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차다. 1986년 한국에 처음 출시된 이후 오랜 세월 동안 현대자동차의 고급 세단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중대형 세단으로 자리 잡았다. 높은 인기 덕에 중고차 가격도 높은 편이다.
그랜저는 현재 2.5ℓ 가솔린(휘발유), 3.5ℓ 가솔린, 1.6ℓ 가솔린 터보 하이브리드, 3.5ℓ LPG 등 네 종류로 출시된다.
시승차는 2025년형 그랜저 LPG 3.5 프리미엄이다. 현재 이 등급에서 나오는 LPG 승용차는 그랜저 외에 기아 K8이 있는데, 파워트레인은 두 차가 동일하다.
2025년형 그랜저는 상품성이 대폭 개선됐다. 차로 유지 보조(LFA) 2를 비롯해 스티어링 휠 그립 감지 시스템, 트렁크 리드 조명, 뒷좌석 시트벨트 조명, 실내 소화기, 전자식 변속 칼럼 진동 경고 기능 등이 기본 적용됐다. 차로 유지 보조 2는 전방 카메라의 작동 영역을 확대하고 조향 제어 방식을 보강함으로써 기존 차로 유지 보조 기능 대비 차로 중앙 유지 성능을 향상한 주행 편의 기능이다.
그랜저 LPG는 V6 3.5ℓ LPG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해 최고출력 240마력, 최대토크 32.0㎏·m를 낸다. 가솔린 3.5 모델의 300마력, 36.6㎏·m보다는 살짝 떨어진다. 그러나 최고출력이 가솔린 모델보다 400rpm 낮은 6000rpm, 최대토크는 500rpm 낮은 4500rpm에서 발휘돼 상대적으로 낮은 출력과 토크를 보완한다.
특히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이른바 '즉답성'이 꽤 좋아서 가속 스트레스가 적은 게 돋보인다. 과거 LPG 자동차들의 가장 큰 단점이 느릿한 반응이었는데, 이것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 현대차와 기아의 8단 자동변속기는 응답성과 연결성이 꽤 훌륭하다. 최근 부분 변경으로 선보인 기아 스포티지도 기존 DCT 변속기를 8단 자동변속기로 바꿨는데, 기아 관계자는 “연비를 다소 손해 보더라도 변속의 부드러움을 중시하는 추세를 반영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시승차의 타이어는 넥센타이어의 엔페라 수프림 S다. 그랜저의 18인치 휠과 타이어는 금호 또는 넥센 제품이 장착되는데, 두 타이어 모두 회전저항 계수 등급 2, 젖은 노면 제동력 등급 3, 타이어 소음도 등급 A로 똑같다. 시승해보면 편평률 55의 두툼한 사이드월 덕분에 두둥실 떠가는 듯한 승차감이 꽤 안락함을 준다. 20인치 휠과 타이어는 한국타이어 또는 피렐리 제품을 고를 수 있는데, 한국타이어는 젖은 노면 제동력 등급이 2, 피렐리는 1로 넥센/금호보다 우수하니 참고할 것.
복합 인증 연비는 18인치 기준으로 7.8㎞/ℓ다. 가솔린 3.5 18인치 모델의 복합 인증 연비는 10.4(도심 8.7, 고속도로 13.4)㎞/ℓ로 더 좋지만, 연료비 가격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 11월 8일 기준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1620.34원, LPG(부탄) 가격은 1029.91원이다. LPG 가격이 휘발유의 63.6% 수준. 이를 연간 1만5000㎞ 운행에 대입하면 가솔린 3.5 모델은 연간 유류비가 약 233만7000원, LPG 모델은 약 198만원이다.
차량 가격을 포함해 5년 운행 기준으로 가솔린 3.5 모델보다 대략 270만원 정도 절약할 수 있다. 이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들이 대체로 10년 가까이 운행했을 때 찻값을 상쇄할 수 있는 것에 비해서도 훨씬 이득이다. 물론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높은 인기를 감안하면, 중고차 가격은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더 높을 수 있겠다.
LPG 연료의 특징 중 하나인 뛰어난 정숙성도 돋보인다. 기자는 대우 레조를 아직 소유하고 있는데, 기화기 방식의 레조도 여전히 아주 조용한 편인데, 그랜저 LPG는 한술 더 뜬다. 노면 소음을 억제하는 노이즈 캔슬링(ANC-R) 기능과 흡음 타이어, 분리형 카페트 등을 적용한 덕분이다. 급가속을 시도하면 엔진음이 살짝 커지지만, 디젤(경유) 자동차의 진동과 소음에 비할 바는 아니다.
LPG 특유의 청정성도 빼놓을 수 없다. 폐암을 비롯한 호흡기 질환의 원인이 되는 미세먼지(PM)와 질소산화물(NOx) 배출이 아주 적은 게 특징. 질소산화물 실내 실험에서 휘발유 차는 ㎞당 0.011g, 경유 0.036, LPG는 0.005를 기록했다. 또한 실외 도로 시험에서는 휘발유 0.020, 경유 0.560, LPG 0.006을 나타내, 경유와 비교해 LPG는 93분의 1의 수치를 나타냈다. 게다가 경유 차에 필요한 요소수 보충이 필요 없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그랜저와 K8 LPG는 도넛 형태의 탱크를 트렁크 바닥에 배치해 가솔린 모델과 큰 차이 없는 트렁크 공간을 갖췄다. 트렁크 안쪽에 탱크를 배치한 것에 비해 활용도가 좋고, 트렁크를 열었을 때 보기에도 좋다. 물론 가솔린 모델보다는 미세하게 트렁크 용량이 줄긴 했다.
그랜저 LPG 3.5의 가격은 3916만원(프리미엄)부터 시작해 가솔린 3.5 모델(4015만원)보다 낮다. 여기에 파노라마 선루프(119만원), 헤드업 디스플레이(99만원), 플래티넘(129만원), 파킹 어시스트(143만원), 현대 스마트센스(84만원), 프리미엄 초이스(129만원) 옵션이 마련된다. 이를 모두 추가하면 4619만원이 된다. 그 위 등급인 익스클루시브는 4406만원이고, 여기에 옵션을 다 더하면 5070만원이다.
전기차가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친환경으로 가는 방향에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고 시승기에서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다. LPG 차의 친환경성과 경제성은 약간 덜 알려진 면이 있지만, 한번 체험하면 아주 매력적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국내 최고의 인기 모델인 현대 그랜저와 만난다면 금상첨화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