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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독특한 발상이 만든 괴짜 SUV,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발행일 : 2024-11-07 01:12:57
[시승기] 독특한 발상이 만든 괴짜 SUV,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전동화(EV)와 자율주행(Autonomus Driving),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SDV) 등 신기술이 봇물 쏟아지는 완성차 업계에 아주 독특한 자동차가 등장했다. 에너지·화학 관련 그룹 '이네오스'가 만든 '그레나디어'라는 자동차다.

이네오스 그룹 회장인 짐 레트클리프 경은 그가 평소 타던 랜드로버 시리즈가 단종되자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현재의 기준을 만족하는 사륜구동 자동차를 직접 만들기로 했고, 그래서 탄생한 차가 바로 그레나디어다. '그레나디어'는 짐 레트클리프 회장이 즐겨 찾던 런던의 선술집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수류탄 투척병(grenadier)'이라는 뜻이다. 차의 탄생 배경부터 이름까지 독특하기 이를 데 없다.

차체 크기는 길이 4895㎜, 너비 1930㎜, 높이 2035㎜, 휠베이스는 2922㎜다. 동급 경쟁차와 비교해보면, BMW X5보다는 40㎜ 짧고 메르세데스-벤츠 GLE보다는 30㎜ 짧다. 또한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5보다는 61㎜ 짧다. 현대 팰리세이드(4995㎜)보다 10㎜ 긴 차체라면 짐작하기 쉬울 것이다.

[시승기] 독특한 발상이 만든 괴짜 SUV,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그레나디어의 외관은 랜드로버 시리즈 109에 디스커버리2를 섞은 외모지만, 차체 크기는 디스커비리 2(길이 4704㎜, 너비 1890㎜, 높이 1941㎜, 휠베이스 2540㎜)보다 훨씬 크다.

매끈매끈한 차가 넘치는 시대에 그레나디어의 외모는 터프하기 이를 데 없다. 차체 옆에 유틸리티 레일을 달아서 오너가 필요한 물건을 장착할 수 있는 센스도 돋보인다. 여기에 캠핑 때 생수병이나 바구니를 매달아 놓는 식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트렁크 도어에 달린 스페어타이어는 커버가 없이 노출돼 있다. 당연히 커버가 있을 줄 알았더니, 이네오스 홍보 담당자는 “그런 건 없다”라며 웃는다. 아쉽지만 이 부분은 애프터마킷 제품을 써야 할 것 같다.

실내 역시 외관과 마찬가지로 클래식한 감성이 넘친다. 항공기 조종석을 닮은 각종 계기가 헤드 콘솔과 센터페시아에 즐비해서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진다. 하지만 대부분 버튼 옆에 그림이 있어서 천천히 보면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기능 대부분을 터치스크린에 몰아넣는 방식보다 훨씬 직관적이다. 게다가 장갑을 끼고도 조작할 수 있도록 버튼들이 큼직하다.

[시승기] 독특한 발상이 만든 괴짜 SUV,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필드마스터 에디션에 기본으로, 다른 에디션에 옵션인 사파리 윈도는 운전석과 동승석 머리 위에 따로 마련된다. 환기하기 위해 틸트 할 수 있고, 완전히 떼어내고 머리를 내놓는 것도 가능하다. 윈도를 떼어내고 아프리카 초원에서 맹수를 지켜보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오프로드를 정복하려는 차답게 방수와 방진 성능도 철저하다. 차 바닥에 다섯 개의 배수 밸브가 있어 물을 뿌려 닦을 수 있는 것도 이채로운 부분. 그러면서도 레카로 시트로 기능성도 챙겼다.

이러한 독특한 차로 평범한 도로를 달리면 진가를 알아보기 힘든 법. 차봇모터스는 강원도 인제스피디움과 제휴해 만든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오프로드 파쿠르'로 기자들을 초청해 시승회를 열었다. 이번에 오픈한 이곳은 사륜구동 자동차의 성능을 제대로 느껴보도록 온갖 험로로 꾸며져 있고, 인근 산악도로를 달려보는 것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시승기] 독특한 발상이 만든 괴짜 SUV,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동력계통은 BMW의 직렬 6기통 3.0ℓ 가솔린 엔진과 ZF의 8단 자동변속기를 택했다. 최고출력 286마력, 최대토크 45.9㎏·m의 이 엔진은 X5와 X6, X7 등 다양한 차에 얹혀 뛰어난 성능을 입증한 믿음직한 파워트레인이다. BMW의 3.0 디젤 엔진도 선택할 수 있다.

