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M9

뉴스
HOME > 뉴스 > 신차

큰 형님의 선물, 현대 제네시스쿠페 200터보

발행일 : 2009-01-01 17:15:10

크리스마스를 끼고 예정에 없던 시승을 하게 되었다. 차량은 현대 제네시스 쿠페. 지난 번의 380GT에 이어 이번에는 200터보 모델(이하 3.8 / 2.0)이고, 국내 메이커 시승차로는 앞으로도 만나볼 일이 없을 것만 같은 수동변속기 차량이었다. ‘올해는 착한 일을 하지 않고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구나….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시승에 임했다. 비록 투스카니의 직접적인 후계모델로 보기는 어렵지만, 현대차의 ‘스포츠 쿠페 제 4막’에 해당한다는 측면에서 약간의 비교도 곁들이도록 하겠다. 글/ 민병권 (www.rpm9.com 에디터)사진 / 박기돈 (www.rpm9.com 편집장)
제네시스 쿠페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과 문화에서 갖는 의미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테지만, 개인적으로도 한때는 현대 투스카니를 탔었고 한동안은 인피니티 G37쿠페를 장기 시승차로 몰고 다녔었기에 이번 시승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회사가 만든 후륜구동 쿠페를, 게다가 터보 차를, 그것도 수동으로 시승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것도 하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시승차는 2.0이었지만 거의 모든 옵션이 끼워진 최고급 사양이라 실내외가 지난 번의 3.8 A/T 차량과 다를 바 없었다. ‘200Turbo’라는 엠블렘과 변속기가 다를 뿐, 19인치 휠과 브렘보 브레이크, JBL오디오까지 동일했다. 기왕이면 옵션 다 빠진 완전 기본형의 ‘깡통’차를 타보고 싶기도 했지만, 제네시스 쿠페에는 사실상 그런 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사양의 수준이 높다는 얘기다.
스마트 키와 버튼식 시동장치도 전 트림 기본 사양이다. 버튼식 시동장치가 달린 수동변속기 차를 시승하기는 처음이다. 그래서 잠시 쇼를 좀 했다. 클러치가 아닌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채 시동버튼을 눌렀던 것이다. 필자의 차도 수동이라 항상 클러치를 밟으면서 키를 돌리는 것이 습관화 되어있는데도 이런 실수를 해버렸다. 시승차의 사양 조합이 그만큼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국산차로서는 더더욱. 제네시스 쿠페의 첫인상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크다’는 것이다. 제네시스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 만큼, 현대자동차가 이전에 만들었던 스포츠 쿠페들과는 급이 다른 크기를 자랑한다. 넓고, 길고, 그리고 차체 길이에 비해 휠베이스(앞바퀴와 뒷바퀴의 축간거리)가 긴 점이 상당히 도드라진다. 물론 기존의 앞바퀴 굴림에서 뒷바퀴 굴림으로 진화한 만큼, 휠베이스의 증가는 자연스럽다. 하지만, 제네시스 세단과 비교해서도 길이는 35cm 가까이 줄어든 반면, 휠베이스는 11cm 밖에 줄지 않았다. 이러한 크기와 비례를 가진 쿠페는 의의로 드물어서, 메이커 스스로 밝히고 있는 주요 벤치마킹 차량이 인피니티 G37쿠페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현대 관계자들은 승차감이나 주행특성에 있어서도 G37쿠페를 주로 참고했다고 밝혔는데,이를 통해 제품이 추구한 바를 읽을 수 있다. G37쿠페, 혹은 일본내수형 버전인 닛산 스카이라인 쿠페는 스포티한 고급 쿠페이지, 순수 스포츠카를 지향한 차들이 아니다. 비교하자면, 닛산은 좀더 스포츠카에 가까운 차로 페어레이디Z(수출명 370Z)를 갖고 있다. 최근 350Z에서 370Z로 모델 체인지 된 이 차량은 사이즈와 휠베이스를 종전보다 줄임으로써 순수 스포츠카에 좀더 다가가고자 했다. 기본적으로 덩치가 크고 무거운 것, 휠베이스가 긴 것은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는 스포츠카에 어울리는 특성이 아니라는 얘기다. 본격 스포츠카들에 비해 편안함과 여유를 추구하는 차들은 장거리 고속 주행에 어울린다고 해서 ‘GT(Grand Touring 혹은 Gran Turismo)’라고 부르곤 한다. 스포츠카의 대명사인 페라리에서 조차 612같은 차들은 GT로 분류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이런저런 차들을 다 뭉뚱그려 스포츠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말이다.
