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5가 부분 변경되면서 엔진과 변속기가 확 바뀌었다. 확 달라지긴 했는데, 친숙하다. 이미 다른 BMW에서 본 것들이다. 그래도 부분 변경 모델에 파워트레인을 몽땅 갈아 치우는 BMW가 대단하기만 하다. x드라이브35i는 기존의 자연흡기 3리터를 대체하는 성격인데, 모든 면에서 낫다. 8단은 혼자서 바쁘지만 매끄럽기가 그지없다. 엔진 보다 변속기가 더 돋보인다.
글/ 한상기 (rpm9.com 객원기자)
사진/ 박기돈 (rpm9.com 팀장)
엔진과 변속기가 자동차의 상품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딱 잘라 말하긴 힘들어도 30% 내외는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엔진과 변속기를 새 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고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요즘처럼 연비가 중요한 시대에는 엔진과 변속기의 빠른 교체가 상품성을 높이는 포인트 중 하나인데, BMW는 이 같은 과제를 가장 빠르게 실행하고 있는 브랜드이다.
전통적으로 독일 브랜드는 풀 모델 체인지 주기가 긴 대신에 부분 변경 또는 이어 모델의 폭은 컸다.하지만 최근에서는 개선 폭이 더욱 커지고 있다. 요즘에는 부분 변경 모델에 엔진 또는 변속기가 바뀐 게 전혀 낯설지 않다. 포르쉐도 997 부분 변경에 새로운 파워트레인을 내놨다.
BMW는 6기통 터보 하나 잘 만들어서 전 라인업으로 확산하고 있다. 승용차부터 X5 같은 SUV까지 306마력의 기본형을 두루두루 적용하고 있다. 거기다 티 안 나게 터보 엔진도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 BMW의 첫 6기통 터보는 트윈(N54)이었지만 작년부터는 싱글(N55)로 바뀌었다. N54와 N55는 출력이 똑같기 때문에 무심코 지나간다면 헷갈리기 쉽다. 그렇다고 개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N55는 N54와 동일한 토크를 발휘하지만 발생 회전수를 1,200 rpm까지 끌어내렸다. 수치만으로 본다면 1,200 rpm은 최신 디젤보다도 낮은 것이다.
첫 부분 변경을 거치면서 X5의 라인업은 재정비 됐다. 우선 톱 모델은 407마력(61.1kg.m)의 x드라이브50i로, 아래급인 x드라이브35i에는 306마력(40.7kg.m)의 N55 유닛이 올라간다. 디젤도 모두 트윈파워 터보 유닛으로 교체됐다. x드라이브40d는 306마력(61.1kg.m), x드라이브30d는 245마력(54.9kg.m) 유닛이 적용된다. 즉 X5는 디젤과 가솔린을 막론하고 모든 엔진이 터보이다. 라인업 전체의 연비는 10% 이상 좋아졌다.
연비가 좋아진 것은 8단 변속기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BMW는 7시리즈를 시작으로 5시리즈, X5까지 8단을 확대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모든 차종에 8단이 올라갈 예정이다. 현재로서는 가장 많은 차종에 8단을 쓰는 브랜드가 BMW이다. BMW에 따르면 X5는 SUV 최초로 8단 자동을 단 모델이기도 하다. 뉴 투아렉도 최초 8단 SUV라 말하긴 하지만 X5가 먼저 발표했던 기억이다.
몇몇 차종에 보듯이 살짝 만지는 게 꼭 좋아진다는 법은 없다. 오히려 만지지 않은 것만 못할 수 있다. 하지만 X5는 만지니 한결 인물이 산다. 특히 뒤가 멋지다.
뒤는 범퍼 하단을 집중적으로 고쳐서 한결 세련된 모습을 만들어 냈다. 범퍼 하단의 디자인은 이전에 비해 입체적으로 변했고 양쪽으로 튀어나온 머플러의 형상이나 스타일도 한결 고급스럽다. 이번 변경을 위해 아껴뒀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앞도 손을 보았다. 최근 나온 다른 BMW처럼 그릴과 인테이크는 크기가 늘어났다. 얼핏 봐선 잘 티가 안날 수 있지만 이전 모델과 비교해 보면 느낌이 꽤 다르다. 그릴과 인테이크가 점점 커지는 것은 아이덴티티 강화와 함께 엔진이 모두 터보로 바뀐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안개등의 위치도 범퍼의 끝에서 그릴 쪽으로 붙었다.
