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의 신형SRX는 꼼꼼함과 섬세함 면에서 미국차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신형 CTS에서도 그 가능성을 읽을 수 있었지만 SRX는 글로벌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최신 미국차의 경쟁력을 확인시켜준다.
글/ 민병권 (www.rpm9.com 에디터)
사진 / 박기돈 (www.rpm9.com 편집장), 민병권
2004년 국내에 첫 선을 보인 캐딜락SRX는 왜건의 덩치를 SUV만하게 키워놓은 듯한 7인승 크로스오버 모델이었다. 당시의 CTS를 빼 닮은 직선 위주의 디자인과 보기 드문 패키징, 첨단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 기술 등이 눈길을 끌었지만 차량성격 대비 큰 덩치와 가솔린 엔진(3.6 V6, 4.6 V8)뿐인 라인업, 만만치 않은 가격은 우리나라 시장에서 환영 받기 어려운 요소로 작용했다. 길에서 보기 힘든-레어-차량이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신형 SRX는 이름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차다. 2009년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데뷔, 여름부터 미국시판에 들어간 새 SRX는 11월에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뒷바퀴 굴림 기본의 ‘시그마’ 플랫폼을 CTS와 공유했던 구형모델에 비해 신형은 뼈대부터 다른 앞바퀴 굴림. GM대우의 윈스톰 등에 사용된 GM의 ‘쎄타’ 플랫폼을 캐딜락, 사브 등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활용하기 위한 개량했단다. 막상 시승을 해보면 휠베이스를 비롯한 전반적인 차체크기부터 SRX쪽이 한두 치수씩 크고 차격도 확실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딱히 윈스톰과 연관된 느낌은 받을 수 없다. (다행이다.)
얼핏 작아 보이는 신형SRX의 차체크기는 GM코리아가 경쟁 모델 중 하나로 지목한 렉서스 RX350보다 길이,너비,휠베이스가 크다.
SRX: 4850/1910/1665/WB2807(mm)
RX350: 4770/1865/1685/WB2740(mm)
어쨌든, 이전의 SRX비해 확연히 줄어든 차체크기는 우리나라 도로에 한결 잘 어울리는 모습이고, 2002년의 초대 CTS로부터 발전시켜온 캐딜락의 ‘아트 앤 사이언스’디자인도 옹골찬 느낌으로 빛을 발한다. 꺽다리 왜건이 아닌 SUV의 형태를 취한 것도 우리 시장에 보편적으로 다가가기에는 유리한 조건이다.
지금 팔리고 있는 2세대 CTS만 해도 일부 디테일에서는 ‘손 큰이들’이 만들었음을 단박에 느낄 수 있지만, 새 SRX는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치밀하게 계산되고 다듬어진 모습을 보인다. 커다란 수직형의 헤드램프 때문에 얼큰이가 된 머리부분만 아니라면 독일에서 만들어온 차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조금은 다른 얘기지만 뉘르부르크링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도로에서 개발 테스트를 진행한 것은 사실이다.) 윗부분이 뒤로 말린 헤드램프는 현행 모델이 아닌 초대 CTS의 것을 닮은 것 같다. 2세대 CTS의 기계메뚜기 같은 얼굴이 순화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살짝 옆에서 살피면 얼굴은 아래로 갈수록 돌출형. 덕분에,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인상이 된다. 안쪽으로 접힌 이중턱인지, 턱받침인지, 목살인지가 이를 부추기는데, 삐죽 튀어나온 범퍼 아래 그늘에 가려진 이 부분은 SRX가 흙먼지 날리는 야외활동에 맞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프로드는커녕 주차블록에도 걸릴 만큼 낮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약간의 여유가 있다. 또, 가장 밑단은 연질 고무로 되어있기 때문에 설사 어디 부딪치더라도 깨지는 소리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제원상 최저지상고는 179mm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 부피감에 흠칫 놀라게 되는 보닛은 운전석에 앉았을 때도 앞을 가늠하기 어렵게 한다. 눈으로 보고 판단한 것 보다 한참을 더 앞으로 나가야 전방주차센서가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한다. 감이 잘 잡히지 않기로 말하자면 주차할 때 사이드미러에 비치는 후방시야도 마찬가지. 빠듯한 주차 공간이라면 보기보다 넓은 차폭도 감안해야 한다.
