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자동차경주협회가 올 한해 국내 모터스포츠 전반을 돌아보는 결산 자료를 발표했다.
협회는 모터스포츠 업계가 미개척 영역에 과감히 도전하는 동시에 한 차원 성장하는 한 해를 보냈다고 평했다.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간 15개의 대회와 58번의 레이스 대장정을 마쳤기 때문이다. 협회는 올해 모터스포츠 업계에 있었던 9개의 이슈를 선정했다.
1. 국내 대회 관중 역대 최고치 신기원
국내 최고 등급 챔피언십 프로 대회인 '오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이 팬데믹 이후 역대 누적 관객 수 최대치인 14만8522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달성한 13만5224명의 수치를 다시 한번 갱신한 놀라운 성과다. 특히 지난 7월에 열린 6라운드 대회에만 3만1558명이 몰리며 역사상 최다 관중 수를 돌파했다. 이는 타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도 단일 경기에서 달성하기 힘든 규모다. 개막전 더블 라운드에도 3만1417명의 관람객이 방문했으며, 경기당 평균 관중 수는 2만1217명을 기록했다.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치러진 '현대 N 페스티벌' 또한 처음 관중을 맞이했음에도 5만 명이나 경주장을 찾아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다. 올해 국내 모터스포츠는 연이어 관중 신기록을 경신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프로야구의 경기당 평균 관중은 1만1408명, 프로 축구는 6475명, 남자 농구 2354명 등의 순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경기를 선보이는 오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은 평균 관중 수가 2만 명을 넘어서며 모터스포츠가 가족 중심 주말 나들이 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줬다.
2. 입문 기초종목 참여자 1500명 돌파…역대 신기록
2024년 프로 대회 관중 동원력의 강세와 함께 모터스포츠 입문 기초종목의 성장도 두드러졌다.
협회는 일반인의 모터스포츠 체험 기회 확대를 위해 기초종목 운영사 및 관계사와 함께 짐카나, E 스포츠 대회, 스쿨 등 연 27회의 이벤트를 진행했다. 여기에 참여한 인원은 연 1505명으로 역대 최고치다.
모터스포츠 업계의 지평을 넓힌 주요 요인 중 하나로, KARA E 스포츠컵의 신설 등 다양한 진입 기회 확대 정책이 지목됐다. 누적 750명에 달하는 심 레이싱 클럽 참가자와 전국 5대 지역으로 확대 개최한 짐카나 종목(참여자 502명)의 활성화가 핵심 성장 동력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종목 참여 인구 증가는 장기적으로 국내 모터스포츠의 양적 확대에 필수 자양분이 되는 만큼 올해 성과에서 큰 의미가 있다.
3. KARA 회원 사상 첫 1만5000명 돌파
대한자동차경주협회 회원 수가 올해 1만5000명 선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레이싱 드라이버 및 경기 운영 오피셜에게 주어지는 자격증(라이선스) 소지자와 모터스포츠 팬 등 멤버십 가입자를 합한 인원으로, 국내 모터스포츠 관여 인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척도다.
협회 회원 규모 확대와 함께 모터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증가도 눈에 띈다. 오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을 선두로 현대 N 페스티벌 등의 누적 시청자와 SNS 인게이지먼트, KARA 자체 콘텐츠에 노출된 누적 인원이 3048만 명에 달하는 등 지난해 대비 53% 성장했다. 협회는 늘어나는 멤버십 가입자를 위해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먼저 매월 정기 발행하는 뉴스레터로 경기와 업계 정보를 다양하게 전달하고 있다.
또 주요 대회 입장권과 경기장 주행 이용권, 인제 스피디움 호텔 숙박 할인권, 각종 이벤트 참여 기회 제공 등 갖가지 혜택을 확대해 가입자들의 유입 활성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외에도 최근 CHA 의과학대학교 차병원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회원들에게 고품질의 건강검진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도 했다.
4. 국내 첫 '하이브리드' 경기 신설
오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은 토요타와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 레이스 '프리우스 PHEV' 클래스를 올해 새로 선보였다.