타이어는 던롭의 SP 스포트01, 사이즈는 255/55R/18이다. 306마력 엔진의 X5라면 이 정도 사이즈가 적당해 보인다. X5에 휠이 18인치 이하면 어딘지 보기에 허전하다. 던롭 SP 스포트01은 성능 위주의 타이어지만 구름 저항을 줄인 제품이다. 연비 높이는데 효과는 있겠지만 측면 그립은 조금 아쉬운 타이어다.
좀 김이 빠질 순 있겠지만 실내는 (시승차의 경우) 색상 바뀐 게 가장 큰 변화이다. 기본적인 디자인이나 소재는 똑같다.BMW 시승차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갈색이 사뭇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실내는 시트의 가죽부터 도어 트림, 풋 레스트까지 모두 갈색이다. 볼보나 폭스바겐에서 간혹 보았던 색과 비교해도 느낌이 꽤 다르다. 그리고 X5는 워낙 검은색에 익숙해서인지 유난히 신선하다.
서라운드 뷰가 더해진 PDC(Park Distance Control)는 X5가 내세울 수 있는 최고 편의 장비 중 하나이다. 사실 X5 정도의 SUV는 주정차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복잡한 도심이나 시내에서는 말이다. 이럴 때 PDC는 위력을 발휘한다.
기어 레버를 R에 넣으면 모니터에 분할 화면이 뜬다. 왼쪽은 서라운드 뷰로, 스티어링과 연동되는 2개의 가이드 라인에 따라서 주차하면 어김없이 제자리를 찾아든다. 화질이 선명해 처음에는 그림인줄 착각했을 정도다. 서라운드 뷰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야기 때문에 타이어의 방향은 물론 옆에 바짝 붙은 차의 타이어도 확인할 수 있다. 분할 화면의 오른쪽에는 그래픽의 색상으로 앞뒤 물체의 접근 정도를 파악할 수 있어서 모니터만 잘 살피면 주정차가 상당히 편하다.
X5는 도어가 열려 있으면 후진이 되지 않는다. 도어를 연 채로 후진 기어를 넣으면 자동으로 P로 되돌아 온다. 모니터와 계기판 액정에는 경고 표시도 뜬다. 이전부터 있던 기능이긴 한데, 문이 열려 있으면 윈도우 상향이 원터치가 되지 않는 것도 안전을 위한 세심한 배려이다.
시트는 이전에 비해 쿠션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단단해진 것 같으면서도 탱탱하다고 해야할까. 몸에 힘을 줘 시트를 누르면 반동되는 힘이 일반적인 것 보다 조금 크다.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몸이 푹 잠기는 느낌은 아니다. USB 스틱으로 음악을 자주 듣는 사람이라면 단자가 글로브 박스에 있는 게 조금 불편할 수는 있겠다. 자고로 USB 단자는 센터페시아에 있는 게 가장 편하긴 한데 말이다.
2열은 X5의 덩치에 맞게 넉넉하고 쾌적하다. 아이러니하게도 2열 시트가 1열 보다 덜 탱탱하다. 시트의 착좌감이 1열 보다 낫다. 2열은 성인이 앉아도 레그룸이 충분하고 개방감도 좋다. 파노라마 선루프가 2열 승객의 머리 위까지 확장됐기 때문이다. 글래스가 커서 덮개가 닫히는 시간도 한참이다. 2열에는 듀얼 공조 장치와 열선 시트도 마련된다. 보통 컵홀더가 암레스트에 있지만 X5는 도어 포켓을 2구획으로 나뉘어 사용한다.
