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밀리아 경기의 스타트 라인>

'밀레밀리아'는 이탈리아어로 '1000마일(약 1600㎞)'을 뜻한다. 1927년 이탈리아의 젊은 자동차 애호가 네 명이 브레시아에서 열리던 이탈리아 그랑프리 경주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자,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 즐길 수 있는 모터스포츠 행사를 만든 게 행사의 시초다.

이 꿈의 레이스 가운데 '밀레밀리아 익스피리언스 UAE(아랍에미리트)'는 미국, 일본에 이은 밀레밀리아의 세 번째 프랜차이즈 경기다. UAE에서는 2022년에 이어 두 번째 개최다. 지난 12월 두바이에서 열린 이 경기에 황욱익 자동차 칼럼니스트가 참가해 한국인 최초로 완주했다.

<오른쪽은 드라이버 미구엘 요렌트(스페인), 왼쪽은 내비게이터 황욱익이다>

“아랍 최대의 클래식카 전문업체 '토미니 클래식'의 '미구엘 요렌트'라는 분은 페이스북 친구였어요. 그런데 이분이 일본 등의 지인에게 저를 파악해봤더라고요. 작년에 시장 조사하러 한국에 왔는데, 제가 삼성교통박물관과 현대차 모터스튜디오 등을 소개해줬죠. 그때 그가 한국에서 클래식카 쇼룸을 열고 싶다고 얘기했고, 작년 10월에는 밀레밀리아에 오라는 제안을 했어요.”

처음에는 지인들이 사기꾼에 당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항공료만 부담하면 모든 비용을 그쪽에서 해결해주는 이런 기회가 온 것 자체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다녀와라”라고 했단다.

<알파로메오를 타는 사람들은 동질감이 강하다. 맨 오른쪽은 황욱익 씨 팀이 탄 엔트리 96번 알파로메오 8C 컴페티치오네>

“랠리 경기에 참여한 적이 있어야 하고, 차를 정비할 줄 알아야 하는 등의 참가 조건이 있었어요. 카트 경력만 있다고 했는데, 참가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시스템이 아주 잘 되어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라이선스 등록하는 과정도 이메일로 상세히 알려줘서 그대로 따르면 됩니다. 현대자동차에서 공식적으로 교육 받은 드라이버라고 소개하니 놀라워하는 눈치였어요.”

행사에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랍권 나라와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미국, 영국 등에서 온 참가자들이 성황을 이뤘다.

<4일간 총 1600㎞가 넘는 거리를 달려야 하는 일정이다>

이 대회에서 황욱익 칼럼니스트가 맡은 역할은 말 그대로 '내비게이터'다. 로드북에는 한 섹션 당(하루에 2섹션, 총 4일간 8섹션) 적게는 74개, 많게는 100개에 가까운 지점이 표시되어 있는데 이 모든 것을 드라이버에게 전달해야 한다. 내비게이션이 하는 역할을 사람이 직접 로드북을 보고 하는 식이다.

“내비게이터라고 지도만 보면 되는 줄 알았는데 굉장히 어려웠어요. 중간에 시간 계산을 잘해야 하죠. 경기 한 달 전에 라이선스를 받는데, '리미티드 스피드 드라이버'라고 해서 이 기간에만 쓸 수 있는 라이선스예요. 출발 전날 FIA 주최 교육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빨라도 페널티, 느려도 페널티입니다. 목표 시간을 최대한 정확하게 맞추는 게 중요해요.”

<첫 날 일정인 국경 넘어 오만의 해안가>

황욱익 씨 팀은 알파로메오 8C 컴페티치오네의 기본 트립 미터만 믿고 경기에 임했는데, 다른 팀은 랠리 타임키퍼 등의 계측 장비를 굉장히 많이 장착했다. 계측 장비 제한이 없다 보니 이런 게 가능하다.

