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미니를 카트처럼 달린다고 표현한다. 대형마트의 쇼핑카트가 아니라 ‘카트라이더’와 ‘마리오 카트’의 그 카트, 카트 경주장의 고카트(go-kart)말이다. 물론 서스펜션이나 조향기어도 없이 최소한의 뼈대만 갖춘 채 바닥을 훑고 다니는 카트에 비하면 미니는 아주 고급스럽고 편안한 탈것이긴 하다. 하지만 미니와 카트를 모두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그 생기 발랄하고 재미난 운전이 서로 닮아있음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글 / 민병권 (RPM9.COM에디터)
사진 / 박기돈 (RPM9.COM팀장)
특히 지붕을 열 수 있는 미니 컨버터블이라면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달려야 하는 카트의 운전체감에 좀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목적이라면 1.6리터 120마력 엔진의 미니 ‘쿠퍼’ 컨버터블은 어울리지 않는다. 지붕이 고정된 일반 미니보다 늘어난 무게가 의외로 두드러지게 발목을 잡아서다. ‘빠르게’보다는 ‘예쁘게’타는데 어울릴 차다. 하지만 같은 1.6이라도 175마력 직분사 터보 엔진을 탑재한 ‘쿠퍼S’ 컨버터블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붕붕거리는 배기음으로 귓전을 울리고 바람에 머리카락을 신나게 흩날리며 정신 없이 달릴 수 있다. 그럼, 쿠퍼S의 출력을 한 단계 더 높인 ‘JCW’ 컨버터블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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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W는 흔히 ‘미니의 고성능 버전’이라 불리는 쿠퍼S의 성능을 더욱 강화하고 내외장을 치장해 차별화된 즐거움을 제공하는 일종의 튜닝카다. F1을 비롯한 자동차 경주에서 이름을 날렸던 존 쿠퍼가 오리지널 미니를 손봐 탄생시킨 1960년대의 미니 쿠퍼가 그 시작. 이제 BMW의 미니에 흡수된 JCW(존 쿠퍼 웍스)브랜드에서는 211마력 엔진과 수동변속기를 탑재한 ‘미니 JCW’ 완성차를 내놓는 것 외에도 미니 오너들이 취향과 예산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튜닝 부품들을 공급하고 있다.
가령 쿠퍼S에 JCW 엔진튜닝킷을 적용하면 출력이 192마력으로 높아진다. JCW 에어로다이내믹킷을 선택하면 앞뒤 범퍼와 사이드스커트의 모양이 바뀌어 한층 스포티한 외관을 뽐낼 수 있다. 최근 국내에 출시된 JCW시리즈는 바로 이러한 JCW브랜드의 튜닝 부품들을 BMW코리아에서 조합해 쿠퍼S급 미니에 적용한 차량들이다. 현 세대의 미니 중에서는 해치백 버전이 2008년에 먼저 나왔고 올해에는 컨버터블과 클럽맨, 그리고 미니 50주년 기념모델인 캠든의 JCW버전이 추가됐다.
시승차는 미니 컨버터블 JCW. 쿠퍼S 컨버터블에 JCW엔진튜닝킷, JCW에어로다이내믹킷, JCW휠, JCW바닥매트, 추가 게이지를 적용했다. 새까만 신발은 ‘JCW LA 크로스 스포크 챌린지 – 블랙(R112)’. 타이어 사이즈는 205/45R17로, 순정 쿠퍼S의 것과 같다.
보닛을 장식한 두 개의 검은색 줄무늬는 ‘우리에겐 경주용 차의 피가 흐른다’라는 JCW의 모토를 떠올리게 한다. 도어에 적힌 ‘37’이라는 숫자 또한 40여 년 전 존 쿠퍼가 만든 ‘미니 쿠퍼S’가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첫 우승을 차지할 당시의 영광스러운 참가번호를 기리는 것이다. (이 마크는 기본 사양이 아니니 너무 요란스럽게 보이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미니+JCW의 경주차 혈통은 실내에도 이어진다. 결승점을 통과할 때 나부끼는 체커기의 무늬가 바닥 매트를 수놓았다. (팀 버튼의 영화 속에서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가 처음 도착한 방의 바닥무늬도 이렇긴 했다.) 계기판 앞에서는 변속시점을 알려주는 LED불빛이 요란하게 점등되면서 운전자를 자극한다. 국내에서는 수동변속기를 선택할 수 없음이 살짝 아쉽지만, 운전대에 달린 패들을 이용하면 원하는 시점에 기어를 올리거나 내릴 수 있다.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면 차의 반응이 더욱 기민해진다. 차분한 내장색상은 NG다.