제네시스 쿠페는 54:46이라는 무게배분도 G37쿠페와같은 것으로 되어있다.닮은 부분이 많지만 인피니티가 애용하는 '프론트 미드십'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고 있다.
제네시스 쿠페는 이름에서도 ‘대형’ 럭셔리 세단의 이미지를 업은 고급 쿠페 임을 자처하고 있다. 비슷한 사이즈인 G37쿠페가 이름상으로는 고급 ‘중형’ 쿠페에 머무르는 것과도 비교되는 부분이다. 현대가 그간 만들어온 스포츠 쿠페들 보다 고급 패키지가 적용된 차인 만큼 목표 고객층의 소득수준과 연령대도 더 높고, 결국 그들의 기호를 두루 만족시키기 위한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필수였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기대치 또한 높여놓은 것이 약간의 역효과로 나타나고 있으며, 현대 스스로도 과연 제품의 성격을 명확하게 잡고 있는 것인지 조금은 의심스럽기도 하다.
‘BK’라는 코드명으로 불렸을 당시의 스파이 사진(위장막을 씌운 개발 차량의 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는 투스카니와 별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실루엣 때문에 흥미를 잃기도 했던 기억이다. 다행히, 제네시스 쿠페는 실물이 훨씬 잘생긴 차다. 예의 그 독특한 비례를 더욱 강조하듯 앞 바퀴 쪽으로 휘어감은 범퍼와 앞 유리 끝 단부터 후드를 타고 범퍼까지 이어지는 캐릭터라인, 맹수의 송곳니를 닮은 헤드램프가 날카롭고 공격적이며 화려한 인상을 만든다. 낮고 넓게 퍼져 차폭을 더욱 강조해주는 후드는 ‘붕어머리’라고 놀림 받았던 초대 투스카니의 한풀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다크 크롬으로 처리된 라디에이터 그릴에서는 차의 포지셔닝에 대한 현대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색상과 조명에 따라 상당한 수준의 ‘포스’까지도 느낄 수 있는 자태다.
측면은 낮고 긴 후드와 높고 짧은 데크(트렁크), 이 둘을 연결하는 ‘Z’형 면의 교차, 그리고 컨셉카 HCD-9 ‘탈루스’에서 옮아온 측면 유리 형상으로 요약된다. 호불호를 떠나, 해외에서는 페라리를 베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던 투스카니에 비하면 한층 독창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뒤쪽이 아래로 더 쳐지는 측면유리 형상은 Z자로 치고 올라가는 라인과 부대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진다. 뒷좌석 승객의 시야 확보를 위한 배려라는 꿈보다 해몽식의 설명도 있으나, 쿠페는 뒷좌석 승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른 부분을 희생할 차가 아니지 않나.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어느 정도까지는 손질이 가능한 앞뒤 모습과 달리, 윈도우라인을 수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에서도 꽤 과감한 시도를 한 셈이다. 그렇다면 눈에 익기를 바라는 수밖에. 뒷모습에서는 범퍼 일체형의 디퓨저 형상과 배기구(인하우징 듀얼 머플러)가 멋스럽고 고급스러운 감각이다.