운전석 사이드미러는 바깥쪽이 사각지대 확인용으로 처리되어 있다. 사이드 리피터는 사이드미러가 아닌 앞휀더 뒤쪽의 크롬 에어벤트 장식부분에 넣었는데, 굳이 언급하자면 윈스톰맥스와 같은 자리다. 이곳에서는 CTS와 마찬가지로 GM마크를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휠 하우스를 관통한 앞 범퍼 파팅라인의 연장선상에 위치하는 에어벤트 상단의 캐릭터라인은 앞,뒷문 손잡이를 꿰고 테일램프까지 이어진다. 뒤로 가면서 실제 지붕선보다 가파르게 떨어지는 윈도우 라인은 ‘쿠페라이크’한 착시를 만들기 위한 요소. 차체 일체형의 리어스포일러와 함께 좁아진 유리면적은 차체를 더욱 단단해 보이도록 한다. 시승차는 회색이라 그런지 독일군 철모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측면의 어깨선에서 곧장 이어져 테일게이트보다 더 뒤로 돌출된 테일램프는 캐딜락 특유의 수직 테일핀을 현대적으로 재현했다. 투명한 램프 커버 안쪽으로 입체감 있게 배열된 LED 튜브와 빨간 플라스틱의 굴곡들이 특이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뒤에서 보면 세로로 배치된 튜브가 미등이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그 양 옆으로 6개의 쌍을 이룬 LED들이 불을 밝힌다.
LED들은 뒤차운전자의 눈을 노리고 정면으로 빛을 쏘는 것이 아니라 반사렌즈를 통해 빛을 확산시키는 구조로 옆을 보도록 배치되었다. 깜빡이로는 일반전구를 썼다. 그 아래가 후진등인데,한쪽만 들어온다고 누가 알려주는 걸 보니 나머지 한쪽은 후방 안개등인 모양이다.
시동키는 CTS와 같으나, 세단 대신 해치백(?)으로 그려진 트렁크 버튼만 다르다. 도어록 작동이나 시동을 위해 꺼낼 필요가 없는 스마트키. 문을 열 때는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잠김이 해제되고, 잠글 때는 손잡이의 엄지부분을 터치하면 된다. CTS는 두툼한 손잡이를 돌려야 시동이 걸렸지만 SRX는 대시보드의 원형 버튼을 누르면 된다. 형상이 다르긴 하지만 버튼에 배치된 LED가 라세티 프리미어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CTS처럼 원격시동도 가능하다. 2008년의 CTS시승 때는 차에 가까이 가야 원격(근접?)시동이 가능했는데, 이번 SRX는 꽤 멀리서도 작동했다. 90미터가 기본 범위란다. 차 안이 아주 뜨겁거나 차가울 때 이 기능을 이용하면 실내온도가 적정수준으로 바뀐 뒤 차에 오를 수 있어 유용하다.
열선시트를 켜놓은 상태에서 시동을 끄더라도 원격 시동 때는 열선이 꺼진 상태가 되길래 그런가 보다 했더니만, 나중에 보니 이런 사소한 부분도 원하는 대로 설정이 가능했다. 버튼을 눌러야만 작동하나 싶었던 사이드미러 폴딩도 도어록과 연동되도록 설정할 수 있었다. 이런 차들은 어떤 기능이 없다거나 불편하다고 쓰기가 조심스럽다. 후진 때 사이드미러 하향연동기능이 없는 점이 아쉬웠는데, 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설정을 꺼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SRX가 주목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기능 설정 과정 모두를 한글화했다는 점이다. 차량설정,오디오, 공조장치, 내비게이션 화면은 물론 계기판의 액정까지 모두 한글을 표시해준다. 뿐만 아니라 수입차 최초로 우리말 음성명령을 인식한다. “한뚝배기 하실래예?”하는 요즘의 인기광고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러한 기능들은 GM본사에서 개발을 지원해야 적용 가능한 부분이고, 우리나라의 시장 규모-캐딜락 브랜드의 판매대수-를 생각하면 파격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버튼들은 왜 한글이 아니냐고 묻지는 말자.)
