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는 100년이 넘는 헤리티지를 가진 브랜드였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수출에 집중했던 라인업 탓에 이러한 장점이 드러나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쉐보레가 달라졌다. 대형 SUV와 풀사이즈 SUV, 픽업트럭 등 북미 시장에서나 볼 법한 모델을 국내 시장에 정식 론칭하며 ‘정통 아메리칸 브랜드’임을 소비자들에게 꾸준히 각인시키고 있다.
실제 쉐보레가 최근 출시한 제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뚜렷한 아메리칸의 색채를 느낄 수 있다. 국내 최초로 정식 출시된 정통 픽업트럭인 콜로라도와 동급 최대 차체를 자랑하는 대형 SUV 트래버스, 대형 SUV보다 더 큰 풀사이즈 SUV 타호가 바로 그것이다. 모두 전장 5m를 훌쩍 뛰어넘는 차들로 도로 위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하는 동시에 정통 아메리칸 모델다운 폭발적인 동력성능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변화의 바람은 수입차 시장 판매량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수입 픽업트럭 시장을 개척한 쉐보레 콜로라도는 올 11월까지 한국수입자동차협회 기준 누적 판매량 2732대를 기록하며, 수입 픽업트럭 시장에서 71.1%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쉐보레 브랜드 또한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세 번 연속 수입차 판매 톱(TOP) 5 브랜드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정통 아메리칸 제품 라인업을 내세운 쉐보레의 전략이 고급 수입차로 브랜드의 가치를 한층 끌어올린 것이다.
GM은 내년에 라인업을 더욱 확장하고 나설 계획이다. 쉐보레 브랜드뿐 아니라, GMC 브랜드 론칭을 통해 더욱 다양한 정통 아메리칸 라인업을 국내 소개할 예정이다. 가장 먼저 출시가 전망되는 모델은 GMC 브랜드의 ‘시에라 드날리’다. GMC 시에라는 고급 SUV와 픽업트럭을 생산하는 프리미엄 RV 브랜드인 GMC의 풀사이즈 픽업트럭으로, GM은 그중에서도 최고급 트림인 드날리(Denali) 모델을 국내 출시할 계획이다.
시에라 드날리는 북미에 출시된 5세대 최신 모델로,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 쉐보레 타호와 동일한 플랫폼을 공유한다. 해당 모델에는 북미 인증기준 420마력의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6.2ℓ 대용량 자연흡기 V8 가솔린 엔진과 10단 자동변속기가 장착되며, 프리미엄 픽업트럭에 걸맞은 다양한 최첨단 편의 사양이 탑재될 예정이다.
GM은 또 쉐보레 브랜드를 통해 글로벌 모델인 차세대 CUV를 상반기에 출시할 계획이다. 트레일블레이저와 함께 GM의 핵심 모델이 될 차세대 CUV는 GM의 대형 및 초대형 SUV와 픽업트럭 중심의 차량 포트폴리오를 소형 크로스오버까지 확장하고, 탄소배출을 대폭 줄인 친환경, 고효율 파워트레인을 탑재하며 전동화 전환 과정의 틈을 메울 핵심 모델이다. GM은 차세대 CUV를 위해 도장공장 신설 등 창원공장에만 1조원 수준의 투자를 진행했으며, 이는 GM이 한국에 투자한 비용 중 역대 최고 규모다.
GM은 트레일블레이저와 차세대 CUV를 통해 내년부터 연간 50만 대 규모의 생산역량을 확보하며, 크로스오버 모델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글로벌 및 내수 시장을 겨냥해 성장 비즈니스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 밖에도 GM은 다양한 글로벌 전기차 모델을 국내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2025년까지 기존의 볼트 EV와 EUV를 포함, 차세대 전기차 모델 10종을 국내에 출시할 계획이다. 정통 아메리칸 제품 라인업을 통해 GM은 폭넓은 포트폴리오뿐 아니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새롭게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GM과 쉐보레 브랜드가 보여주고 있는 현재의 행보가 추후 국내 시장에서 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지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