오랫동안 검증된 훌륭한 엔진과 트랜스미션이지만, 이를 그대로 얹은 건 아니다. 오스트리아 차량 개발 업체인 마그나슈타이어와 함께 3년 동안 180만㎞를 달리며 최적화 과정을 거쳤다. 그 덕에 가속이 아주 강력하진 않아도 중간 토크 영역(1750~4000rpm)이 두툼해 오프로드에서 밀고 나가는 힘이 진득하다. 대신 최고시속은 160㎞에서 제한된다. 고속 주행을 즐기는 이에게는 이 속도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실제 주행에서 그 이상의 속도를 낼 일은 많지 않다.

실제 주행에서도 이 파워트레인은 매끄러운 연결감과 적당한 사운드, 풍부한 토크 감각으로 운전의 즐거움을 높인다. 특히 이 차는 지프 랭글러 루비콘 모델에 있는 전자식 스웨이 바 없이도 강력한 오프로드 성능을 자랑하는 게 특징이다. 엄청난 높낮이 차이의 험로 코스에서도 이 차가 든든하게 주행하는 비결이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냐고 이네오스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차체 강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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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 설명을 자세히 보니, 최대 3.5㎜의 강철 섹션으로 이뤄진 사다리꼴 프레임 섀시로 이뤄져 있다. 모노코크 프레임이 대세인 시대에 보기 드문 구조다. 모노코크보다 프레임 섀시가 튼튼한 건 두말하면 입 아픈 얘기. 여기에 전기 화학 코팅을 섀시에 입히고 파우더 코팅까지 꼼꼼하게 처리해 부식 방지에도 신경 썼다.

또한 앞뒤 스키드 플레이트와 연료탱크를 보호하는 언더라이드 프로텍션을 추가해 오프로딩에서 돌과 바위에 부딪히는 것에 대비했다. 전체적으로 차체가 아주 단단하고 믿음직하다.

구조 또한 오프로드에 최적화됐다. 프런트 오버행은 888㎜, 리어 오버행은 875㎜이고, 최저지상고는 264㎜다. 진입각은 35.5도, 이탈각은 36.1도로 웬만한 험로를 충분히 돌파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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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심하게 설계한 덕에 도강 깊이는 800㎜까지 가능하다. 일반 승용차로는 어림도 없는 높이다. 이번 시승에서는 이보다 훨씬 낮은 깊이의 수로를 지났는데, 기회가 된다면 800㎜까지 도전해보고 싶다.

타이어와 휠은 265/70 R17과 255/70 R18, 두 가지 사이즈이고, 브리지스톤 듀얼러 AT 001이 기본, 트라이얼마스터 에디션에는 BF굿리치의 올 터레인 T/A KO2가 장착된다. 시승회에서 만난 브리지스톤 타이어도 오프로드 공략 성능은 꽤 만족스러웠고, 온로드 승차감도 생각보다 괜찮다. 17인치 스틸 휠이 기본이고, 18인치 스틸 휠, 17인치 또는 18인치 알로이 휠은 옵션이다.

상시 사륜구동으로만 작동하는 바퀴는 하이 레인지와 로우 레인지를 레버식으로 선택할 수 있고, 센터 디퍼렌셜 록을 지원한다. 수많은 SUV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건 트라이얼마스터에 기본인(타 트림은 옵션) 전자식 프런트·리어 디퍼렌셜 록 기능이다. 이 기능이 없으면 흙길이나 빙판길 등에서 구동력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바퀴가 헛돌면서 힘을 허투루 쓰게 된다. 앞뒤를 따로 잠글 수 있는 차는 랜드로버 디펜더,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등 소수에 불과하다.

[시승기] 독특한 발상이 만든 괴짜 SUV,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서스펜션은 앞뒤 모두 5링크 타입. 여기에 독일 아이바흐의 코일 스프링을 써서 탄탄하면서도 안정적인 몸놀림을 만들어낸다. 다만 단단하고 듬직하게 만드느라 공차중량이 2700㎏에 이른다. 이 때문인지 인증 연비는 도심 5.3㎞/ℓ, 고속도로 5.9㎞/ℓ에 머문다.

이 차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인근 함바흐 공장에서 생산된다. 2021년에 메르세데스-벤츠로부터 인수 후 5억2000만 유로(약 7800억원) 이상이 투자됐다. 최근에 생산 이슈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기존 계약 고객에게 인도하는 건 문제 없다는 게 이네오스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레나디어의 가격은 1억990만원부터 시작하고, 트림에 따라 달라진다. 홈페이지에서 본인에게 맞는 다양한 트림과 액세서리를 고르는 맛도 쏠쏠하다.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는 분명 독특한 SUV다. 오프로드를 즐기며, 아날로그적 감성을 갖고 차의 가치를 분명하게 알아볼 이들에게는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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