실내는 타이트하게 조이는 느낌보다는 넓고 여유로운 쪽이며, 의외로 그리 낮게 앉는다는 감각도 아니어서 시야가 좁거나 답답하지 않다. 다만 창턱이 높기 때문에 팔을 기대거나 톨게이트에서 표를 뽑을 때는 지금 어떤 차를 타고 있는지를 자각하게 된다. 실내마감은 ‘제네시스’라는 이름만 잊고 본다면 그럭저럭 눈감아 줄 수는 있는 수준이다. 특히, 레드 팩(검정/빨강 투톤 내장)이 적용되어 있었던 지난 번의 3.8 시승차와 달리 이번에는 블랙 원톤이라 마감재 질감에 대한 불만을 삭일 수 있었다. 사진 상 실내에서 가장 우려됐던 부분은 펑퍼짐한 스티어링 휠과 아래쪽이 더 넓게 퍼진 센터페시아 형상이었다. 스포츠카(?)로서의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디자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막상 운전석에 앉아보면 스티어링 휠은 사진처럼 뚱뚱해 보이지 않고, 센터페시아 역시 그리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이 두 부분에는 메탈룩 장식을 입혀 고급스러운 실내 분위기를 이끌어내고자 했는데, 그보다는 다른 부분들과의 이질감이 더 부각되는 듯 하다. 제네시스 세단과는 직접적으로 닮은 부분이 없는데, 공조장치와 오디오 조작부의 다이얼을 중심으로 한 날개 형상에서는 제네시스 마크와의 연관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센터페시아 아래편의 덮개를 열면 전원소켓(라이터)과 함께 스마트키 삽입부가 나온다. 스마트 키의 전원 부족 시 꽂아두는 곳으로, 차량에 따라 대시보드 왼쪽 아래의 으슥한 곳이나 센터콘솔의 수납공간 안쪽에 내장하기도 하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취급이 용이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꽂지 않아도 시동은 걸 수 있지만, 키를 두고 내리거나 운전자 교대 후 시동이 걸린 상태에서 키를 가진 채 내려버리는 등 의외로 실수를 많이 하게 되는 것이 스마트 키인지라, 아예 여기에 꽂아두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키가 꽂혀있으면 덮개가 닫히지 않으므로 두고 내릴 확률도 적다. 센터페시아 위쪽의 액정화면은 파란색 조명 탓에 시인성이 떨어지고, 화질이나 모서리 부분의 처리에도 아쉬움이 있다. 원통형상으로 뽑아낸 계기판과 그 사이에 자리한 경고등 표시부분은 허전한 느낌을 주며, 파란색 조명을 썼다고 해서 꼭 그러란 법은 없지만 계기의 스포티한 맛도 덜하다. 시트 열선 버튼에 마저 파란색 LED를 적용한 것을 보면 융통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속도감응 오토도어록이 차를 세워도 자동으로 풀리지 않는 것은 불편한 내용. 화장거울은 덮개와 조명 스위치가 별개로 되어있다.
대시보드 일부와 스티어링 휠의 림 부분에는 우툴두툴한 느낌의 패턴이 적용되어 있는데, 밝은 곳에서 보면 번들거려 값싼 느낌을 준다. 특히 스티어링 휠에 타공가죽 대신 이러한 재질을 쓴 것은 의외다. 스티어링 휠 직경은 370mm 정도이고 록투록은 2.7턴으로 조작감이 묵직하지만 반응이 빠르다. 특히 정차 중 스티어링 휠을 감아보면 차가 횡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육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스티어링 휠의 거리 조절을 할 수 없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으나 필자의 경우에는 운전자세를 잡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시트는 스포츠카로서의 꽉 조인다는 느낌보다는 GT카로서의 풍성한 느낌이 강하다. 현대가 만든 스포츠 쿠페의 시트는 대대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으며, 특히 독일 카이퍼(레카로)에서 용역평가를 받은 투스카니의 시트는 타 차종의 이식용으로도 인기가 높았다. 제네시스 쿠페의 시트 역시 그러한 호응을 이어가는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번에는 헤드레스트 일체형의 디자인을 채택했는데, 모양도 좋고 기능적으로도 불만의 소지가 없다. 최고급 사양이라 운전석에는 전동시트가 적용되어 있었는데, 앞뒤 거리 조절과 높이조절 (앞뒤 개별)은 전동식이고 등받이 각도와 허리받침 조절은 수동식이다. 머리받침의 거리조절기능 또한 제공하고 있다. 한가지 특이사항은 뒷좌석 승하차를 위해 등받이를 원터치로 젖히는 기능이 동반석에만 적용되어 있다는 점이다.