시원시원한 각종 디스플레이들도 눈길을 끈다. 세 개의 원형으로 배치된 계기판은 중앙 가운데에 2.5인치 액정을 두었는데, 큼지막한 화면에 한글을 또박또박 보여주며 풀컬러를 지원하기 때문에 세련된 느낌을 준다. 다섯 개의 광선검과 합동으로 펼치는 웰컴 세레모니나 화면전환시의 애니메이션도 수준급이고, 와이퍼, 헤드램프의 작동여부를 알려주는 등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한 안내가 인상적이다.
깜빡이를 켜면 통상적인 계기판의 경고등 외에 운전자를 향해 뾰족하게 튀어나온 투명 플라스틱 부분도 연두색으로 점멸한다. 동승자A의 표현을 빌자면 영화 『수퍼맨』에 나오는 크립토나이트에서 영감을 얻었을 법한 부분이다.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계기판 하우징의 구성도 고급스럽다. 천연가죽으로 전체를 감싼 대시보드나, 센터페시아와 송풍구를 마감한 메탈장식의 질감, 적재적소에 배치된 사펠리 우드트림 등은 CTS로부터 다시 한번 진일보한 감성품질과 디자인 완성도를 보여준다. CTS와 공유한 것으로 보이는 스티어링휠이나 변속레버 등 일부 부품은 이 차가 CTS의 크로스오버 버전인 것 같은 착각이 들게도 한다.
럭셔리 브랜드답게 각종 조명도 꼼꼼하게 챙겼다. 대시보드에서 도어트림까지 이어지는 틈새에서는 하얀 빛의 무드 조명이 새어 나오고 헤드콘솔에서는 스팟조명을 비춰준다. 발공간 조명은 문이 열렸을 때와 닫혔을 때의 밝기를 구분했고 뒷좌석 발 공간에도 은은한 조명이 켜진다. 크롬도금으로 양각된 듯 보이는 도어스커프의 캐딜락 로고는 야간에 하얀 조명으로 자체 발광하는 듯한 효과를 냈다.
대시보드 중앙상단에 자리잡은 8인치 터치스크린 모니터는 CTS(3.6)처럼 전동으로 오르내린다. 작동이 부드럽고 화면은 시원시원하다. 아래로 격납된 상태에서도 가려진 액정 사이즈에 최적화된 화면을 보여주는 것이 CTS때부터의 특징이다. 내비게이션 자체의 편의성은 애프터마켓용 국산 제품에 비해 떨어지지만 ‘수입후 장착’이 아니라 본사에서 적용한 시스템인 만큼 차량의 다른 기능들과 연계한 성능은 비교할 수 없이 좋다. GPS뿐 아니라 G센서 등 여러 센서들을 활용하기 때문에 터널이나 고가도로 밑처럼 위성신호를 잡을 수 없는 곳에서도 위치와 방향을 포착해내는 장점도 있다.
AV는 보스 5.1서라운드 시스템으로 DVD타이틀의 돌비디지털, DTS감상이 가능하다. USB, AUX, 아이팟 등 외부기기 단자와 블루투스 핸즈프리를 지원하고 음악은 하드디스크에 저장할 수 있다. MP3 파일정보의 한글표기는 물론 영미권 CD의 음반정보를 DB에서 찾아 표시해주는 ‘그레이스노트’도 갖추었다. 라디오는 타임시프트(타임머신) 기능을 제공한다.
사양은 딱히 부족한 부분이 없다. 오토헤드램프와 오토와이퍼가 있고 룸미러는 물론 사이드미러도 눈부심방지 기능을 제공한다. 헤드램프는 HID이고 조향방향에 따라 조사각이 바뀌는 AFL기능을 제공한다. 요즘 유행하는 LED 주간주행등에 혹한 이라면 일반전구로 켜지는 주간등이 살짝 불만일수는 있겠다. TPMS는 각 바퀴의 공기압 수치를 계기판에 표시해주고, 주차브레이크는 전동식이라 손가락만 까딱하면 된다. 경사로 밀림방지 기능도 갖추었다.
