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은 미국 자동차업체 가운데 전동화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이다. GM의 새로운 지속가능경영 목표에는 2010년도 대비 2035년까지 운영상의 에너지 이용 집약도 35% 감축 △2030년까지 '제로 폐기물(Zero Waste)'을 목표로 포장재에 100% 생분해성 혹은 지속가능한 원재료를 주로 사용 △2025년까지 글로벌 사업장 내 매립지 및 소각장에서 90% 이상의 폐기물 전환 달성 △2025년까지 모든 1차 협력업체가 'GM 협력업체 지속가능경영 프로그램'에 등록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GM은 2035년까지 새로 출시되는 경량 자동차(light-duty vehicle)들의 배기가스 배출을 없애겠다는 포부와 함께, 2040년까지의 탄소 중립 실현 및 과학에 기반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목표를 위해 노력할 것을 천명한 바 있다.
이 같은 계획에 따라 GM의 라인업은 상당수 EV 또는 하이브리드 모델로 재편됐다. 현재 GM이 미국에서 팔고 있는 전동화 차종을 보면, 쉐보레의 경우 이쿼녹스 EV, 블레이저 EV, 실버라도 EV가 있고, 콜벳 최초의 하이브리드카 E-레이가 추가됐다. 또한 GMC는 허머 EV를 시판 중이고 캐딜락은 에스컬레이드 IQ, 리릭, 옵틱이 있으며 미래형 세단인 셀레스틱이 추가될 예정이다.
이들 중 캐딜락 리릭과 GMC 허머 EV, 쉐보레 이쿼녹스 EV, 블레이저 EV가 GM의 3세대 전기차 플랫폼인 '얼티엄 플랫폼'을 사용한 차종이다. 얼티엄 배터리는 대형 파우치 형태의 셀을 배터리 팩 내부에 가로 혹은 세로로 배치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돼 차 디자인에 따라 배터리 공간과 레이아웃을 최적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가운데 캐딜락 리릭(LYRIQ)이 한국에 가장 먼저 상륙했다. 리릭의 한국 도입은 애초 2023년 하반기로 알려졌는데, 뉴스 레터 구독은 2023년 5월에 시작됐고 실제로 선보인 건 올해 5월이다. 도입 공표부터 실제 도입까지 1년 이상이 걸린 것이다.
리릭은 준대형급 SUV로, 차체 크기는 길이 4995㎜, 너비 1980㎜, 높이 1640㎜, 휠베이스 3095㎜다. 캐딜락이 경쟁상대로 꼽은 BMW IX와 비교하면, 길이는 리릭이 40㎜ 길고 너비는 15㎜ 넓고, 높이는 55㎜ 낮다. 또한 휠베이스는 리릭이 95㎜ 길다. 또 다른 경쟁자인 메르세데스-벤츠 EQE SUV보다는 리릭이 115㎜ 길고 50㎜ 넓으며 30㎜ 낮다. 휠베이스는 리릭이 65㎜ 길다. 또한 아우디 Q8 e-트론과 비교하면 리릭이 80㎜ 길고 45㎜ 넓고, 높이는 같다. 즉, 전체적으로 리릭이 경쟁차종보다 길고 넓고 낮은 자세를 보여준다.
외모는 경쟁차 중 가장 화려하다. 특히 라디에이터 그릴 부위에서 좌우 헤드램프로 퍼지는 다이내믹 웰컴 라이트는 화려한 캐딜락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진다. 다만 이렇게 다채로운 그래픽의 내구성은 살짝 걱정되기도 한다.
실내에서는 33인치 파노라믹 커브드 디스플레이가 압권이다. 운전석 클러스터와 센터 디스플레이가 시원스럽게 이어지면서 경쟁차와 차별화된 모습을 완성한다. 또한 공조 장치는 물리 버튼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해서 터치 방식을 싫어하는 이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겠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이 넓은 디스플레이를 온전히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안드로이드 오토 기능을 실행하면 지도와 음악 화면이 나오는데, 기울어진 오른쪽 화면의 크기를 다 활용하지 못해 여백이 크게 느껴진다.
