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올여름, ENA 채널의 화제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대사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천재 변호사 우영우는 처음 보는 이에게 이렇게 자신을 소개한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똑같은 ‘EQE’는 벤츠의 전기차 브랜드 EQ에서 E클래스 역할을 한다는 의미일 터. 외관은 앞서 선보인 EQS와 비슷하다. 승객석을 최대한 늘린 ‘캡포워드’ 디자인에 하나의 활처럼 보이는 원-보우(one-bow) 라인이 EQS와 공유하는 디자인 콘셉트다.
그러나 헤드램프가 그릴과 매끄럽게 이어진 EQS와 달리, EQE는 헤드램프가 그릴 안쪽으로 살짝 파고들었다. 개인적으로는 EQE의 디자인이 더 마음에 드는데, 시승회에서 얘기를 나눠본 다른 기자들도 EQE의 외관에 더 좋은 점수를 줬다.
실내 역시 EQS의 디자인 키워드를 대부분 가져왔다. 다만 EQS는 450+ 이상에 하이퍼스크린이 장착되는데, EQE 350+는 S클래스의 것과 같은 대시보드가 기본이다. 물론 EQE에도 앞으로 들어올 상위 트림에는 하이퍼스크린이 장착된다.
개인적으로는 하이퍼스크린이나 EQE의 대시보드나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터치 방식은 운전 중에 조작하기 힘들뿐더러, 많은 기능이 센터콘솔과 가까운 아래쪽에 배치돼 시선을 아래로 빼앗기기 때문이다.
시승차인 EQE 350+의 최고출력은 215㎾. 마력으로 환산하면 288마력으로, 내연기관 모델로는 E350(299마력)의 출력과 비슷하다. 그러나 최대토크는 EQE 350+가 57.6㎏·m, E350이 40.8㎏·m로 EQE가 압도적으로 높고, 메르세데스-AMG E53 4매틱(53.0㎏·m)보다도 높다.
공차중량은 EQE가 2305㎏, E53이 2015㎏으로 EQE가 290㎏ 무겁다. 정지에서 시속 100㎞ 가속 시간은 6.4초로 E53의 4.5초보다는 느리다. 아무래도 무거운 공차중량 때문에 가속력에서 손해를 본 듯하다. E53이 ‘팍팍’ 치고 나가는 스타일이라면 EQE는 꾸준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주행 사운드는 ‘실버 웨이브’와 ‘비비드 플럭스’ 두 가지 중에 설정할 수 있다. 실버 웨이브는 비교적 내연기관과 비슷한 소리이고, 비비드 플럭스는 전기모터가 크게 작동하는 소리 같다. 현대·기아 전기차의 ‘퓨처리스틱’ 모드나 BMW 전기차의 가상 사운드와 비슷한 게 비비드 플럭스다. 사운드는 크게 흠잡을 게 없지만, 현대·기아의 전기차처럼 사운드 볼륨을 조절할 수 없다는 게 흠이다. 오로지 사운드를 켜고 끄는 것만 가능하다.
EQE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뛰어난 승차감과 정숙성이다. 웬만한 요철은 다 걸러내는 안락한 승차감은 S클래스 뺨 칠 정도. 두툼한 이중 접합 유리와 흡·차음재 덕분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음도 대부분 차단한다.
시승차에 장착된 타이어는 피렐리 P-제로 제품으로, 앞뒤 모두 255/40 R20 사이즈다. 동일한 플랫폼에서 개발된 EQS 350이 255/45 R20 사이즈를 쓰는 것과 비교하면 편평률에서만 차이를 보인다.
다만 과속방지턱을 빠르게 넘은 뒤에는 차체가 갑자기 가라앉는 느낌을 줘서 당황스러웠다. 무거운 배터리가 차체 바닥에 깔린 전기차는 승차감을 조율하기가 쉽지 않은데, 배터리를 탄탄하게 지탱하다 보면 차체가 튈 수 있고, 안락함을 중시하다 보면 물침대처럼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QE는 서스펜션이 충격을 흡수할 때는 좋은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때의 탄성이 약하다 보니 하체 부분이 쑥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이 부분을 보완하면 좀 더 완벽한 승차감이 되겠다.
EQE 350+의 1회 충전 주행거리는 471㎞. 도심 4.5㎞/㎾h, 고속도로 4.1㎞/㎾h의 전비를 인증받았는데, 차체 크기를 생각하면 괜찮은 수준이다. 2020년에 선보인 EQ 브랜드의 첫 작품 EQC가 주행거리 309㎞에 복합 전비 3.2㎞/㎾h(도심 3.3, 고속도로 3.1)와 비교하면 2년 남짓한 시간에 많이 발전한 것이다. 국내 인증 주행거리가 비교적 까다로운 편이므로, 실제로는 1회 충전으로 500㎞를 넘기는 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차의 정확한 배터리 용량은 미스터리다. 메르세데스-벤츠 홍보팀이 알려준 EQE의 배터리 용량은 88.89㎾h인데, 정작 벤츠 코리아 홈페이지에는 90.56㎾h로 나와 있다. 이에 대해 벤츠 홍보팀 관계자는 “국내에서 인증받을 때 약간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 같다. 보도자료에 나와 있는 내용이 맞다”라고 밝혔다. 뭐가 맞든 간에 공식 자료가 두 가지로 존재한다는 건 잘못된 일이다. 벤츠는 과거에도 보도자료와 홈페이지의 데이터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다.
EQE 350+의 가격은 1억160만원이다. 이는 E350 4매틱 AMG 라인(9410만원)과 E450 4매틱 익스클루시브(1억1430만원)의 중간 수준이다. 따라서 E클래스 상위 트림을 살 수 있는 고객에게는 큰 부담이 안 되는 가격대라고 볼 수 있다.
다만 EQE보다 훨씬 저렴한 8490만원으로 544마력을 즐길 수 있는 BMW i4 M50을 사고도 돈이 남는다는 건 고민거리다. 실내공간과 소재 등에서 EQE가 우위에 있으나, i4의 높은 출력과 강력한 가속력(0→100㎞/h 3.9초)은 결코 무시하기 힘들다.
EQE는 정숙성과 승차감, 럭셔리함에서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우영우 변호사처럼 돋보이는 존재다. 이 차를 두고 굳이 EQS를 고를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상한 전기차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