유리창은 1열이 원터치 상/하향, 2열이 원터치 하향 기능을 가졌다. 도어록은 변속레버를 D에 놓으면 잠기고 P에 놓으면 풀린다. 길가에 잠깐 멈춰서 누굴 태운다면 변속기를D에 둔 채로 브레이크만 밟고 있기가 쉽지만SRX는 이런 때도 레버를 P에옮기도록 하는 습관을 길러준다. 물론 센터페시아에도 도어록 버튼이 있긴 하지만 서둘러 조작하기에는 레버가 만만하다. 아이를 잠글 수 있는 ‘차일드록’ 버튼도 센터페시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수납공간은 도어포켓도 2층, 글로브박스도 2층, 컵홀더도 2층, 센터콘솔도 2층 구조로 되어있다. 글로브박스 하단은 냉장기능을 제공하는데, 1.8리터 + 0.75리터 PET병의 수납이 가능하다. GM코리아의 표현을 빌자면 ‘망원렌즈를 장착한 SLR카메라까지 넣을 수 있는’ 널찍한 센터콘솔 하단 수납공간에는 USB와 AUX, 전원잭이 있고, 센터페시아 하단의 서랍에도 전원잭이 하나 더 있다.
사양과 감성품질 부분에서 거의 유일하게 지적할만한 부분은 스티어링 컬럼의 조절기능이었다. 예상과 달리 수동조절식인 것은 그렇다 쳐도 조절할 때 덜거덕거려서다. 그런데, 컬럼 오른쪽에 마치 전동 조절장치처럼 생긴 레버가 있었다. 뭔가 했더니 페달의 깊이 조절 기능이다. 올레!
이와 함께 시트도 위/아래,앞/뒤로 조절 폭이 넓어 어지간한 체형의 운전자는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 듯 하다. 운전석은 허벅지 받침의 수동조절기능이 있는데 필자는 하체가 짧은 탓에 굳이 잡아 뺄 필요는 없었다. 운전석에는 메모리와 이지 엑시트 기능이 제공되고 동반석까지 8웨이 전동조절+요추 받침 전동조절기능을 가졌다. 1열 시트에는 열선과 통풍, 2열시트는 열선기능이 있다.
뒷좌석은 꽤나 넓다. 쉽게 생각해서 윈스톰보다 10cm가 늘어난 휠베이스의 잇점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보면 되는데, 체감공간은 그보다 더하다. 앉았을 때 껑충한 자세가 아닌데도 다리공간을 넉넉하게 뽑아냈으니 말이다. 바닥 가운데도 평편하다. 다만 센터콘솔이 뒤로 튀어나온 편이라 타기 전에는 실제보다 좁게 보일 수 있다. 머리공간은 스포티하게 내려가는 지붕선 때문에 제약을 받지만 머리가 닿는 정도는 아니고, 필요하다면 등받이 각도를 조절해 타협을 볼 수 있다. 후방 센터콘솔에는 뒷좌석 공간의 온도조절이 가능한 에어컨 조작부, 송풍구와 AV장치를 위한 액정, 입출력단자, 전원소켓, 그리고 하단 서랍이 있다.
뒷좌석용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동급 경쟁모델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양으로, 1열 시트의 헤드레스트가 아닌 등받이에 접이식 8인치 화면을 달았다. 미디어 재생장치는 앞좌석과 뒷좌석 좌/우가 각기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각자 원하는 소스를 즐길수 있다.
무선헤드폰과 (가정용인 것 같은 큰 사이즈의)리모컨이 수납되는 가운데 팔걸이는 보기보다 낮지 않고, 스키스루 기능도 마련되어 있다. 등받이는 헤드레스트를 분리하거나 앞좌석을 앞으로 밀 필요 없이 간편히 접을 수 있다. 방석부분이 앞으로 살짝 내려앉으면서 접히는 데, 견고하게 고정까지 되는 모습이 미국차 답지 않게 느껴진다.
테일게이트는 전동으로 여닫힌다. 버튼만 눌러주면 부드럽게 작동하고, 운전석에서도 열고 닫는 조작이 모두 가능하다. 천장이 낮은 주차장에서는 운전석 도어의 다이얼을 이용해서 열리는 각도를 제한할 수 있다. 적재함 커버는 펼쳐진 상태에서 위쪽으로 젖혀놓을 수 있도록 기둥에 홈을 파두어 조작이 편리하다.