리릭은 최고출력 500마력, 최대토크 62.2㎏·m의 듀얼 모터를 장착해 상시 네바퀴굴림(AWD) 파워트레인을 구동한다. 리릭과 가격이 비슷한 EQE 350 SUV는 292마력에 불과하지만, 최대토크는 78.1㎏·m로 리릭보다 앞선다. 값이 더 비싼 EQE 500 SUV는 408마력이고, BMW iX M50은 최고출력 523마력, 최대토크 78.0㎏·m다. 아우디 Q8 e-트론은 340마력, 408마력, 503마력 등 세 가지 파워트레인을 갖추고 있다.
공차중량은 리릭이 2670㎏, EQE SUV가 2510~2540㎏, iX가 2590㎏이다. 이를 바탕으로 마력당 중량비를 계산해보면, 리릭은 5.34, EQE 350 SUV는 8.70, EQE 500 SUV는 6.16, iX는 4.95다. 이 숫자는 1마력이 담당하는 차체 중량을 의미하므로 숫자가 작을수록 기동성이 좋다는 의미다.
이 데이터는 실제 주행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BMW iX만큼의 날렵한 움직임은 아니지만, 리릭은 꾸준하게 밀어붙이는 주행 감각이 좋다. 큰 덩치에 무거운 차체를 지녔음에도 토크 감각이 뛰어난 전기차의 장점이 뚜렷하다.
리릭의 또 다른 장점은 뛰어난 주행안전성이다. 차고가 높은 SUV의 특성상 롤링이나 피칭이 커질 수 있는데, 리릭은 서스펜션 셋업이 탄탄해 고속에서도 불안함이 없다. 다만 스포츠 모드에서도 비교적 부드러워 '캐딜락다운'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다. 스포츠 모드는 좀 더 탄탄하게 조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타이어는 미쉐린 프라이머시 올시즌이고, 크기는 265/50 R20 사이즈로, 차의 성격과 잘 어울린다.
이 차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패들 스위치로 브레이크를 조절하는 '리젠 온 디멘드' 기능이다. 이 스위치는 회생 제동 단계를 조절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완전히 정차시킬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이 기능은 구불거리는 코너가 연속적으로 나오는 국도에서 특히 유용하다. 힘들게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가 땠다 할 필요 없이 손가락만 까닥거리면 되므로 훨씬 간편하고, 오조작 가능성도 줄어든다.
주행모드는 마이 모드/투어/스포츠/스노 등 네 가지다. 마이 모드에서는 스티어링, 브레이크 피드백, 가속 피드백, 모터 사운드 등을 본인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점은, 정차 중에만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터사운드는 주행 중에 다른 소리를 듣기 위한 것인데, 이를 선택하기 위해 차를 세운다는 건 비효율적이다. 한국GM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안전을 위해서 그렇게 셋업한 것 같다”라는 답이 돌아왔는데, 그도 확실한 이유는 모르는 것 같았다.
리릭은 190㎾ 급속충전 기능을 갖춰 10분 충전으로 120㎞ 주행이 가능하고, 1회 충전 주행거리는 도심 491㎞, 고속도로 433㎞, 복합 465㎞다. EQE SUV는 복합 401~404㎞, iX는 423~464㎞, Q8 e-트론은 298~368㎞로, 리릭의 주행거리가 가장 길다.
리릭은 스포츠(Sport) 단일 트림으로 출시되며 판매 가격은 1억696만원이다. 경쟁차의 경우 EQE 350 SUV는 1억990만원, EQE 500 SUV는 1억2850만원, iX M50 1억4890만원, M60은 1억6390만원이다. 리릭은 가격 대비 출력이 높아서 충분한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국내에서 BMW나 메르세데스-벤츠에 비해 캐딜락의 브랜드파워가 떨어지는 건 약점으로 지적된다. 캐딜락이 이를 극복하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