쿠페인 만큼 문짝이 크고(길고) B필러는 그만큼 뒤로 물러나있으며, 안전벨트 또한 멀리 있다. 차의 크기만큼이나 좀더 멀게 느껴지는 편인데, 시트 아래쪽에 안전벨트 고리가 있어 그나마 잡기가 덜 불편하도록 해주고 있다. 3시리즈 쿠페의 경우 뒤쪽에서 전동식으로 팔이 튀어 나와 안전벨트를 어깨가까이 대령해주고, G37 쿠페는 어깨 쪽에 수동식의 안전벨트 거치대를 위치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없다고 해서 크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동반석에 탄 사람의 안전벨트를 채워주는 친절을 베풀기란 사실상 불가능 할 것 같다. 그 사람을 실제로 덮치지 않는 한은? 뒷좌석 공간은 상당히 넓어서, 커진 차체의 덕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무릎공간도 충분하고 발도 움츠릴 필요가 없다. 센터터널이 높고 방석부분이 조금 짧게 느껴질 뿐, 어떤 준중형급 후륜구동 세단보다는 차라리 낫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의 풍족한 공간이다. 단, 머리는 뒷유리에 문대고 있어야 하고, 목은 꺾은 채 앉아있어야 한다. 이 부분만큼은 투스카니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 투스카니처럼 뒷 유리가 트렁크와 함께 열리지는 않으니 닫을 때 머리를 찍힐 염려는 없어졌지만,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는 긴장감이 넘친다. 어린이라면 넉넉한 공간을 놀이터 삼을 수도 있을 것이며, 현대에서 센스를 발휘해 넓혀놓은 측면 뒷창을 통해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혼과 육아를 걱정해 쿠페 구입을 망설이는 예비 고객들을 붙잡기 위해 유아용 시트 고정장치도 마련해 놓았다.
겉보기에는 같은 쿠페형 일지라도, 투스카니는 트렁크 덮개가 뒷유리와 함께 열리는 3도어 해치백 구조였던 반면, 제네시스 쿠페는 트렁크 덮개만 열리는 노치백의 2도어 쿠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안쪽으로 파고든 양쪽 테일램프와 최대한 뒤로 뽑아진 듯한 뒷유리에 의해 포위된 좁은 트렁크 개구부를 보고 있자면 확실히 투스카니의 해치백 구조가 실용적이긴 했다는 생각이 든다. 뒷좌석 등받이를 접으면 골프백 두 개를 실을 수 있다고 하니, 요즘 고급 쿠페의 기준으로는 충분한 것이 아닌가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G37쿠페의 경우 트렁크에 골프백 두 개를 가로로 겹쳐 넣는 법을 도식화해서 붙여놓았을 정도로 이런 부분은 제법 민감하다. 시트 폴딩은 듣받이가 통째로 넘어지는 벤치 타입이고, 통로는 그리 넓지 않다. 트렁크 바닥 아래로는 스페어 타이어가 들어있는데, 시승차 사양에는 임시스페어타이어에 조차 알루미늄 휠이 적용되어 있다. 시승차에는 JBL앰프와 스피커 10개로 구성된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도 적용되어 있었는데, 투스카니 때처럼 트렁크 한편을 서브우퍼에게 내주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소리가 명쾌하지 않아 그리 좋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으나 편의적인 면에서는 더 바랄 나위가 없는 구성이다. 헤드유닛에는 여섯 장의 CD가 들어가고, MP3지원은 물론 센터콘솔 수납공간에는 USB, AUX단자가 조명과 함께 내장되어 있다. 물론 블루투스 핸드폰과도 연동된다. IT강국에 살고 있음을 재확인시켜주는 사양들이다.