트렁크 바닥에는 적재공간 활용을 위한 레일이 깔려있는데 흔히 보던 11자형 아니라 U자형으로 생긴 것이 특이하다. U레일패스…아니, U레일 펜스 시스템이다. 레일바이크 마냥 철길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는 고정고리들을 원하는 위치에 견고하게 고정시킬 수 있다. 이 시스템을 더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려면 추가 액세서리 구입이 필수이니 지름신을 영접하시라. 적재용량은 등받이를 세웠을 때 827리터이고 접으면 1723리터까지 늘어난다.
U레일 안쪽의 바닥판 아래로는 스페어타이어와 함께 약간의 수납공간이 존재하는데, 바닥판이나 지지대를 지나칠 정도로 신경 써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스페어타이어를 들어내고라도 수납공간으로 열심히 활용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유난히 간결해 보이는 엔진룸에는 3.0리터 V6 가솔린 직분사엔진이 들어있다. CTS 3.0의 것과 같으나 성능수치는 조금 더 낮다. 최고출력은 6950rpm에서 265마력이고 최대토크는 5100rpm에서 30.0kgm. 모태가 된 3.6리터 버전과 마찬가지로 고회전을 즐긴다. 미국에서는 이 위로 300마력짜리 2.8리터 터보 엔진도 마련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 엔진뿐.
변속기는 하이드라매틱으로 불리는 GM의 6단 자동변속기이고,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AWD)을 탑재하고 있다. 미국시장에서 볼 수 있는 앞바퀴 굴림의 기본형과 구분하기 위해 테일게이트에는 ‘SRX4’라고 적혀있다.
스포츠모드에서 힘껏 밟으니 65, 105, 155, 190km/h에서 시프트업이 이루어지면서 속도를 더해간다. 처음에는 7천rpm을 찍고 내려오지만 단수가 높아질수록 변속되는 시점의 회전수도 낮아진다. 계기판을 확인하지 않으면 가속이 더디게 느껴질 수 있다. 정숙성이 뛰어나고 고속안정성도 높아서다. 1열 측면 창에 이중접합유리를 적용하는 등 여러 수단을 통해 주행소음을 잘 걸러냈다.
하체 느낌도, 예상외로 부드러웠던 CTS에 비하면 차라리 단단한 편이다. 롤 센터가 높은 것은 어쩔 수 없을 테지만 스포츠세단을 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자주 있었다. 그러면서도 과속방지턱은 부드럽게 잘 넘는다. SRX에 달린 리얼 타임 댐핑 스포츠 서스펜션은 0.002초 단위로 흡수력을 조절한다. 도로 이음메나 작은 요철을 통과할 때는 충격음이 전달되지만 경쟁모델들에 비해 딱히 뒤지는 것은 아니다. ZF의 서보트로닉을 채용한 조향장치는 저속, 고속에서의 조작력이 무난하고 변화가 자연스럽다.
차의 용도를 생각할 때 3.6, 혹은 터보 엔진이 아니라서 아쉽다고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가속페달을 살짝만 깊게 밟아도 금새 7천rpm을 찍으면서 고운 소프라노의 소리를 내는 엔진은 심히 자극적이다. 더 적극적으로 달리고 싶게 만든다. 덩달아 변속패들의 부재가 아쉬워진다. 차의 전반적인 정숙성에 비해 엔진은 존재를 내세우는 편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앙칼진 소리는 음량 면에서 시끄럽다고 할 수 없지만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것이다. 공회전 중에는 뒷좌석에서도 진동이 느껴지는데, 뒷좌석의 동승자B는 배기음이 듣기 좋다고 했다.
엔진이 주는 만족감에 비해 변속기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스포츠모드가 아닌 일반주행(D)에서도 시프트다운을 너무 좋아한다. 현재의 단수로 그저 조금 더 앞으로 나가고 싶을 뿐인데도 변속기는 가속페달 입력을 확대 해석한다. 기어가 내려가면서 솟구치는 엔진음이 듣기 좋고 반응도 부드럽지만, 스킵시프트가 아니라 시차를 둬가며 한단 한단 기어를 내린 뒤 그제서야 속도를 더하는 모습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예민한 반응은 스포츠모드의 몫으로 남겨두었으면 좋았겠다.