엔진과 전기 모터를 함께 쓰는 친환경적 레이스를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종목은 하이브리드카 오너를 주 대상으로 한 엔트리 종목으로, 모터스포츠 참여 인구를 확대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한국 토요타 자동차는 해당 클래스 참가자 18명을 위해 프리우스 마스터 아카데미를 개설하는 등 모터스포츠 참여자에게 특별한 경험과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했다. 올해 모두 6라운드가 열린 프리우스 PHEV 클래스는 2026년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5. 국내 모터스포츠 내 전기차 클래스 첫 등장
현대 N 페스티벌은 지난 5월 전기차 클래스인 'eN1'을 처음 선보이며 국내 최초 전기차 원메이크 대회를 개최했다.
현대자동차의 전용 레이싱 부품으로 무장한 아이오닉5 eN1 컵카가 그 주인공으로, 이번 클래스는 일대일 토너먼트 방식의 독특한 경기 방식으로 진행됐다.
올해 10라운드 열린 해당 클래스는 향후 비 내연기관 동력 레이스의 국내 정착 가능성을 알아보는 시금석 역할을 했다. 이번 클래스의 시험적 도입을 계기로, 협회는 전기차 레이스의 안전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등 경기 운영 전반에 새로운 대응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6. 역대 가장 안전한 대회 환경 조성
협회는 2024년 경기 현장에서의 안전 확보에 전문 역량을 집중했다. 우선 올해 의료계에 발생한 인력 이탈 대란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협회는 경기장 거점 권역 응급의료센터와의 협력을 강화해 공인대회에 의사, 응급구조사 등 전문 의료진이 차질 없이 파견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더불어 관련 기관 협조로 자동차 사고 부상에 대한 대응력을 높인 특수 구급차를 배치하기도 했다.
특히 유소년이 참여하는 모든 공인 카트 대회 현장에 협회가 임명한 CMO(Chief Medical Officer)와 구급차를 직접 배치해 안전 및 응급 대응 수준을 끌어올렸다. 전년까지 카트 대회 주최 측이 의료 인력 구성을 담당했지만, 올해부터 협회의 직접 파견방식으로 전환해 사고 시 안전 대응력을 강화한 것이다.
협회는 이와 함께 경기장 관할 지역 소방서와 연계해 경기 운영 인력으로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오피셜 요원, 소방관, 의사, 응급구조사 등 응급 관련 전문가가 참여하는 합동 사고 대응 교육 훈련을 확대해 시행했다.
7. 국내를 넘어 국제 대회까지 제패
지난 10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열린 2024 FIA 모터스포츠 게임즈(FIA Motorsport Games)에서 협회 파견 국가대표팀이 역대 첫 메달권 진입에 성공했다. 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참가국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금·은·동 메달을 수여하는 올림픽 형 시상 구조로 관심을 끈 이 국제 대회에서 한국팀은 총 26개 종목 중 5개 대회(카팅 시니어, 카팅 미니, E 스포츠 F4, E 스포츠 GT, 오토슬라럼)에 참가했다. 이 중 디지털 심 레이싱 종목인 E 스포츠 F4에 도전한 김규민이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동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뤘다.
FIA가 카트 활성화를 위해 만든 첫 국가대항전인 '2024 FIA 카팅 OK-N 월드컵(Karting OK-N World Cup)'에서 국내 유망주 이규호 선수(15세)가 대한민국 최초로 우승컵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취약한 국내 카트 환경 속에서 이뤄낸 성과로 업계서는 이를 더욱 뜻깊게 평가했다. FIA Karting OK-N World Cup은 FIA가 유소년 참가 종목인 카트 활성화를 위해 만든 첫 국가 대항전(Nation Cup)이다.
현대자동차 월드랠리팀은 2024 WRC(World Rally Championship) 시즌 드라이버 부문 첫 우승을 달성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티에리 누빌은 'i20 N Rally1 하이브리드' 경주차로 출전해 올 시즌 총 6번의 포디움에 올랐으며, 코 드라이버로 함께 출전한 마틴 비데거(Martijn Wydaeghe) 선수도 시즌 코 드라이버 부문 1위에 올라 팀의 성과를 더욱 빛냈다.
현대 월드랠리팀은 이미 두 차례의 제조사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드라이버 챔피언십 우승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현대 월드랠리팀은 제조사 챔피언과 드라이버 챔피언 타이틀을 모두 갖게 됐다.
