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자동차 업계의 화두는 ‘C.A.S.E’다. Connectivity(연결성), Autonomous(자율주행), Sharing(공유), Electrify(전동화)가 바로 그것이다. 미래로 가는 길목에서 이 네 가지는 필수요소로 꼽힌다.
이 같은 흐름에 따라 전 세계 완성차 업체는 전동화 모델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아우디 역시 지난해 말 발표한 ‘진보(Vorsprung) 2030’ 전략에 따라 2026년 중반부터 순수 전기차만 선보이고, 2033년까지 내연기관 차량의 생산을 단계적으로 중단할 계획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 나파밸리에서 RS6와 RS7 퍼포먼스 팩을 만났다. 내연기관 시대의 종착역으로 달려가는 상황에서 만난 RS 시리즈는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더욱 강력해진 성능, 제로백 0.2초 단축
RS6 아반트와 RS7은 아우디의 중형차인 A6를 바탕으로 파생된 모델이다. A6는 1968년 탄생한 ‘아우디 100’이 그 시초로, 4세대 모델(C4)이 나온 1994년부터 새로운 작명법에 따라 A6로 불리게 됐다.
5세대 모델(C5)부터 기존 S6 위의 고성능 모델로 RS6가 탄생했고, 이 모델부터 RS 모델이 한국에 공식 수입됐다. 2012년 RS7이 등장한 이후에는 세단형이 없어지고 왜건형인 RS6 아반트만 나온다.
RS7의 바탕이 된 A7은 7세대 A6를 바탕으로 2010년에 데뷔했다. 2018년에 2세대 모델이 데뷔했고, 2세대 RS7은 2021년부터 한국에 시판되고 있다. 경쟁차로는 메르세데스 AMG GT 4도어 쿠페, BMW 8시리즈 그란쿠페가 꼽힌다.
이번 신차들은 기존 RS6와 RS7에 얹은 V8 4.0ℓ 엔진의 터보 부스트를 2.4바에서 2.6바로 올리면서 최고출력을 600마력에서 630마력으로 끌어올렸다. 최대토크 역시 81.6에서 86.7㎏·m로 높였다. 여기에 새로운 디자인의 22인치 휠과 타이어, 고성능 브레이크로 무장했다. 이는 639마력의 AMG GT 4도어, 625마력의 M8 그란쿠페 컴페티션에 대한 맞대응으로 분석된다.
RS7에 22인치 휠을 장착한 모델은 2021년에 인제스피디움에서 타본 적이 있다. 당시에 RS7은 고저 차이가 심한 인제스피디움에서 노면을 끈끈하게 움켜쥐고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나파밸리 공도에서의 시승은 서킷 조건과 차이가 크다. 일단 노면 상태가 예상보다 좋지 않았다. 대형 트레일러와 픽업트럭이 많이 다니는 상황이라 파손된 노면이 곳곳에 보였다.
먼저 타본 차는 RS7 퍼포먼스다. RS6 아반트와 마찬가지로 주행모드는 이피션트, 컴포트, 오토, 다이내믹, RS 모드가 준비된다. 이피션트는 말 그대로 좋은 연비에 초점을 맞춘 모드다. 컴포트는 안락함에, 다이내믹은 스포티한 주행성능을 내도록 한 모드이고 오토는 이 모든 게 자동으로 조절된다.
서스펜션은 앞뒤 모두 멀티 링크 타입. 전자 섀시 플랫폼(ECP)으로 완성된 RS7 퍼포먼스는 A7보다 차고를 10㎜ 낮췄는데, 시속 120㎞를 넘기면 10㎜가 더 낮아진다. 다이내믹 라이드 컨트롤(DRC)을 탑재한 ‘RS 스포트 서스펜션 플러스’는 여기서 4㎜를 추가로 더 낮춘다.
시승차는 이피션트/컴포트/오토 모드에서 승차감이 아주 뛰어나다. 이는 기존 RS6 아반트와 RS7에 장착된 서스펜션에서 밸브를 일체화하면서 댐퍼를 더 작고 가볍게 만들고, 피칭과 롤링에 대한 대응력도 높인 덕분이다.
다만 다이내믹 모드는 거친 나파밸리의 노면에 어울리지 않았다. 댐퍼의 실시간 대응력은 좋아졌지만, 285/30 ZR22 사이즈 타이어의 낮은 편평률까지 극복하긴 힘들다. 따라서 다이내믹 모드는 고속도로나 서킷에서 즐기기를 추천한다.
RS7 퍼포먼스의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기존 모델보다 0.2초 단축됐다. 물론 기존 엔진의 가속 성능이 워낙 뛰어난 덕분에 이 정도의 차이는 일상 주행에서 느끼기 힘들다. 제로백 3.4초는 스포츠 세단으로서 최상위급 성능이다. 최고시속은 280㎞이고, 옵션으로 제공되는 RS 다이내믹 패키지 플러스를 선택하는 경우, 최고시속이 305㎞로 상향 조정되며 RS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이 제공된다.
