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모터쇼에서 주요 화젯거리 중 하나는 모터쇼의 화두를 이끄는 중국 토종 완성차 업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장 먼저 열린 유럽 모터쇼는 지난해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IAA 2023'인데, 여기에서도 일부 중국 업체들이 두각을 나타내긴 했다. 그러나 IAA는 뮌헨 외곽에 있는 전시장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내에서도 열려서 관심이 분산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파리 모터쇼는 한자리에서 참여 업체들의 우위가 드러났다. 특히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업체들은 빠른 충전 속도와 긴 주행거리, 낮은 가격, 화려한 디스플레이로 관람객을 사로잡았다.
BYD는 여섯 종류의 승용차를 전시했는데, 여기에는 '2023 유럽 올해의 차' 최종 후보에 올랐던 SEAL도 포함되어 있다. SEAL은 기본형 외에도 쿠페형 전기 SUV인 SEALION 7, PHEV인 U DIM-i 등으로 가지치기 모델을 선보였다. 특히 U DIM-i는 한 번 주유로 WLTP 기준 1080㎞를 달릴 수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SEAL은 또 다른 전시 차종인 돌핀, 아토3와 함께 한국 상륙이 유력한 차다. 최고출력 530마력에 1회 충전 주행거리 502~570㎞(WLTP 기준)를 자랑하며, 내장재의 품질도 훌륭한 편이다.
BYD는 지난해 테슬라에 이어 두 번째로 전 세계에서 전기차를 많이 판매한 업체다. 신에너지차(NEV, 전기차+PHEV) 판매량은 1위이며, 올해는 테슬라를 누르고 전기차 분야에서도 1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한국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도 마무리되어 조만간 국내 소비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GAC(광저우자동차)의 HYPTEC SSR은 슈퍼카급의 스포츠카로 관심을 모았다. 최고출력 1225마력에 정지에서 시속 100㎞ 가속 성능이 1.9초에 불과하다. 특히 배터리를 운전석 시트 뒤쪽에 배치해 내연기관 슈퍼카들처럼 낮은 시트 포지션을 만들어낸 것이 인상적이다.
홍치는 럭셔리 세단과 럭셔리 SUV, 전기 SUV를 총출동시켰다. 럭셔리 세단 GUOYA는 과거 쌍용자동차가 생산하던 후기형 체어맨과 비슷한 헤드램프를 달았는데, 내부는 벤틀리 플라잉스퍼를 연상케 할 만큼 화려했다.
럭셔리 SUV인 EHS9은 BMW X7과 유사한 앞모습을 지녔는데, 운전석과 중앙, 동승석의 세 가지 디스플레이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중국차들과 달리 공조 장치 패널을 별도로 배치하고 전통적인 변속 레버로 장착했다. 이는 보수적인 럭셔리카 고객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홍치는 네 바퀴가 독립적으로 제어되는 인 휠 모터 시스템도 선보였다. 현대모비스 역시 이 시스템을 열심히 개발하고 있는데, 기술적인 난제가 있어 전 세계적으로 아직 양산 사례는 없다.
샤오펑(XPENG)은 여섯 개의 생산 차종 중에 P7의 개량형인 P7+을 선보였다. 이 차는 샤오평이 세계 최초의 AI 자동차임을 강조한다. 2개의 전후방 카메라와 밀리미터파·초음파 레이더를 사용, 고가의 라이다(LiDAR) 시스템을 쓰지 않고도 자율주행이 가능한 게 특징. 개별 사용자의 행동을 학습해 주행 모드와 대시보드 테마 및 범용 화면 미러링이 각 사용자의 선호도에 맞게 조정되는 기능도 갖췄다. 전비는 무려 8.62㎞/kWh에 이른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
대부분 중국 업체들은 화려한 디스플레이로 기존 유럽 완성차 업체들을 긴장시켰다. 운전석에서 동승석까지 이어진 대화면 디스플레이 외에도 여러 단계로 휘어진 디스플레이로 시인성을 높이는가 하면, 뒷좌석 승객을 위한 대화면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차도 선보였다. 이 같은 현상은 2023 상하이 모터쇼에서도 나타났는데, 중국 완성차 업체들은 기존 방식의 클러스터 대신 대부분 고화질 통합 디스플레이를 내세우고 있다.
중국 이외의 업체들은 줄어든 부스 면적만큼이나 위세가 약해졌다. BMW와 아우디, 폭스바겐, 스코다 등이 복귀했으나, 메르세데스-벤츠를 비롯해 현대차, 토요타, 닛산, 혼다 등은 불참했다. 2016년에 현대차와 기아, 쌍용차 등 세 업체가 참가했던 한국은 기아만 참석하며 달라진 위상을 실감하게 했다.
BMW는 노이어 클라쎄 X를 선보였고, 아우디는 Q6 스포트백 e-트론을, 폭스바겐은 타이론, 스코다는 엘로크 등을 무대 전면에 내세웠다.
기아는 EV3를 필두로 EV6와 쏘렌토, 스포티지, 스토닉, 피칸토(모닝) 등 유럽에서 인기 있는 차들을 전시했다. 기아 부스는 프레스데이에 썰렁했으나, 일반 관람이 시작된 이후에는 많은 이들이 찾아 차를 둘러봤다.
파리=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