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대 M클래스가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내 외관 디자인과 사양에서 약간의 변화를 거쳤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시승은 M클래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뉴 제너레이션 M클래스는 경쟁모델보다 더욱 고급스러운 내 외장이 돋보인다. 도심형 SUV를 표방하지만 험로에 들어설 때를 위한 준비도 나름 갖추었다. V6 디젤 엔진은 4기통 디젤들과는 차원이 다른 정숙성과 넉넉한 힘을 제공한다. 글/사진 : 박기돈 (RPM9 편집장)
미국 시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M 클래스가 BMW의 X5보다 더 많이 팔리게 되었다는 뉴스를 최근에 와서야 접하게 되었다. 데뷔와 함께 부동의 선두를 지키며 SUV 역사를 새로 쓴 X5를 M클래스가 앞섰다는 사실은 놀라운 뉴스가 아닐 수 없다. 2세대로 바뀌면서 몰라보게 높아진 M클래스의 위상이 선대의 그늘에 가려진 듯해 아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그 가치를 높게 평가 받고 있다니 반갑기도 하다. 물론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인한 특별한 경우일 수도 있겠지만 필자가 만난 뉴 제너레이션 M클래스는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M 클래스는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들로 하여금 SUV 시장에 뛰어들게 만든 장본인이다. 일찍부터 G바겐을 통해 독보적인 럭셔리 SUV의 위상을 지켜가고 있던 메르세데스-벤츠가 보다 보편화될 수 있는 양산형 프리미엄 SUV를 기획하였고, 미국산 대형 트럭들과는 차별화된 부드러운 디자인의 컨셉트카를 먼저 선보였다. 이 컨셉트카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에 등장하면서 공룡 배우들과 함께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뜨거운 반응을 등에 업고 양산형 M클래스는 미국의 앨라배마 공장에서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이처럼 초기 다양한 미디어들을 통해서 큰 관심을 끌었지만 뒤이어 등장한 BMW X5의 폭풍에 M클래스는 맥을 추지 못했다.
M클래스는 도심형 SUV의 스타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험로 주파를 감안해 프레임바디를 선택한 반면, X5는 모노코크 바디의 확실한 도심형 SUV로, 스포츠카에 버금가는 달리기 실력을 뽐내면서 스포츠 액티비티 비클(SAV)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당시 BMW는 세계 최고의 오프로드 자동차 브랜드인 랜드로버를 인수했지만 그 기술을 바탕으로 완전한 도심형 SUV를 개발하였는데 이러한 BMW의 선택과 집중이 주효했던 것이다. 이후 폭스바겐, 아우디, 포르쉐까지 그 시장에 가세하였고, 아우디를 제외한 브랜드들은 모두 2세대 모델을 선보였으며, 아우디는 최근 Q7의 페이스리프트를 단행했다. 뿐만 아니라 초기 선보였던 중형급의 SUV외에 컴팩트 SUV로까지 라인업이 확대되어 그야말로 프리미엄 SUV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모든 이야기들을 다 할 수는 없고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비교의 대상이 되는 X5와 M클래스의 변화를 다시 살펴보면, X5는 2세대로 넘어오면서 커지고 부드러워져서 파워풀한 달리기 보다는 (물론 여전히 잘 달리긴 하지만) 안락함과 여유를 강조한 SUV로 진화했다. M클래스도 2세대로 넘어오면서는 모노코크 바디를 채택하였고, 온로드 주행 성능을 보강하면서 더욱 럭셔리한 이미지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결과적으로 X5는 넉넉한 가족형 SUV, M클래스는 고급스러운 퍼스널 SUV의 이미지가 강해졌다.
2세대 M클래스는 여전히 미국에서 생산되지만 단단하고 고급스러운 독일차 특유의 감성이 물씬 풍긴다. 그리고 이번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큰 변화는 아니지만 고급스러운 이미지 개선에 더욱 집중했다. 그래서 일부 선택 사양을 표준사양으로 높이고, 작은 터치로 강인한 이미지를 완성했다. 시승차는 ML280 CDI로 가장 볼륨이 큰 모델이다. 페이스리프트 되기 전 시승한 ML280 CDI 에디션 10과 비교해 큰 변화를 발견하기 어렵다. 단지 첫 눈에 뉴 제너레이션인지 아닌지를 구분시켜 줄 기준으로 헤드램프의 변화가 눈에 띈다. 안쪽 하단 부분을 아래로 한 계단 내려 존재감을 높였다.