엔진은 ‘2.0 TCI RS’라는 낯선 이름을 달고 있는데, 친숙한 버전으로 바꿔 묘사하자면 ‘쏘나타에 얹히는 2.0리터 쎄타 엔진에 터보와 인터쿨러를 달아 뒷바퀴 굴림 차에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쏘나타 2.0은 163마력에 20.1kgm이지만 제네시스 쿠페에서는 과급기의 힘을 빌어 최고출력 210마력, 최대토크 30.5kgm를 발휘하고 있다. 투스카니는 후기에 베타 VVT 엔진을 쓴 2.0이 143마력이었고 V6 델타엔진의 2.7 엘리사도 180마력을 채 못 넘겼었다. 특히 투스카니 2.0은 같은 엔진을 쓴 아반떼XD 등에 비해 나을 바 없는 힘을 내면서도 무게는 오히려 더 나갔기 때문에, 가속형의 기어비에 의존해 가까스로 가속성능에서의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투스카니 2.0 오너들이 염불을 외다시피 했던 출력증강에 대한 염원이 제네시스 쿠페에 이르러서야 어느 정도 해소가 된 셈이다. 비록 투스카니 시절보다 200kg 늘어난 1.5톤 초과의 몸무게가 발목을 잡는다고는 하지만, 출력1마력당 차량무게를 비교해보면 투스카니가 9.3kg/ps, 제네시스 쿠페가 7.3kg/ps로, 한결 여유 있는 힘을 갖게 됐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투스카니 2.7의 7.8kg/ps보다도 나아진 것이니, 3.8의 하위 모델로써 자리하는 제네시스 쿠페 2.0으로서는 필요 충분한 힘을 확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투스카니 2.7이 최고출력 수치에서는 기대에 못 미쳤을 망정, 체감 성능 면에서는 국내외에서 꽤 좋은 평가를 받았던 점을 고려하면 제네시스 쿠페에 대한 기대치도 은근 높아지게 된다. 물론, 투스카니 2.7과 비교하자면 배기량 차이를 과급으로 극복하고 있다는 점과 V6가 아닌 4기통 엔진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참고로, 폭스바겐 골프 GTI는 7.4kg/hp, 아우디 TT 2.0TFSI는 6.8kg/hp 이다. 모두 국내 공차중량 기준.)