가속력만큼 매력적인 건 매력적인 배기음. 가변 플랩을 장착한 스포츠 머플러로 배기음의 강약을 알맞게 조절한다. 특히 회전수를 높게 올린 후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었을 때 ‘우르릉’하고 포효하는 배기음은 RS 모델만의 매력이다. 다만 RS 모델을 처음 접했던 20여 년 전에 비하면 배기음이 아주 순해졌다. 이는 아우디뿐 아니라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적으로 소음/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런 방향으로 개발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야수(野獸) 같았던 오래전 RS의 배기음이 그립다.
구동력 배분은 기본적으로 앞뒤 40:60으로 설정돼 있다. 노면에서 미끄러짐이 감지되거나 급가속을 시도하면 앞 최대 70%, 뒤 최대 85%까지 구동력을 몰아준다. 더 콤팩트해진 셀프 록킹 센터 디퍼렌셜은 급격한 코너링으로 핸들링이 한계에 도달하면 알아서 좌우 바퀴의 구동력을 조절하고 언더스티어를 줄인다.
시승 도중에 운전자를 바꿔 동승석에 앉아 실내를 천천히 살펴봤다. 시승차는 이번 시승회에 나온 차 중에 유일하게 ‘블루’ 테마로 꾸며진 모델이다. 함께 시승한 머니S 박찬규 기자가 여러 시승차 중 가장 특이하다고 고른 모델이다. 외관도 매트(무광) 블루로 꾸며서 아주 멋지다.
이 차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대시보드와 도어트림에 장식된 리얼 카본 내장재다. 오톨도톨한 질감이 느껴지는 실제 카본 소재에 블루 컬러를 입혔고, 스포츠 시트도 블루 컬러를 입혀 매우 독특하게 느껴진다. 스티어링 휠은 알칸타라 내장재로 꾸며 A7과 차별화했다. 셀렉터 레버 노브와 센터 콘솔 측면부는 45% 재활용 PET 섬유로 구성된 다이나미카 마이크로파이버 소재로 되어 있으며, 시트는 발코나 가죽에 메르카토 블루 컬러의 스티치로 멋을 부렸다. 새로운 ‘아우디 익스클루시브 커스터마이저(Audi Exclusive Customizer)’ 옵션을 통해 수천 가지의 조합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캘리퍼 색상은 그레이, 블루, 레드 중에 고를 수 있다. 새로운 5-Y 스포크 디자인 22인치 휠은 스포크가 가늘어서 바퀴 안쪽이 훤하게 보이는데, 모터스포츠에서 영감을 얻은 통풍형 디자인이다. 그래서 캘리퍼가 더 크게 느껴진다. 이 휠은 최첨단 단조/밀링 과정을 거쳐서 현재의 RS6/RS7 22인치 휠보다 5㎏ 가볍다.
새 휠은 함께 개발된 콘티넨탈 스포츠콘택트7 타이어와 짝을 이룬다. 기존 타이어보다 마른 노면 제동성능을 향상해 시속 100㎞에서 정지까지 2m를 줄였다. 아우디 스포트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21인치는 한국타이어를 비롯해 다른 브랜드도 있지만, 22인치 타이어는 콘티넨탈과 특별히 개발했다고 한다.
오후에 탄 RS6 아반트 퍼포먼스는 기본적으로 RS7과 파워트레인을 공유한다. 그런데 왜건 타입의 차체 때문에 주행 느낌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트렁크에 아무것도 싣지 않았을 때도 RS7보다 뒤쪽을 눌러주는 힘이 있어서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더 나은 움직임을 보인다. 특히 고속으로 올라가면 RS7의 경우 뒤가 살짝 뜨는 느낌이 있는데, RS6 아반트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대신, 서킷에서는 RS7의 날렵함이 훨씬 돋보인다.
연비는 이번에 체크해보지 않았으나, 유럽 인증연비(WLTP)는 7.87~8.20㎞/ℓ다. 현재 국내에 판매되는 모델은 7.0~7.4㎞/ℓ인데, WLTP 기준이 국내 기준보다 일반적으로 좋게 나오므로 국내 도입 때는 다소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피션트 모드를 선택하고 시속 55~160㎞ 사이에서 운전자가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엔진을 끄고 타력 주행을 하므로, 이를 활용하면 더 좋은 연비를 낼 수 있다.
이들 모델은 올해 말에 한국에도 소개된다. 아우디코리아 관계자는 “판매 가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구형보다 다소 오를 것 같다”라고 귀띔한다. 현재의 가격은 RS7이 1억7142만원, RS6 아반트가 1억6552만원으로, AMG GT 4도어 63S(2억4600만원), BMW M8 컴페티션 그란 쿠페(2억4040만)보다 훨씬 저렴하다.
쉴새 없이 쏟아지는 전기차의 홍수 속에서 RS6 아반트와 RS7 퍼포먼스는 ‘가뭄 속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이 차들은 경쟁 브랜드의 고성능 모델과 맞결투를 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특유의 매력이 도드라졌다. 2026년 이후 새로운 엔진을 얹은 RS 모델이 나오지 않으니 ‘마지막 황제’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내연기관의 시대가 저무는 건 개인적으로 아쉽지만, 아우디가 공헌하듯 전기차 시대에도 RS 모델의 매력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나파밸리=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