그 외에는 라디에이터 그릴의 격자가 커지면서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고 형상이 살짝 바뀐 범퍼 아래에는 보다 윤곽이 뚜렷한 알루미늄 언더 가드를 달아 강한 느낌의 스타일에 오프로드 이미지를 더했다.
살짝 커진 사이드 미러는 방향 지시등을 감싸는 알루미늄 장식을 덧댔고, 알로이 휠도 기본 컨셉은 같지만 스포크 처리가조금 바뀌었다. 뒷 범퍼에는 반사경을 추가하고 범퍼아래 디퓨저 타입의 알루미늄 언더 가드를 더했고, 머플러 형상도바꾸었다. 이 정도면 눈에 확 띄는가? 사실 설명해 줘도 직접 두 대를 놓고 보지 않으면 차이를 알아보기 어렵다. 그냥 헤드램프 아래쪽이 계단형상으로 바뀐 것만 기억해도 될 듯하다.
실내에서는 가죽으로 덮고 박음질 자국을 강조한 데시보드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는 동급에서 흔치 않은 것으로 인테리어를 고급스럽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라 할 만하다.
스티어링 휠의 아래쪽 두 개의 스포크에 알루미늄 장식이 보다 고급스러운 새로운 디자인으로 변했고, 시프트 패들이 기본으로 장착되었다. 원통형의 계기판은 모양은 그대로인데 가운데 알루미늄 패널이 일반 블랙 패널로 바뀌었다. 여전히 클래식하고 고급스럽다.
센터페시아 가운데 모니터는 이전에는 현대 폰투스 제품이 적용되어 있었는데 뉴 제너레이션에는 자체 모니터에 한글화된 프로그램을 적용해 편의성을 높였다.
가죽시트도 디자인이 살짝 바뀌었고 시트 메모리 기능이 기본으로 제공되며 전동 요추 받침도 마련되었다.
뒷좌석은 등받이 각도 조절이 안 되는 것과 트렁크에 큰 짐을 싣기 위해 등받이를 눕힐 때 방석 부분을 먼저 세우고 등받이를 눕혀야 하는 번거로움은 여전히 아쉽다. 면면이 워낙 디테일한 터치의 변화인지라 크게 와 닿지는 않는데, 그 중에서 패들 시프트와 가죽으로 덮은 데시보드 적용이 무척 반갑다. 2세대로 진화할 때부터 계속 느끼는 것이지만 M클래스는 야생을 자극하는 강인함과 함께 격식도 저버리지 않는 캐주얼 세미 정장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것도 아이템 하나하나가 결코 가볍지 않은 명품이미지에 세련되게 코디네이션 된 패션니스타의 느낌이다.
파워 트레인에는 변화가 없다. 모델명은 ML280 CDI이지만 엔진은 V6 3.0 커먼레일 디젤 엔진이 장착된다. 배기량 2,987cc, 최고출력 190마력/4,000rpm, 최대토크 44.9kg.m/1,400~2,800rpm을 발휘한다. 최신 디젤엔진들이 3리터 급으로 200마력을 훌쩍 넘는 출력을 발휘하는 것을 감안하면 출력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토크는 동급 엔진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0~100km/h 가속에는 9.8초가 걸려 충분히 잘 달리고, 최고속도는 205km/h에 이른다. 연비는 9.3km/L다. ML280 CDI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정숙성이다. 스티어링 휠과 시트에서 전혀 진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시동을 걸어도, 주행을 하고 있어도, 심지어는 D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서 있어도 소음과 진동을 찾아 볼 수 없다. 놀라운 수준이다. E220 CDI, C220 CDI 등 승용 라인에서 만나 보았던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젤 엔진들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승용 디젤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이지만 그 동안 디젤 엔진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시끄럽고 진동도 꽤 있다고 여겨져 왔었는데 ML280 CDI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였다. 그런데 S320 CDI도 놀랍게 정숙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4기통 디젤 엔진과 6기통 디젤 엔진의 차이가 분명히 크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ML280 CDI는 프리미엄 SUV가 가져야 할 정숙성 면에서 디젤 엔진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달리기의 성격은 폭발적인 파워 보다는 여유와 꾸준함이다. 거의 모든 메르세대스-벤츠 자동차들이 그렇듯이 ML280 CDI도 엑셀의 응답성에서 반 박자 정도의 여유를 요구한다. 