게다가 제네시스 쿠페는 2.0 모델에도 기본 변속기를 ‘6단’ 수동으로 설정하고 있다. 투스카니의 경우 초기에는 2.7 모델에만 6단이 적용됐었고, 나중에는 ‘GTS-II’로 불리는 2.0 일부 차량에도 6단이 적용되긴 했지만 가격차로 인해 실제 판매비중은 높지 않았다. 제네시스 쿠페에 와서는 3.8에 6단, 2.0에 5단으로 자동변속기를 차등적용하고 있는 것과 달리 수동변속기는 양쪽에 모두 6단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100km/h 정속 주행시 엔진회전수를 비교해보면 투스카니 5단이 3,000rpm이었던 것에 비해 제네시스 쿠페는 2,500rpm으로 고속주행시의 스트레스가 한결 줄었다. 그러면서도 6단 변속기가 적용된 일반 승용차들과 비교하면 수백rpm정도 높은 것이라, 여전히 가속형의 기어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원상 최대토크는 2,000rpm부터 나오지만 실제 주행 시 가속력이 분출된다고 느껴지는 것은 3,000rpm부근이며, 급가속 시에는 흔히 ‘터보 랙’이라고 부르는 반응시간지연이 조금씩 느껴지는 편이다. 홍보문구와 같은 ‘폭발적인 힘’은 당연히 아니지만 묵직한 토크에 의한 꾸준한 가속은 투스카니 2.0 시절의 아쉬움을 떨치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최고출력은 6,000rpm에서 나오고, 6,750rpm에서 리미트가 걸릴 때까지 엔진회전은 부드럽게 상승한다. 회전한계를 기준으로 보면, 1단에서는 50km/h, 2단에서는 85km/h, 3단에서는 130km/h, 4단에서는 175km/h, 5단에서는 210km/h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0-100km/h 가속시간은 8.5초이고 210km/h까지의 가속은 별 부담 없이 이루어진다. 200km/h까지의 가속이 지루하게 느껴졌던 투스카니 2.0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소 아쉬운 부분은 3,000rpm을 넘어서면서부터 실내에 울리는 엔진음과 부밍음이다. 스포츠 지향의 차라면 엔진음과 배기음의 조율을 통해 감성적인 자극을 이끌어내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겠으나, 시승차의 그것은 시끄럽고 신경 쓰이는 소음에 머무른 탓에 가속을 위해 회전수를 높이기가 부담스럽고 피곤하게 느껴졌다. 시동음도 투스카니보다 재미가 없어졌다. 3.8의 맛깔 나는 음색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시종일관 밋밋한 배기음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 미세한 차체 떨림을 동반한 구동계 소음과 변속기 손잡이를 통해 전달되는 진동도 마찬가지. 클러치페달의 조작감은 여느 승용차와 다름없다. 극히 가볍고 부드러운 순정클러치의 느낌 그대로이다. 다리를 뻗고 앉는 운전자세로 인해 스트로크가 조금은 더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문에 급하게 변속조작을 마치려 할 때는 부드럽지 못한 반응이 나오기도 하지만, 익숙해지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편해서 좋지만 일반 승용차랑 다를 바가 없어 실망스럽다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반면 오르간식 가속페달의 적용과 함께 오른편 공간에 발꿈치가 활보할 여유를 둠으로써 말 그대로의 ‘힐앤토(heel and toe)’ 구사가 용이해졌다는 점은 크게 환영할 만하다. 기어봉은 카탈로그에서 보던 것보다 작은 듯 느껴지지만 파지감은 그럭저럭 괜찮다. 예쁘장하게 생겨 되려 이질감이 느껴지는 자동변속기의 그것에 비하면 투박한 느낌이라 좋은데, 번쩍거리는 장식부분이 조금 신경 쓰이긴 한다. 다소 뻑뻑한 듯한 레버의 움직임은 짧은 스트로크와 절도감으로 스포츠 주행시 만족스러운 조작감을 준다.
자동변속기 차량을 타면서 살짝 우려했던 바와 같이, 수동변속기 차량에서는 기어조작 시 가운데 팔걸이가 거치적거리게 된다. 변속기가 종방향으로 가까운 편이라 팔이 직각에 가까운 절도 있는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팔걸이가 신경 쓰여 의식적으로 팔꿈치를 들고 변속하게 된다. 팔을 편하게 기댄 채 손목만 까딱까딱 움직여서 변속한다고 하는 어느 스포츠카의 자세와는 거리가 있다. 거치적거리기는 주차브레이크를 조작할 때도 마찬가지. 후진 기어는 1단보다 좀더 왼쪽으로 힘주어 밀면 들어간다고 하는 ‘하이 포스’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주차장에서처럼 앞뒤로 반복해서 움직여야 하는 경우 다른 방식에 비해 편하긴 하나 그만큼 헷갈리기도 한다. 후방센서가 달린 차라면 후진기어가 들어갔을 때의 센서 작동 경고음을 확인하고 움직이는 편이 좋겠다. 주행시의 외부소음 차단 면에서는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쓴 모습이다. 가령 문을 열고 닫을 때 창문이 조금씩 오르락 내리락 하는 ‘숏 드랍’ 기능도 갖추고 있다. 투스카니도 창틀이 없는 ‘프레임리스’ 도어를 채택하고 있었지만 창문 유리는 차체 쪽의 웨더스트립(창틀고무)에 밀착되는 것이 전부였다. 그 동안 수입스포츠카, 쿠페들에서만 볼 수 있었던 숏 드랍기능은 문이 닫혔을 때 창 유리를 홈에 맞게 끼워줌으로써 차의 밀폐성을 높여준다. 거의 유일하게 두드러진 것은 뒷바퀴 휠하우스의 잔돌 튀는 소리였지만, 특정 노면조건에 국한된 것이기 때문에 대수롭지는 않다.
