 해서 1시간 30분의 짧은 시승 체험이 끝났다. 이 시승에서는 온로드의 승차감이나 가속력 등을 체크해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연비 역시 중요한 관심사인데, 인증 연비는 도심 7.5㎞/ℓ, 고속도로 9.4㎞/ℓ다. 랭글러의 연비는 오버랜드가 도심 8.3㎞/ℓ, 고속도로 10.0㎞/ℓ, 루비콘이 7.7㎞/ℓ, 고속도로 8.8㎞/ℓ이다. 도심에서는 랭글러 오버랜드가, 고속도로에서는 브롱코의 연비가 더 좋게 나온다.
가격은 브롱크가 6900만원이고, 지프 랭글러 4도어는 7300만~7650만원이다. 랭글러는 7000만원짜리 2도어 루비콘 모델도 갖추고 있다. 상대적으로 랭글러의 선택 폭이 훨씬 넓다는 얘기다. 브롱코 구매를 생각하는 고객이라면 랭글러의 다양한 선택지가 부러울 수 있다.
이에 대해 포드코리아 노선희 전무는 “일단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아우를 수 있는 아우터뱅크스를 들여왔는데, 고객들의 요구를 계속 청취하고 있다”라면서 “수요가 어느 정도 있다고 판단되면 다른 모델도 추가로 들여오겠다”라고 전했다. 브롱코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액세서리도 처음에는 조금씩 시작해 더 다양한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브롱코의 등장으로 오프로드 마니아들에게는 즐거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터프한 지프 랭글러와 럭셔리한 랜드로버 디펜더 가운데 하나만 고르면 됐는데, 이젠 브롱코가 가세했으니 말이다. 브롱크는 오프로드를 즐길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차다. 캠핑 열기와 함께 꾸준한 인기가 기대되는 모델이다. 브롱코의 활약을 기대한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