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은 세아트의 전환점이다. 세아트는 당시 트렌드를 받아들여 앞바퀴굴림 방식의 뉴 127을 선보인다. 127은 피아트의 도움 없이 개발된 것으로 차후 4, 5도어 버전까지 나온다. 1975년에는 마트로렐 기술 센터가 오픈하면서 독자 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첫 독자 디자인의 모델은 133이다. 133은 850 플랫폼을 바탕으로 개발됐으며 차후 아르헨티나와 이집트에서 라이센스 생산되기도 했다. 엔진은 127에서 가져온 52마력의 1리터 엔진을 얹었고 인두카와 공동 개발한 1200/1430 스포트도 출시됐다.
1200/1430 스포츠는 보카네그라로 불렸다. 보카네그라는 스페인어로 검은 입을 뜻하며 그릴 주변이 검은색으로 치장된데 따른 별명이었다. 보카네그라는 2008년의 컨셉트카를 통해 다시 되살아났고 이비자 SC에서 실차에 적용됐다. 이때 세아트의 누적 생산은 4백만 대를 돌파했고 전국적인 딜러는 1천개를 넘었다.
하지만 세아트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1978년 세아트의 생산은 28만 8,487대에 불과해 큰 적자를 봤다. 이는 정부의 수입차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치면서 경쟁이 거세졌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세아트의 자국 점유율은 26%까지 떨어졌고 1982년에는 236억 5,500만 페세타라는 큰 적자를 냈다.
세아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3개 신차를 출시했고 새로운 블루 엠블렘을 선보였다. 론다, 말라가, 마르벨라, 이비자처럼 스페인 도시의 이름을 차명으로 사용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리고 폭스바겐 그룹과 파트너십을 맺으면 활로를 모색했다. 폭스바겐과 아우디의 모델을 세아트 네트워크로 판매했고 이후 생산도 맡았다.
1984년 나온 이비자는 세아트의 전환점이었다. 디자인은 쥬지아로가 맡았으며 엔진은 포르쉐가 제공했다. 그리고 1986년 6월 18일, 폭스바겐이 지분의 51%를 확보하면서 대주주가 된다. 그리고 그 해 말에는 지분을 75%까지 높여 폭스바겐 그룹 소속이 됐다. 세아트는 1989년의 생산 대수가 47만 4,148로 80년대 초반 보다는 개선된 실적을 보였고 1990년에는 폭스바겐 그룹 생산의 15.2%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