19인치 휠을 끼운 이 급의 스포츠쿠페 치고는 승차감도 의외로 좋은 편이다. 긴 휠베이스도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지만 서스펜션 자체가 승차감과 성능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잘 찾아낸 모습이다. 단단한 가운데 부드러움이 갖는 융통성은 성능 면에서도 유효하게 작용한다. 코너의 진입과 탈출에 있어서는 기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었고, 200km/h를 넘나드는 고속주행에서도 딱히 불안한 감은 느낄 수 없었다. 고속으로 갈수록 더 달라붙어야 하고 스티어링 휠이 더욱더 무거워져야 한다고 굳이 말한다면 그 부분이 아쉬울 뿐, 일반 도로 시승에서는 좋다는 수입차들과 비교해도 흠잡을 곳을 찾기 어려웠다. 다만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타이어다. 제네시스 쿠페가 채택한 브리지스톤의 포텐자 RE050A는 고성능 차들에서 즐겨 쓰는 제품으로, 과연 명성에 걸 맞는 성능을 보여준다. 문제는 ‘여름용’ 타이어라는 것. 마른 노면, 따뜻한 노면에서는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하지만 습기를 머금은 저온의 노면은 ‘쥐약’과 다름없다. 물론 제네시스 쿠페는 후륜구동이기 때문에 이 점이 더욱 부각되는 것이다. 평범한 앞바퀴 굴림 차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기후조건이 이러한 차량들에게는 운행중지 메시지로 통하기도 한다.
시승 첫날은 겨울비가 조금 오다 그치는 정도였지만 시내 교차로를 천천히 돌아나가던 중에도 차의 뒷부분이 바깥쪽으로 핑그르르 돌곤 했다. 둘째 날은 다행히 노면이 말랐지만 해가 저물고 기온이 떨어지자 다시 섬찟한 상황들이 연출되었다. 육안으로 봤을 때는 아무 하자가 없어 보였던 장소들에서 조차. 십년감수했을 뿐,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 VDC가 개입해 옳지 않은 거동들을 바로잡아 준 덕분이었다. 기술적으로만 가능하다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개입해 이러한 상황들을 미연에 방지해 주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VDC는 만능 보험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앞바퀴 굴림차와는 다른 이러한 특성들은 그 동안 후륜구동 고성능 차에 목말라온 우리나라 젊은이들(혹은 심장이 멈추지 않은 이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고성능’이라는 부분은 어차피 튜닝을 통해 풀어야 할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시승차에 끼워진 19인치 휠은 ‘형 신발’을 신고 나온듯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시각적인 면에서는 사제 휠에 대한 욕구를 차단할 만큼 훌륭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기본형에 달리는 18인치 휠 역시 모양에서는 빠지지 않는데, 타이어의 단면폭은 앞 225, 뒤 245로 18인치와 19인치가 동일하며, 편평비만 45와 40으로 달리하고 있다. 앞뒤 타이어의 단면폭이 다른데도 편평비가 동일한 것은 특이사항이라 할 수 있다. 가령 G37쿠페는 앞쪽에 225/45R19, 뒤쪽에 245/40R19를 끼우고 있다. G37쿠페의 타이어 역시 브리지스톤 포텐자 RE050A이다.