엔진 힘이 얼마나 발휘되고 있는지를 퍼센트로 보여주는 속도계 오른쪽의 ‘상대 토크’ 게이지는 롤스로이스에 달린 ‘파워리저브’ 계기를 떠올리게 한다. (같은 BMW그룹에, 같은 영국차라고 아주 맞먹을 모양새다.) 터보차저가 오버부스트 상태가 되면 잠시나마 이 게이지가 100%를 넘어서기도 하는데, 이때의 최대토크는 27.6kg.m까지 높아진다. 평상시에는 1,750~5,000 rpm에서 25.5kg.m의 토크를 발휘한다.
JCW에서 내놓은 추가계기 자매품으로는 냉각수 온도 게이지와 횡가속도 게이지도 있다. 이들 역시 속도계 좌우에 부착하는 방식인데, 국내 사양의 해치백과 클럽맨 JCW에는 토크게이지와 함께 냉각수온 게이지가 달린다. 컨버터블의 속도계 왼쪽에는 그 대신에 미니 컨버터블 특유의 ‘올웨이즈 오픈 타이머’가 있다. 지붕을 얼마나 오래 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계기라니, 미니 브랜드 만의 재치가 엿보인다.
지붕은 주행 중에도 30km/h 까지는 여닫을 수 있다. 작동완료에는 15초가 걸리고, 완전 자동이지만 스위치는 누르고 있어야 한다. 열 때는 머리 위 덮개만 40cm 정도 열린 상태에서 동작이 한번 멈춘다. 이른바 선루프 모드다. 고정장치가 풀리면서 지붕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일반 컨버터블과 달리, 프레임부분이 고정된 상태에서 천장만 열리기 때문에 나름 쓸모가 있다. 게다가 선루프 모드는 120km/h 주행 중에도 작동한다.
‘작지만 잘 달리는 차’ 미니의 특징을 더욱 강조한 192마력의 JCW 컨버터블은 0-100km/h 가속에 7.3초가 걸리고 최고속도는 225km/h이다. 일반 쿠퍼S 컨버터블(175마력, 7.7초, 217km/h)보다는 분명 잘 나가지만, 700만원에 가까운 가격 차이만큼은 아닐 수 있다. 200km/h를 넘기고 나면 나머지 10%의 가속은 그리 쉽지 않다. 어차피 미니는 고속보다는 저속에서, 곧은 길보다는 굽은 길에서 재미있는 차다. 그리고 운전대의 묵직함이 주는 안정감만큼은, 덩치만 크고 속은 물러터진 여느 차들을 압도하고 남는다.
JCW로고가 새겨진 배기구는 시동만 걸어두어도 ‘드드드드’ 하고 나지막한 시위를 벌이지만, 별다른 부하가 걸리지 않은 상황에서의 정속주행이라면 120km/h까지 속도를 높여도 부밍음에 귀를 혹사시킬 일이 없다. 대신 앞 유리가 곧추선 탓인지 지붕을 열고 달릴 때는 바람이 많이 들이치고 지붕을 닫아도 외부 소음이 적지 않다. 처음에는 창문이 열렸나 싶어 뒤를 돌아보게 되는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함마저 재미로 승화시켜내는 것이 미니 컨터버블이요, JCW의 매력이다. 물론 이러한 즐거움을 누릴 때 사진처럼 헬멧을 쓸 필요는 전혀 없다. (공도에서 이러고 달리면 되려 위험하다.) 체감연비도 좋다. 트립컴퓨터상의 시승구간 평균 연비는 8.5km/L였지만, 어쨌든 50리터 연료탱크를 가득 채우니 신나게 달리고도 480km를 찍을 수 있었다.
미니 쿠퍼S 컨버터블의 가격은 4,470만원인데, 이에 비해 미니 컨버터블 JCW는 5,150만원이다. 명확한 경쟁모델이 없는 것이 미니라지만, 국내에 수입될 로터스 엘리스의 새 엔트리 버전이 5천만 원대의 가격으로 출시되면 JCW컨버터블과 저울질 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만큼 살 사람이 한정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두 차는 1.6리터 엔진을 얹었고 지붕을 열 수 있으며 영국차라는 공통점도 있다. 하지만 기왕에 엘리스와 맞붙일 생각이라면 뒷좌석을 없애 완전한 2인승으로 만든 미니 로드스터가 좋겠다. 수동으로 여닫는 지붕과 수동변속기, 그리고 JCW의 211마력 엔진을 얹은 미니 로드스터 컨셉트카는 양산계획이 확정된 상태니까. (관련 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