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이 차는 탱크 같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ESV를 몰고 도로에 나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6m에 가까운 전장과 1.9m를 훌쩍 넘는 차체 높이만으로도 이 차는 압도적인 느낌이다.
미국 럭셔리 브랜드를 대표하는 캐딜락은 XT4부터 XT5, XT6 그리고 에스컬레이드까지 다양한 SUV 모델을 한국에 판매하고 있다. 이 가운데 플래그십(기함) 역할을 하는 차가 에스컬레이드 ESV다.
트림은 프리미어 럭셔리와 스포츠로 나뉘는데, 시승차는 스포츠 트림이 배정됐다. 두 모델의 성능은 동일하고, 디자인은 약간 차이가 있다. 프리미엄 럭셔리는 크롬 장식이 많은 그릴인데, 스포츠 트림은 블랙 메시 타입 그릴이고, 휠 디자인도 약간 다르다.
기본형 에스컬레이드의 크기는 길이 5380㎜, 높이 1945㎜인데, 에스컬레이드 ESV는 길이 5765㎜, 높이 1935㎜로 차이가 있다. 휠베이스 역시 기본형은 3071㎜, ESV는 3407㎜로, 두 차는 336㎜가 차이 난다. 경쟁차로 꼽히는 링컨 내비게이터는 길이 5335㎜, 휠베이스 3110㎜로 에스컬레이드 기본형과 비슷하다.
최근 대형차 출시가 늘어나다 보니 5m 초반 길이에 3m 약간 넘는 수준의 휠베이스는 크게 부담스럽지 않지만, ESV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길고 높고 넓은 차체에서 오는 압도감은 그 어떤 차보다 강렬하다. 운전석에 앉으면 대형 트럭이나 시내버스 운전자와 눈이 마주칠 정도다.
길어진 휠베이스는 3열 좌석과 트렁크 공간을 더욱 여유롭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3열 좌석을 갖춘 SUV들은 모든 승객이 탑승할 경우 트렁크 공간이 아주 작은데, 이 차는 대형 캐리어도 들어갈 만큼 넉넉하다. 2열과 3열 좌석을 모두 접으면 4044ℓ의 광활한 공간이 펼쳐진다.
가죽과 목재로 세심하게 장식한 고급스러운 실내는 38인치 디스플레이에서 절정을 이룬다. OLED 방식의 선명한 화질에다 커브드 방식을 써서 운전자의 시야에도 잘 들어온다.
파워트레인은 V8 6.2ℓ 가솔린 자연 흡기 엔진으로 최고출력 426마력, 최대토크 63.6㎏·m를 뿜어낸다. 다운사이징이 대세인 시대를 역행하는 느낌도 없진 않지만, 이 엔진은 GM이 오랫동안 대형차에 써오면서 성능과 내구성을 입증해왔다.
엄청난 덩치에도 불구하고 출발은 매끄럽다. 10단 자동변속기가 쉴새 없이 엔진 회전수에 맞게 척척 변속해주고, 실린더는 주행 상황에 어울리게 2개에서 8개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움직인다.
대 배기량의 엔진을 얹은 차임에도 정숙성은 상당히 훌륭하다. 이중 접합 유리를 채택해서 풍절음을 적절하게 차단했고, 방음 처리를 통해 하체와 엔진에서 넘어오는 소음을 잘 막아낸 덕분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승차감이다. 기본형 에스컬레이드는 요철을 만났을 때 차체가 가끔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모습이 있었는데, ESV는 그게 확연히 줄어들었다. 1000분의 1초 단위로 댐핑력을 조절하는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이 일등 공신인데, 이건 기본형에도 들어있는 장비다. 따라서 길어진 휠베이스가 차체의 움직임을 좀 더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타이어는 275/50 R22 사이즈인데, 큰 차체를 믿음직하게 끌고 갈 수 이는 적절한 크기로 보인다. 시승차인 스포츠 트림에는 12 스포크, 프리미엄 럭셔리 트림에는 10 스포크 디자인의 휠이 장착된다.
이 차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은 오디오다. AKG 스튜디오 레퍼런스 사운드 시스템은 1열부터 3열 사이에 36개의 스피커가 장착돼 승객을 감싸듯이 소리를 전달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강한 비트의 댄스 음악을 틀어봤는데, 오디오 볼륨을 거의 끝까지 올려도 사운드가 찢어지는 느낌이 없이 생생하게 전달해줬다. 스피커는 1열 시트 헤드레스트에도 달려서 생동감이 더욱 뛰어나다.
에스컬레이드 ESV의 연비는 도심 5.7㎞/ℓ, 고속도로 7.9㎞/ℓ, 복합 6.5㎞/ℓ다. 에스컬레이드 기본형의 연비가 각각 6.1, 8.4, 7.0인 것에 비하면 조금 낮지만, 엄청난 덩치에 비하면 괜찮은 수준이다. 시내와 간선도로를 대략 3:7로 섞어서 달린 이번 시승에서는 7.1㎞/ℓ의 연비를 기록했다.
가격은 이번에 시승한 ESV 스포츠 플래티넘이 1억6700만원이고, 기본형은 1억5700만원이다. 외관 디자인이 조금 다른 프리미엄 럭셔리도 가격은 같다. 경쟁차인 메르세데스-벤츠 GLS가 1억8150만원, BMW X7 M60i가 1억8100만원, 링컨 내비게이터는 1억5200만원인 것에 비하면 에스컬레이드 ESV의 가격 경쟁력은 높은 편이다.
에스컬레이드 ESV는 장거리 여행이 많은 이들에게는 최적의 파트너다. 든든한 차체와 넓은 실내공간, 뛰어난 승차감과 정숙성이 특히 매력적인 차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