이 대회는 국경을 넘어야 하므로 리스나 렌트 차량은 안 되고, 자기 소유의 차로만 참가할 수 있다. 밀레밀리아 익스피리언스 UAE의 스폰서 중의 하나인 토미니 클래식에서는 차 넉 대가 동원됐는데, 알파로메오 8C 컴페티치오네는 미구엘 요렌트가 직접 몰고 황욱익 칼럼니스트와 참가했다. 나머지 석 대는 '비스트'라 불리는 오렌지색 포르쉐 911 3.2(1979년식 미디어카), 머스타드 911 3.2(1979년식 미디어카), 메르세데스-벤츠 280 SL 파고다(1968년식 슈퍼모델 조디 키드 출전차)였다.

<아부다비의 골인 점. 한국인 최초로 완주에 성공했다>

이번 대회에는 120대가 참가해서 57대가 완주에 성공했다. 황욱익 씨 팀은 종합 44위, 클래스 12위로 경기를 마쳤다. 원래 목표는 전체 50% 이내, 클래스 50% 이내 안착이었으나 훨씬 좋은 성과를 얻었다. 내비게이터로 처음 참가한 그에게는 값진 결과였다. 밀레밀리아의 모든 기록은 이탈리아 기록연맹에 등재된다.

이 기사를 읽은 이가 이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면 뭘 준비해야 할까. 그는 '자동차에 관련된 얘깃거리를 많이 준비하라'라고 조언한다. 저녁에 참가자들이 만나는 자리가 많은데, 여기서 할 말이 많아야 즐겁게 어울릴 수 있어서다.

<람보르기니의 상징과도 같은 발렌티노 발보니(왼쪽)>

첫 공식 만찬 행사에서는 람보르기니의 전설적인 테스트 드라이버이자 클래식 람보르기니 앰배서더로 활동 중인 발렌티노 발보니를 만났다. 2009년 250대 한정 생산된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발보니 에디션의 바로 그 발보니였다. “발렌티노 발보니와는 귀국 전날까지 거의 매일 저녁 식사를 함께했어요. 람보르기니 개발 비화 같은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죠.”

황욱익 칼럼니스트는 이번에 큰 도움을 준 미구엘 요렌트와 4월에 일본에서 열리는 오토모빌 카운실 2024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원래 교토에서 열리는 콩쿠르 델레강스(Concours d'Elegance, 이탈리아어로는 콩코르소 델레간차)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 대회가 취소되어서 도쿄에서 보기로 한 것이다. 콩쿠르 델레강스는 예술적인 클래식카들의 경연대회로, 이탈리아가 원조이고 미국 페블비치를 비롯해 영국, 아일랜드, 일본에서도 열린다.

황욱익 칼럼니스트는 이번 대회 참가로 얻은 소감을 이렇게 정리했다.

“이번 대회 주최자는 아시아에서 이런 대회를 늘려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다음 대회는 싱가포르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다음 목적지가 한국인데, 아직은 조사 중이죠. 다른 나라 참가자들은 “현대차와 기아가 있지 않으냐”라고 하더군요. 자동차 생산 회사가 없는 국가에서 온 친구들은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로 올라선 현대차와 기아가 있다는 걸 굉장히 부러워하고 한국의 자동차 문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런 대회가 열리기 위한 조건은 아직 미흡한데 말이죠. 그래서 앞으로 이런 대회 아이템을 한국에 잘 접목하는 걸 구상해보겠습니다.”

◆황욱익 칼럼니스트는….

황욱익 칼럼니스트는 자동차 산업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전문가다. 딴지일보 자동차 담당 기자로 시작해 월간 모터매거진을 거친 후 완성차 업체 연구원, SBS 스포츠 레이스 해설가, 채널A 카톡쇼 패널, 공무원 강사 등을 역임했다. 2018년에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카트 24시간 내구레이스'에 도전해 국내 최초로 완주하기도 했다.

다양하게 진행되는 자동차 관련 토크쇼를 앞서 기획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자동차 토크쇼 '더 개러지'를 2015년부터 진행했으며, 이후 현대차와 르노삼성자동차 등에서 비슷한 유형의 토크쇼가 진행되기도 했다.

여행경력도 화려하다. 일본에서는 토요타, 혼다, 닛산, 마쓰다의 박물관을 비롯해 각종 박물관을 두루 다녔고,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미국의 주요 자동차 박물관을 두루 섭렵했다. 저서로는 '클래식카 인 칸사이'가 있으며, 자동차 전문 테마 여행 '자칼 루트'를 진행 중이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