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과 둔지산에 만초천이 있다
한양도성 중심은 청계천이다. 청계천을 중심으로 북촌에 경복궁과 창덕궁 그리고 종묘와 사직단이 있다. 남촌에는 목멱산 아래 숭례문에서 광희문까지 환구단과 장충단이 있다. 하지만 해방 후 대한민국 서울의 중심은 한강이 되었다. 도성 안 한양에서 도성 밖 서울이 확장된 이유다. 서울의 상징은 누가 뭐래도 목멱산 N타워다. 숭례문 지나 용산 미군기지에서 한강까지 용산은 서울의 중심이요, 한반도의 미래를 품은 도시다.
용산은 배산임수를 갖춘 역사적인 땅이다. 한강과 마주한 용산은 역사적으로 외국군이 주둔한 군사적 요충지다. 120여 년 동안 금단의 땅이 용산 미군기지다. 임진왜란에 왜군, 병자호란에 청군, 임오군란에 다시 청군, 청일전쟁에 일본군, 러일전쟁에 다시 일본군이 있다가 해방 후 미군이 머물던 가슴 아픈 공간이다.
하지만 목멱산에서 둔지산(屯芝山) 지나 한강까지 용산은 한반도의 배꼽 역할을 하였다. 인왕산과 안산에서 흘러 내려온 7.7km 물줄기는 한반도의 젖줄로 만초천은 한강과 만나는 곳을 ‘용산강(龍山江)’이라 불렀다.
이제 용산 모르는 사람이 없다. 누구나 용산에 가 삼각지에서 한강까지 걷고 싶어 한다. 용산에는 용산역과 신용산역이 있어 더욱 용산의 실제 위치가 궁금해진다. 용산은 900여 년 전부터 있었던 한강의 번화가였다. 특히 용산강에 용의 머리가 들어가는 형상으로 안평대군의 ‘담담정과 읍청루’가 있었던 경치 좋은 명산이었다. 용산과 마포의 경계로 용머리 같은 언덕이 통행에 불편이 있자 일제강점기 도로 개설때 읍청루와 별영창을 없앴다.
용산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산일까?
600여 년 전 한성부는 한양도성과 성저십리로 이루어졌다. 삼각산에서 한강까지 군사적·행정적으로 한성부가 관리하였다. 특히 도로가 발달하지 않아 수운과 해운의 중심인 용산방에 사람이 계속 늘었다. 도성 밖 남부에는 중랑천 두모포에 두모방과 한강진에 한강방, 둔지산이 있는 둔지미에 둔지방을 두었다. 그리고 한성부 서부 만초천 하류에 용산방과 마포나루에 서강방을 두었다. 용산방은 서부, 둔지방은 남부에 둔 도성 밖 목멱산 아래 또 다른 지역이었다. 용산방과 둔지방은 만초천(蔓草川)이 경계다.
목멱산과 한강 사이에 둔지산이 있다. 둔지산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살았던 둔지미 마을도 있었다. 용산이 더욱 궁금해진다. 일반적으로 용산이라고 하면 용산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삼각지·용산역·이태원을 생각한다. 하지만 도봉구에 도봉산이 있고, 관악구에 관악산이 있듯, 용산구에도 용산이 있다. 용산은 마포구와 용산구의 경계다. 용산 미군기지 안에 용산은 없다. 용산은 용산성당이 있는 곳, 야트막한 산이다. 용산은 한양도성 안 백악산·낙타산·목멱산·인왕산과 같은 산이었다.
600여 년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용산,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미래도시 용산, 이제는 진정한 용산시대다. 용산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 공간적으로 넓은 용산공원, 시간적으로 깊은 용산을 잘 보존하여 미래세대에게 희망이 되어야 한다. 용산에 꿀벌이 오가고, 만초천에 천연기념물 수달이 찾는 생태도시 용산을 디자인해야 한다. 역동적 도시에서 소걸음 같은 생태도시로,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용산이어야 한다.
이제 용산에 가면 둔지산과 만초천에서 눈이 영롱한 수달을 꼭 만나고 싶다.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