트렁크가 아주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반듯하고 정리가 잘 돼 있어 실제 보다 크게 보인다. 바닥 커버를 열면 수납함이 있고 이 수납 커버도 가스식 리프트로 지지된다. 트렁크 수납 커버에 가스식 리프트가 있는 건 흔치 않다. 그런 반면 해치 게이트는 수동이다. X5 35i의 가격이나 차급을 생각하면 전동식 개폐 장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차종을 막론하고 요즘의 BMW는 점점 조용해지는 것 같다. 신형 5시리즈는 렉서스만큼이나 정숙성을 강조했고 부분 변경된 X5도 아이들링 시 정숙성이 대단하다. X5는 디젤에 워낙 익숙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조용해지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35i는 기존의 30i와 동일한 3리터지만 출력은 306마력(40.7kg.m)으로 30마력 이상의 차이를 보인다. 변속기는 6단에서 8단으로 기어가 2개나 늘었다.
전반적으로 조용해지긴 했지만 BMW 6기통 특유의 음색은 살아 있다. 오히려 3리터 터보는 X5에 올라왔을 때 음색이 가장 괜찮은 것 같다. N54나 N55가 올라간 3, 5시리즈를 탔을 때는 자연흡기의 멋진 음색이 그리웠는데 X5는 그런 정도가 덜하다. 가속 시 밀려드는 엔진 음은 상당히 정제돼 있으면서도 우렁차다. 그러면서도 미끈하고 회전수에 비례해서 엔진 음량이 커지지 않는다. 지체 현상을 크게 줄였지만 고회전의 질감은 여전하다.
같은 엔진의 5시리즈와 비교 시 지체 현상은 조금 있는 편이다. 40.8kg.m의 최대 토크는 1,200 rpm에서 나오지만 실제로는 1,800 rpm 부근부터 강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이정도도 터보 엔진으로서 상당히 빠른 반응임에 분명하다. 5시리즈와는 차체 중량으로 인한 차이 같다. 0→100km/h 가속 시간은 6.8초로 30si에 비해 1초 이상 단축됐다.
X5 35i는 빠르다. BMW의 SUV답게 실제 가속도 빠르지만 체감도 빠르다. 306마력이긴 하지만 무겁고 공기 저항이 많은 SUV로 200km/h을 넘어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직선 가속에서는 3.5리터 배기량의 승용차보다도 고속까지 뻗는 힘이 좋다. 늘 밟는 길의 끝에서 X5 35i는 210km/h가 나왔다. 근래에 시승한 3.5리터 승용차는 여기서 200km/h 나오기가 힘들다. E 63 AMG의 경우 이 길의 중간쯤에서 230km/h이 넘었다.
1~4단에서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는 각각 52, 92, 145, 187km/h로 4단까지는 비교적 타이트하게 기어비가 붙어있다. 5단에서는 간격이 벌어지긴 하지만 거칠 것 없이 241km/h(헤드 업 디스플레이 상)까지 뻗어나간다. 제원상 최고 속도는 235km/h이다. 즉, 최고 속도는 5단에서 나오고 6~8단은 상황에 따른 항속용 기어이다. 8단으로 100km/h를 달리면 엔진의 회전수는 1,500 rpm에 불과하다.
8단 변속기는 기존의 6단 대비 직결감이 좋고 엔진의 효율을 극대화 해준다. 저속에서는 혼자서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그런 움직임을 눈치 채기 힘들 정도로 작동이 매끄럽다. 주행 중이나 정차 시 변속 충격도 거의 느끼기 힘들다. 엔진의 성능을 생각한다면 변속 패들이 없는 게 아쉽다. S 모드로 달리면 알아서 적극적인 변속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시프트 패들이 없는 게 옥에 티다.
하체는 시트와 비슷하다. 조금 탄탄해지긴 한 것 같은데, 특정 상황에서는 통통 대는 감각이 있다. 물론 SUV로서 그립이나 코너링 성능은 최고 수준이다. 타이어의 횡그립이 약한 대신 능동적인 AWD와 전자 장비로 커버한다. 코너에서 언더스티어가 날 것 같으면 AWD가 빠르게 구동력을 배분하고 DSC로 자세를 바로 잡는다. 물론 급작스럽게 타이어의 그립을 넘어서면 언더스티어가 나긴 한다.
2010년형 X5는 가속력과 최고 속도가 대폭 높아지면서 편의 장비도 늘었다. 그러면서 연비도 소폭 개선됐다. 새 엔진과 8단 변속기의 채용 효과를 제대로 보고 있는 셈이다. 가격은 400만원이 조금 넘게 올랐는데 최근의 트렌드에 비해서는 아쉽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좋아진 부분을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