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서부의 아가씨(LA FANCIULLA DEL WEST)>가 12월 5일부터 8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푸치니 서거 100주년 기념 로맨틱 서부극 오페라로, 지휘 홍석원, 연출 니콜라 베를로파, 국립합창단, 위너오페라합창단, 코리아쿱오케스트라가 함께 한다.
<서부의 아가씨>는 시원하게 감정을 해소하는 아리아를 원하기보다는, 차분함 속 절절함을 주는 카타르시스를 더 선호하는 관객에게는 정말 좋은 작품이다. 푸치니의 오페라를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 푸치니다운 서정성과 우울함이 공존하는 작품
<서부의 아가씨>는 황금을 찾아 떠난 길 끝에 발견한 값진 사랑을 전달하는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이다. 경쾌하면서도 긴장감을 주는 서곡으로 시작하며, 처음부터 음악적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푸치니다운 서정성과 아름다운 선율, 그리고 재즈와 민속 노래 등을 차용한 근대적인 관현악법을 도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서부의 아가씨> 드레스 리허설을 직접 관람하니, 12월을 차분히 보내고 싶은 오페라 관객에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라보엠>, <나비부인>, <투란도트>와 비슷한 정서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서부의 아가씨> 전반부에서 주인공인 술집 주인 미니(소프라노 임세경, 김은희 분)는 <라보엠>의 미미, <나비부인> 초초상, <투란도트>의 투란도트 공주를 연상했다. 성격과 행동에서 닮은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오페라 후반부에서 미니의 캐릭터는 명확하게 변화했다. 기존에 잘 알려진 푸치니 작품 속 여주인공보다 더욱 당차고 적극적이고 주도적이기에, <서부의 아가씨> 후반부에서 미니는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런 모습은 <투란도트>에서 칼라프 왕자의 시녀로 나오는 류(Liu)를 떠올리게 했다. 사랑과 장애물, 두 가지 앞에서 당당하고 주도적으로 배팅할 수 있는 여자 캐릭터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건 푸치니 작품의 변주라고 볼 수도 있지만, 원작인 데이비스 벨라스코의 연극 <황금시대 서부의 아가씨>의 영향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서부의 아가씨>는 시원하게 감정을 해소하는 아리아를 원하기보다는, 차분함 속 절절함을 주는 카타르시스를 더 선호하는 관객에게는 정말 좋은 작품이다. 푸치니의 오페라를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 무대 장치와 소품! 무대와 관객석이 하나로 연결된 원형 경기장의 느낌을 주다
국립오페라단 <서부의 아가씨>는 무대 장치와 소품이 주는 볼거리가 인상적이다. 특히 LED 배경의 공연에 익숙한 최근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신선한 경험의 시간이 될 수 있다. 마을에 숨어든 무법자를 구하기 위한 운명의 카드 게임이 펼쳐지는, 1849~1850년 경의 황금광 시대의 캘리포니아 광산을 배경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제1막에서는 조명이 밝을 때 무대에 설치된 빨간색 벽이 도드라져 보였다. 조용한 밤을 상징하는 어두운 빨강은 관객석 측면과 뒷면 벽의 빨강과 조화를 이룬다. 그렇기에 색채적 감각에 민감한 관객은, 무대와 관객석이 하나가 되어 연결된 원형 경기장 같은 공연장에서 관람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제2막에서 눈 내리는 이층집은 분리된 공간인데, 관객석에서는 전체가 한 번에 다 보이는 구조이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분할 화면과 같은 구성은, 제1막과는 확실히 다른 변화를 준다. 나누어진 각 방처럼 여러 등장인물의 감정도, 주인공 미니의 감정도 지금 여러 개로 나뉜 게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제3막은 죽음과 상실의 이미지가 극대화된다. 그렇기에 변화된 미니의 감정이 더욱 극적인 반전으로 시각화된다. 제2막에서 제3막으로, 안정된 공간이 위기 촉발 직전의 불안한 공간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미니의 마음과 결단은 더욱 명확하게 된다는 점은, 관객의 감정 또한 극도의 긴장에서 벗어나 좀 더 편하고 행복한 상태로 끌어올려 마무리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긍정적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