변속레버를 D에서 왼쪽으로 밀면 스포츠모드, 그 상태에서 위아래로 조작하면 수동모드가 된다. 스포츠모드일 때는 계기판의 총주행거리 밑에 작게 ‘SPORT’라고 표시되는데, 무조건 기어부터 낮추고 고회전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가속페달 입력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대응을 하기 때문에 얌전한 주행에서는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수동모드에서는 계기판의 표시가 확실하다. 수동모드에서도 킥 다운은 되지만 자동 시프트 업은 되지 않는다. 회전수가 한계에 이르면 ‘RPM높음’이라는 계기판의 한글경고와 함께 운전자의 처분을 기다린다. 우직하게 퉁퉁거리는 변속레버의 조작감은 CTS의 것 그대로이다.
브레이크는 페달의 반력이 다소 강해서 처음에는 밀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제동력 자체에는 무리가 없다. 마침 눈이 많이 내렸길래 눈길에서도 몇 차례 급제동 테스트를 해봤는데 중심이 틀어지거나 불안해지는 일 없이 잘 멈춰 섰다. AWD역시 제 성능을 발휘해냈다. SRX의 AWD에는 4륜 잠금 장치가 없지만 최신의 할덱스 시스템을 채용해 다양한 장점을 발휘한다.
기본적으로는 앞바퀴 굴림이지만 필요에 따라 최대 100%의 구동력을 뒷바퀴로 몰아줄 수 있고, 일반 AWD와 달리 앞바퀴의 슬립이 감지되지 않아도 후륜을 구동할 수 있어 출발 때 유리하다. 통상 20~50%, 마른 노면에서 가속할 때는 50%의 구동력을 뒷바퀴에 나눠준다. 후륜에 전자식LSD를 채용해 좌우 뒷바퀴 간에도 최대 85%의 구동력을 밀어줄 수 있는 것 또한 최신 시스템의 장점이다. 미끄러운 노면이 아니더라도 과격한 코너링이나 고속 차선변경 시에는 언더스티어와 오버스티어를 감소시키기 위해 구동력을 능동적으로 배분해준다.
정속 주행시에는 연료절약을 위해 5~10%의 구동력만 뒷바퀴에 할당되는데, 100km/h에서의 엔진회전수는 1,650rpm 내외, 이때의 계기상 순간연비는 11km/L 정도다.
SRX의 장점 중 하나는 고급이 아닌 일반 휘발유를 넣어도 제시된 성능을 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공인 연비는 8.1km/L로, 수/우/미/양/가에서 ‘가’에 해당하는 ‘5등급’의 성적표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 시승기간의 평균연비는 8.3km/L로, 오히려 그보다 좋게 나왔다. 포악한 운전이 수반되는 이런 시승에서 공인연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수치가 나온 것은이례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번에 시승한 프리미엄 모델 외에 일부 옵션을 제외시켜 가격을 낮춘 럭셔리 모델이 함께 판매되고 있다. 가격은 각각 7,250만원과 6,350만원.가격표만 보면 비싸게 생각될 수 있으나 경쟁모델들의 사양과 가격을 놓고 보면 경쟁력이 뛰어나다. 개인적으로는 프리미엄 모델에만 적용되는 20인치 휠과 리얼타임 댐핑 스포츠 서스펜션, 스마트키, 뒷좌석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이 필요 없다 치고 럭셔리 모델을 선택할 것이다. 18인치 휠을 끼우면 바퀴가 작아 보이긴 해도 승차감은 더 낫지 않을까. 그런데 예상외로 잘 팔리고 있는 것은 프리미엄 모델이란다.
2세대 CTS를 처음 탔을 때, 이 다음에 나올 캐딜락의 신차는 정말 기대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SRX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STS와 DTS를 통합 대체한다는 XTS는 과연 여기서 더 좋아질 수 있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SRX는 캐딜락의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