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은 작/연출, 극단 희래단 주최, 연극 <왕초>가 2024년 3월 13일부터 17일까지 대학로 씨어터쿰에서 공연됐다. 왕초(윤상현 분)가 지어준 이름인, 고기(민준호 분), 명태(문태수 분), 홍어(서삼석 분), 두부(김자영 분), 김치(이가람 분)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닉네임처럼 들린다.
<왕초>에서 문태수 배우는 배역의 디테일을 촘촘히 채우는 연기력을 발휘한다. 배역에 대한 해석과 설정, 그리고 그에 따라 펼치는 연기는 문태수 배우의 성장과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 관객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작품
연극 <왕초>는 1955년 한국 전쟁 후, 황폐해진 서울의 사대문 다리 밑 거지 움막을 배경으로 한다. 관객은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권력의 축소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탐욕과 배신이 난무하고 자제력과 판단력이 무너진 등장인물의 행동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 앞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절박함으로도 볼 수도 있다.
비슷한 관점에서 더 몰입하면 더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타파되어야 할 계급 사회의 모습이 사회의 밑바닥까지 팽배해 있는 것이다. 같은 하층민의 계급 내에서도 다시 서열과 위계가 존재하는데, 그게 그냥 존재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게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 안타깝다.
물론, <왕초>를 보면서 저런 시절이 과연 있었을까 되새기며 본 관객도 있을 것이다. 그냥 재미를 선사하는 이야기로만 받아드릴 수도 있다. 이 연극이 관객에게 남기는 여운의 질과 강도와 지속 시간은, 어쩌면 작품 자체보다는 작품을 대하는 관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 배역의 디테일을 촘촘히 채우는 배우 문태수
<왕초>에서 문태수는 권력 서열 3위에서 2위로, 다시 1위인 왕초의 자리까지 오르는 명태 역을 소화하면서, 배역의 디테일을 촘촘히 채운다는 점이 주목됐다.
문태수의 명태는 과하게 거칠거나 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렇다고 존재감이 부족하거나 단조롭지도 않았다. 문태수는 <왕초>에서 배역의 범위를 설정한 대로 충실히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절제하면서도 그 안에서 작은 디테일을 촘촘히 챙기는 연기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래서 문태수의 명태는 극 속에 녹아있는 존재임과 동시에,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언제든 급부상해도 개연성 있는 캐릭터로 느껴진다. 배역에 대한 해석과 설정, 그리고 그에 따른 연기를 펼친 문태수는, 막공 후에도 관객들에게 큰 환호를 받았다.
<명태>에서 문태수가 뒤통수를 맞는 연기를 어떻게 소화했는지도 주목할 만하다. 권력 서열을 바꾸는 반역을 꾀하는 진지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도, 무대에서 문태수는 서삼석 배우의 손에 몇 번 뒤통수를 맞는다.
이때 자칫 잘못하면 진지한 장면이 너무 코미디처럼 희화화될 수도 있고, 캐릭터와 사건이 주는 긴장감을 저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태수는 아슬아슬한 선을 지키며, 반역할 때의 결단과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연기력을 발휘했다. 이건 문태수 배우와 서삼석 배우의 케미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