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 연이은 전기차 화재 사건이 일어나면서 '전기차 공포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전기차 화재는 충전이나 주행, 정차 등의 상황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데다, 한 번 불이 시작되면 완전히 소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특징이 있다.
전기차 화재는 최근 이슈화되고 있지만, 그동안 전기차가 늘어나면서 심심치 않게 큰 문제점을 보여줬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전기차 보급에만 열을 올린 정부와, 전기차 화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자동차 업계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전 세계 자동차 업계는 한동안 탄소 감축의 일환으로 디젤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집중했었다. 그러다가 2015년 이른바 '디젤 게이트'가 터지면서 디젤차의 인기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그즈음, 미국 테슬라는 모델 모델3를 내놓고 전기차 대중화에 속도를 냈다. 중국 자동차업체들 또한 내연기관으로는 도저히 승부를 뒤집을 수 없다고 보고 전기차에 올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디젤차에 일가견이 있던 유럽 자동차업체들 역시 전기차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국 자동차 시장 역시 전기차가 늘어나기 시작한 게 채 10년이 안 된다. 2014년 이전만 해도 국내에서 판매되는 전기차는 르노삼성 SM3 Z.E.와 기아 레이 EV, 쉐보레 스파크 EV가 전부였고, 2014년에 닛산 리프와 BMW i3, 기아 쏘울 EV가 첫선을 보였다. 근래에는 새로 출시되는 차의 상당수가 전기차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전기차는 보급 초창기였던 셈이다.
뭐든지 급하면 탈이 나는 법. 이 짧은 기간에 전기차로 친환경을 이루겠다는 세계 각국 정부와 자동차업체의 목표는 많은 문제점을 낳고 말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기차 화재다.
현재 전 세계에서 이산화탄소 발생의 약 15%는 자동차 등 수송 부문에서 발생하는 걸로 추산된다. 그런데 202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전기 생산의 약 61%가 화력발전으로 이뤄졌다. 즉, 전기차를 굴리게 하는 원천인 전력 생산의 절반 이상을 석유나 석탄, 가스를 태워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얘기인가.
1997년 교토의정서 체결 이후 국제 사회는 총 여섯 종류의 온실가스 배출을 관리했다. 이산화탄소와 메탄(CH4), 아산화질소(N₂O), 과불화화합물(PFC), 수소불화탄소(HFCs), 육불화황(SF6) 등이 그것이다. 고전압 전력장치 절연체에 주로 쓰이는 육불화황의 경우 온난화 효과가 이산화탄소보다 2만3900배 강한 온실가스다.
그러나 이산화탄소는 배출량으로 볼 때 온실가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92%가 이산화탄소일 정도다. 다른 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 탄소 중립을 이루는 방법으로 화석 연료 사용을 줄여서 이산화탄소를 줄이려는 노력이 집중됐다.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가 낸 자료에 따르면, 메탄이나 아산화질소 등의 배출량을 줄이면 온실가스 증가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머무는 기간은 200년인데, 아산화질소는 116년, 메탄은 9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메탄의 단기적 온실효과가 이산화탄소의 80배에 달한다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분석도 있다. 이를 종합하면 전기차 보급으로 탄소 중립의 한 축을 이루고자 했던 세계 각국 정부의 노력이 얼마나 헛된 꿈인지 알 수 있다.
형평성도 문제다. 전기차는 여전히 비싼 배터리 가격 때문에 내연기관보다 가격이 비싸다. 세계 각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차 구매 때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그러나 비싼 전기차를 살만한 능력이 되는 이들에게 세금을 써서 보조금을 줘야 하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이고, 세계적으로도 보조금은 축소되는 경향이다. 다만 중국은 예외인데, 유럽에서 중국 전기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신(新)에너지(전기, 수소, 하이브리드) 차를 구매하면 주는 보조금을 늘린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는 위축된 중국 전기차업체를 지원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우리 정부로서는 자동차 업계가 걱정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면 전기차를 생산해 수출하는 기업에 연구비나 세제 혜택 등으로 간접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또한 개인용 전기차보다는 택시나 화물차, 버스 등 공공 운송 수단 지원에 더 지원을 몰아주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이미 시판된 전기차는 충전기 관리를 좀 더 철저히 하는 동시에, 다중 건물에 설치된 주차장에는 전기차 주차 구역을 별도로 정해 화재에 대비해야 한다. 만약 이 구역에서 전기차에 불이 난다면 방화벽을 작동시켜서 다른 차에 번지는 것을 막아내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이 개발한 자동 질식 소화포 작동 장치도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는 지난 10여 년 동안 세월호 사고, 이태원 사고 같은 대형 재난을 겪어왔다. 그런데도 이런 사회적 참사에서 느끼는 교훈과 대응은 아직 미숙하다. 만약 긴 터널에서 차량이 정체되었을 때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정리하자면, 현재의 전기차 보급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 김치냉장고가 불 나도 전량 리콜하고 판매 금지 조치를 하는 게 상식인데, 불나면 진화조차 어려운 전기차를 혈세까지 써가며 보급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모쪼록 안전하게 탄소 중립도 달성하면서 형평성 문제도 해결할 묘수를 정부에서 빨리 찾아내길 바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