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가 1997년에 세계 최초로 양산한 프리우스는 한동안 '친환경차의 중간 정거장' 정도로 인식됐다. 결국 친환경차는 전기차를 거쳐 수소차가 대세를 이룰 것이라는 인식이 업계에 깔려 있던 것이다.
그렇게 2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의 상황은 어떨까? 한때 전기차가 치고 나가는 듯했으나 최근에는 성장세가 주춤거리고 있고, 잠시 거쳐 가는 과정으로 생각했던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인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그리하여 현재는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차 중 어떤 차가 미래의 모빌리티가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 사이 프리우스는 2003년 2세대, 2009년 3세대, 2015년 4세대를 거쳐 최근 5세대로 진화했다. 신형 프리우스는 세단형이었던 직전 세대와 달리, 해치백 스타일로 바꿨다. 과거 나왔던 프리우스 중에는 3세대 모델과 스타일이 유사해 보인다.
차체 크기는 길이 4600㎜, 너비 1780㎜, 높이 1430㎜이고 휠베이스는 2750㎜다. 4세대 모델과 비교하면 길이 25㎜, 너비 20㎜가 각각 커지고 높이는 40㎜ 낮아졌다. 즉, 더 길고 넓고 낮아진 포지션으로 주행의 즐거움 구현에 초점을 맞췄다.
토요타는 프리우스의 포지션을 낮추기 위해 배터리 위치를 바꿨다. 4세대는 뒷좌석 아래에 연료탱크가 있었고 배터리는 트렁크 바닥에 있었는데, 신형은 배터리를 뒷좌석 아래로 옮기고 그 뒤에 연료탱크를 두었다. 이는 기존에 쓰던 니켈-메탈 배터리 대신 리튬 이온 배터리를 써 크기를 줄인 덕분이다. 이런 배치로 트렁크 용량은 4세대 모델보다 훨씬 넉넉해졌다.
콤팩트한 배터리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전고를 40㎜나 낮췄기 때문에 헤드룸 공간은 넉넉지 않다. 특히 뒷좌석에 키 180㎝를 넘기는 승객이 앉으면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다. 성인 네 명이 넉넉하게 타는 패밀리카보다는 1~2명이 여유롭게 타는 퍼스널카로 변화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토요타의 고민 중 하나는 고객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는 걸 해결하는 것이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도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을 갖추자는 게 이번 신형의 개발 목표이기도 했다. 매끈한 스타일링과 낮은 드라이빙 포지션은 젊은층이 좋아할 만한 요소. 그렇다면 화끈한 주행성능만 갖추면 된다.
이번 시승회에서는 PHEV와 HEV를 모두 타볼 수 있도록 배려했는데, 나는 PHEV를 먼저 시승했다.
운전석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클러스터와 모니터의 배치다. 프리우스는 1세대 모델부터 4세대 모델까지 꾸준하게 대시보드 상단 중앙에 클러스터를 배치해왔다. 하이브리드 전용 모델로 나온 차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이번엔 '톱 마운트 계기반'을 스티어링 휠 앞쪽에 배치해 변화를 줬다. 낮아진 전고와 함께 운전자에게 운전의 즐거움을 더 많이 주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이 클러스터는 일반적인 위치보다 약간 위쪽에 자리 잡아서 헤드업 디스플레이 같은 느낌을 주고, 운전자의 시선 이동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낮은 시트 배치와 멀리 자리 잡은 클러스터는 마치 게임기 앞에 앉은 느낌을 준다. 방음 처리를 강화하고 배기음을 튜닝했지만, 가속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면 역시 소음은 좀 있는 편이다. 그래도 구형보다 고음을 줄이고 저음을 강조한 배기음은 급가속 때 은은하게 귓가를 맴돌면서 기분 좋은 가속감에 일조한다.
최고출력은 PHEV가 223마력, HEV가 196마력. PHEV 모델은 4세대의 122마력보다 무려 101마력이 늘어났다.
수치에서도 드러나지만, 실제 주행성능도 PHEV가 훨씬 다이내믹하고 재밌다. 특히 PHEV는 출력에 좀 더 여유가 있다 보니까 일반적인 가속 상황에서 HEV보다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물론 HEV 모델도 구형보다 훨씬 좋은 가속력을 보여준다.
주행을 하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드라이브 모드를 조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어 레버 옆에 자리한 드라이브 모드 스위치는 앞뒤로 조절해 조작하는데, 크기가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운전하다가 고개를 숙여서 위치를 확인하고 조작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스위치 위치를 조금만 더 키우면 좋겠다.
타이어는 4세대 모델은 연비를 높이기 위해 195/65 R15 사이즈를 달았는데, 신형은 195/50 R19 사이즈로 바꿨다. 시승회 당일에는 비가 내리는 겨울철이어서 슬라럼 테스트를 못 했지만, 구형보다 안정감은 확실히 높아졌다. 특히 편평률을 줄여 핸들링 성능을 높이면서도 서스펜션 튜닝을 통해 좋은 승차감을 구현한 게 인상적이다.
인증 연비는 PHEV가 도심 20.2㎞/ℓ, 고속도로 18.5㎞/ℓ, 복합 19.4㎞/ℓ다. 연비 위주의 4세대 모델 연비(23.0, 19.6, 21.4㎞/ℓ)보다는 살짝 떨어졌다.
두 명이 한 조를 이뤄 시승한 이 날, 앞선 운전자에게 32.4㎞/ℓ의 연비를 넘겨받은 기자는 스포트 모드 위주의 과격한 테스트를 했음에도 PHEV 모델로 25.8㎞/ℓ의 좋은 연비를 기록했다. 이 정도 연비라면 어떤 식으로 운전해도 절대 한 자릿수 연비로 떨어질 일은 없을 것 같다. 참고로 6년 전 4세대 PHEV 모델로 겨룬 연비 경연에서 기자는 45.5㎞/ℓ로 이틀간 참가한 기자 중 가장 좋은 기록으로 우승했다.
신형 프리우스는 좋아진 연비뿐 아니라 늘어난 전기 주행거리도 관심거리다. 3세대 PHEV는 26㎞, 4세대 PHEV는 40㎞를 전기 모드로 달릴 수 있었는데, 신형은 64㎞로 늘어난 것. 일반적인 시내 출퇴근 거리를 충분히 커버하는 수치다. 특히 집과 직장에 완속 충전기가 있다면 전기차나 다름없이 쓸 수 있다.
가격은 HEV LE가 3990만원, XLE가 4370만원, PHEV SE가 4630만원, XSE가 4990만원이다. 4세대 PHEV인 프리우스 프라임은 2017년에 4830만원이었는데, 큰 폭의 인상은 없는 셈이다. 주행성능과 전기 모드의 활용도를 고려하면 PHEV가 더 매력적이고, 구매 가격을 우선시한다면 HEV가 더 낫겠다. 전기차가 주춤하는 지금, 프리우스가 어떤 판매 결과를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