하지만 지긋이 엑셀을 밟아 주면 밀려오는, 넘치는 토크와 꾸준한 파워로 충분히 강력한 달리기를 즐길 수 있다. 190마력이라는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출력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티어링 칼럼에 달린 변속 레버도 이제는 충분히 익숙해져 상당히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레버를 들어준다든가 버튼을 누른다든가 하는 예비동작 없이, 위로든 아래로든 그냥 끝까지 밀어 주기만 하면 전진과 후진으로 변환이 되므로 오작동의 염려도 거의 없다. 덕분에 센터 터널 쪽에 만들어진 공간의 여유도 은근히 활용도가 높다. 스티어링 휠에 장착된 시프트 패들을 이용해 보다 적극적인 주행을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디젤 엔진들이 회전수가 그리 높지 않아 시프트 패들을 사용하는 효과가 가솔린 엔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긴 하다. 차라리 아우디와 폭스바겐 모델에 있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한 두 단 아래의 기어를 선택해 항상 보다 높은 회전수로 주행하는 스포츠 모드가 실제적으로 더 역동적인 달리기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ML280 CDI는 별도의 스포츠 모드가 없고 시프트 패들을 이용해 변속하면 수동모드가 되었다가 오른쪽 패들을 당기고 있으면 다시 D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7G 트로닉 자동변속기와 조합된 ML280 CDI는 35, 55, 85, 120, 170km/h에서 변속이 이루어진다. 기어의 단 수는 많고 엔진의 최고 회전수는 높지 않아 변속은 상당히 짧은 간격으로 자주 이루어진다. 하지만 일상적인 주행에서 운전자가 모르는 사이에 여러 번의 변속이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잦은 변속을 신경 쓸 일은 전혀 없다. 하체는 은근히 단단함이 느껴진다. 시내 주행에서 작은 요철을 지날 때 전해지는 반동이 상당히 신선하다. 이런 탄력 있는 하체의 거동은 날카로운 선이 많이 사용된 내 외장 디자인과 어울려 M클래스의 단단함으로 비쳐진다. 중 고속으로 장거리를 순항할 때뿐 아니라 200km/h를 육박하는 고속으로 달릴 때 역시 메르세데스 특유의 탁월한 안정감이 빛을 발한다. 기대 이상의 탄탄한 하체에 힘입어 와인딩을 달려 보았다. 전체적으로 뉴트럴에 가까운 조향 성능을 보이고, 약하게 언더스티어가 발생할 때면 ESP가 재빠르게 개입해 운전자가 상황의 변화를 미처 인식하지 못할 순간에 이미 자세를 제어하고 있다. 그리고 코너를 빠져 나오면서 재 가속할 때 반응이 민첩하지 않고 재 가속하는 힘도 폭발적이진 않아서 ML280 CDI로는 와인딩을 달리는 재미를 맛보긴 힘들었다. SUV로 무슨 와인딩이냐고 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고성능 SUV는 은근 와인딩 달리는 맛도 남다르기 때문에 비록 SUV라 하더라도 주행 특성도 파악할 겸 와인딩을 달려 보게 된다.
M클래스에는 오프로드를 위하여 내리막 정속 주행 장치와 오프로드 전용 장비를 갖추고 있다. 험로에 들어가기 전 차고를 높여주는 에어 서스펜션과 전자 제어 감쇠력 조절 장치는 ML280 CDI에는 빠져 있다. 차고 조절이 된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험로에 들어가 볼 수 있겠지만 ML280 CDI는 부득이한 상황에서 만나게 되는 오프로드에 적절히 대응하는 수준에서 오프로드 주행 능력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뉴 제너레이션 ML280 CDI에는 위기 상황을 보다 일찍 감지해 미리 최적의 조치를 취해주는 프리세이프티(PRE-SAFE?) 시스템과 후방 충돌 시 머리와 목뼈 부상을 막아주는 넥프로(NECK-PRO) 헤드레스트레인트가 기본사양으로 적용되었다. 뉴 제너레이션 ML280 CDI는 눈에 띄는 큰 변화는 없지만 알찬 내외장의 변화들로 더욱 고급스러워졌다. 태생적으로 미국 시장을 위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SUV이지만 M클래스는 의외로 독일차다운 강인함과, 메르세데스-벤츠 다운 고급스러움을 잘 간직하고 있다. 명품 캐주얼 정장과 잘 어울리는 SUV가 바로 ML280 CDI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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