휠 안쪽으로는 ‘순정캘리퍼에 도색과 스티커 부착으로 DIY’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감을풍기는 빨간색 브레이크 캘리퍼가 ‘브렘보(brembo)’ 로고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앞 340mm, 뒤 330mm 디스크와 알루미늄 합금 모노블록에 4륜 모두 4피스톤을 채용하고 있는 고성능 시스템이다. 고속으로부터 완전 정지까지의 급제동을 수 차례 반복해도 페이드를 일으키지 않았으며, 제동시의 밸런스 역시 뛰어났다. 코너 탈출 시 효과를 발휘하는 LSD도 그렇지만, 현대가 만드는 스포츠 쿠페에서 순정사양으로 만나볼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품목들이다. 제네시스 쿠페 2.0 수동모델의 공인연비는 11.0km/L이다. 투스카니 2.0 5단이 11.6km/L,, 6단이 12.5km/L, 2.7이 9.8km/L였던 것과 비교하면 그리 나쁘지 않다. 참고로, 시승차는 430km를 달린 뒤 주유 경고등이 켜졌다.
스쿠프-티뷰론-투스카니의 계보를 잇는 차로서의 제네시스 쿠페는 처음으로 후륜구동 플랫폼을 적용해 새로운 차원에 들어섰을 뿐 아니라 전체적인 완성도와 고급스러움 면에서도 격을 달리하고 있다. 그만큼 가격도 비싸다. 수동변속기를 탑재한 2.0 기본형 ‘Turbo D’의 가격은 2,320만원이고, 2.0 최고급사양인 ‘Turbo R’에 선루프를 더한 시승차의 가격은 3천 만원에 육박한다. 투스카니는 2.0 풀옵션이 2천 만원 내외, 2.7 엘리사가 2,500만원 정도였다. 물론 이러한 가격차이는 잘 갖춰진 기본사양과 2.7을 뛰어넘는 수치상의 힘,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가격에 후륜구동 스포츠카의 패키지를 제공할 수 있는 경쟁모델이 사실상 없다는 사실로 합리화된다. 다만 절대가격이 높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투스카니 2.0의 기본사양, 즉 ‘깡통차’라 불렸던 GL모델은 천만 원대 초반의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사회초년생 등 젊은 층이 바라보기에는 월등히 부담스러운 가격대를 형성한 것이 사실이다. 분명 제네시스 쿠페는 그보다 윗급으로, 경제적인 여유를 갖춘 이들을 겨냥한 차다. 이 때문에 투스카니의 실질적인 대체모델을 2009년 출시되는 포르테 쿠페로 보는 시각도 있다.
현대 제네시스 쿠페는 순수 스포츠카를 지향한 차가 아니라는 사실만 인정하면, 그리고 ‘제네시스’라는 이름에 사로잡히지만 않으면 그리 흠잡을 곳이 없는, 썩 훌륭한 차로 생각된다. 스쿠프 이후 18년. 차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안 만들면 그만이었건만 현대자동차는 어떻게든 스포츠 쿠페의 계보를 이어나갔고, 결국 보란 듯이 그 결실을 맺었다. 제네시스와 제네시스 쿠페는 향후 한국의 자동차 역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의미 있는 차들이다. 이 정도면 국내 자동차업계의 맏형 격인 현대자동차가 선사한 선물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경제난국이라는 절묘한 타이밍에...▶ [rpm9] 현대 제네시스 쿠페 200터보 시승사진 고화질 갤러리▶ [rpm9] 현대 제네시스 쿠페 월페이퍼 갤러리▶ [rpm9] Z의 수퍼 에볼루션, 닛산 370Z▶ [rpm9] www.rpm9.com

최신포토뉴스

위방향 화살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