8. 모터스포츠로 하나 된 현대차와 토요타
지난 10월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역사적이면서도 이색적인 이벤트가 열렸다. 바로 한·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메이커의 협업으로 화제를 모은 '현대N x 토요타 가주 레이싱(Hyundai N x TOYOTA GAZOO Racing) 페스티벌이다.
양사는 선두 경쟁 중인 세계랠리선수권(WRC) 참가차를 나란히 선보인 것을 비롯해, 모터스포츠 기반 고성능 차량을 쏟아내며 다채로운 볼거리들을 선사했다. 해당 이벤트는 정식 경기가 아니었지만, 모터스포츠를 주제로 대중 공감 확대를 꾀한 거국적 협력이라는 측면에서 깊은 울림을 남겼다.
특히 글로벌 자동차 제조 5위권 경영자인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토요다 아키오 회장이 직접 현장에 참여해 모터스포츠의 매력을 알리는 데 발 벗고 나서 행사의 진정성과 무게를 더했다.
현대차와 토요타는 티켓 판매 수익금 전액을 국내 모터스포츠 주관단체인 대한자동차경주협회에 기부했다. 이 기금은 모터스포츠 안전 강화를 위한 교육 확대 및 유소년 육성 등의 공익사업에 재투자될 예정이다.
9. 더욱 신선한 밤 경기, 나이트레이스 섬머 시즌 도입
오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이 올해 처음으로 '나이트레이스 섬머 시즌'을 선보였다.
야간 경기 일정을 묶어 관중 친화형 이벤트로의 도약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평년 연 1, 2회 열리던 야간 경기 비중을 연 3회로 늘리고 혹서기인 6~8월에 이를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시즌 인 시즌' 방식이다. 이는 경기 관람의 장애 요인인 여름철 폭염의 악조건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동시에 모터스포츠가 주는 즐거움을 획기적으로 증폭시킨 아이디어다.
주말 여름밤을 모터스포츠 문화로 물들인 섬머 시즌은 대회 관중 규모를 역대 최고치로 끌어 올리는 데 일등 공신이 되며 국내 최장수 리그에 새로운 다채로움을 더했다.
◆남겨진 숙제는?
협회는 2024년 한해 모터스포츠를 대중화하고 스포츠 전문성을 강화해 투자가치 있는 산업 플랫폼으로 육성한다는 핵심 3대 목표를 위해 지난 1년간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기초종목 참여자와 협회 회원 수가 늘어나는 등 뚜렷한 결실이 나왔지만, 향후 지속가능한 모터스포츠 산업 환경 구축을 위해 남겨진 숙제들도 많았다.
먼저 기초종목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필요 종목으로 분류되는 드래그와 드리프트 대회가 개최되지 못했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는 정보의 부족, 적은 대회 수 등으로 인해 아직 접근하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새해 기초종목의 개최 횟수 확대와 초심자 대상 교육 프로그램 보완이 앞으로의 숙제로 남겨졌다.
또한 올해 유소년 선수 육성의 핵심 창구인 카트 부문에서 종목을 대표하는 챔피언십 타이틀 리그가 개최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협회는 경기장과의 협의를 통해 챔피언십 부활에 힘쓰는 한편, 카트 입문자를 위한 공식 교육 프로그램 개설을 추진, 풀뿌리 유소년 참여 인구를 증가시킬 방침이다.
더불어 협회는 기존 오피셜 및 심사위원 교육 체계와 수준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기존 교육 운영 방식이 양적 확대에 치중돼 있어 선진 수준 레이스 운영에 도달하기 위한 전문성 확보에는 적합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함께 공인 비용 납부 구조와 라이선스 체계 선진화 등 모터스포츠 주관단체의 고유 기능을 고도화해야 한다는 목표가 향후 추진목표로 상정됐다. 협회는 이와 함께 모터스포츠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ESG 개념을 국내 경기 현장에 단계적으로 도입기로 했다. 대표적으로 FIA가 부여하는 환경인증 스타 취득이 선결과제가 됐다. 지속가능한 모터스포츠 산업 환경 구축을 위해 협회가 발 벗고 나서 본격적 준비에 들어서는 것이다.
협회는 2024년을 마무리하며 올 한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팀과 선수에게 시상하는 'KARA PRIZE GIVING'을 오는 19일 서울 한강 반포지구 세빛섬에서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한 해의 성과를 결산하는 한편 새해의 주력 사업 방향에 대한 개괄적 발표도 진행할 예정이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