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는 이름이 삼백팔이에요? 아니면 삼천팔이에요?” 처음에는 푸조 308과의 차이를 묻는 것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 트렁크에 붙은 이름표에서 300과 8이 살짝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서 물어보는 것이란다. 그 동안 아무 고민 없이 ‘삼공공팔’로 읽어왔던 나는 살짝 당황스러웠다.
‘공공팔’이라는 국제전화스러웠던 이름은 이번에 꼬리표를 달았다. 새로 추가된 2.0이 ‘3008 프레스티쥬’, 먼저 나온 1.6은 ‘3008 엑셀랑’이란다. 르노삼성차의 ‘에디시옹 스페시알’마냥 이국적인 느낌, 프렌치 프라이틱한 느끼함이 철철이다. 개인적으로는 엑셀랑의 어감이 좋지만 1.6 MCP는 이미 시승을 했다. 이번 시승차는 영어의 프레스티지와 구분하기 위해 ‘쁘레스띠쥬’라고 발음해야 할 것만 같은 2.0. 예상대로 1.6, 아니 엑셀랑이 남겼던 아쉬움들을 깔끔하게 걷어낸 모델이다.
우선, ‘멀미유발자’라는 푸념을 들어야 했던 MCP 변속기 대신 일반 자동변속기를 적용했다. 자동제어식 수동변속기인 MCP는 장점과 단점이 극명한 양날의 검. 유럽에서는 잘만 팔린다지만 우리나라 시장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운전자(그리고 구매자)를 가리는 주범이 될 터였다. 그에 비해 푸조가 꽤 오래 전부터 써온 6단 자동변속기는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난한 물건이다. 게다가 찰떡 궁합인 2.0 HDi와의 결합이니 주행성능은 안타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구조상 수동변속기인 MCP와의 조합인 덕분이기도 했지만, 110마력 24.5kg.m의 힘을 내는 1.6HDi 디젤엔진도 3008을 움직이기에는 부족하지 않았었다. 그러니 프레스티쥬의 2.0HDi 디젤이 밟는 족족 시원스레 나가는 느낌을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래도 푸조 차들에서 익숙해진 138마력 32.6kg.m 2.0 HDi엔진치고는 너무 잘나간다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같은 엔진이 아니다. 출력이 163마력으로 높아졌고 최대토크는 2,000rpm에서 34.6Kg.m. 최대토크 발생시점은 같지만 저회전에서의 토크가 50%이상 향상됐고 최고출력도 예전의 4,000rpm보다 낮아진 3,750rpm에서 나온다. 어쩐지~ 어쩐지~
그러니, 기존 엔진을 얹은 308 해치백의 최고속도 197km/h를, 덩치 크고 무거운 3008도 계기판 상으로는 똑같이 흉내 낼 수 있는 것이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변속감은 말해 무엇 하랴. 저속에서는 가속페달 입력에 대한 반응이 살짝 늦은 듯 하지만 변속기의 스포츠모드 버튼을 누르던지 아예 수동모드를 이용하면 될 일이다. 변속패들이 빠진 것은 아쉽지만 엑셀랑이 달린 패들이라면 노쌩큐. 말뚝처럼 서있는 레버를 앞뒤로 움직여 조작하는 변속도 나쁘지는 않다. 차량성격을 생각하면 자주 쓸 일은 없을 테니.
휠 타이어 설정은 엑셀랑과 동일하고, 잔요철에서 쿵쿵거리며 단단한 느낌을 주는 것도 여전하다. 대신 큰 요철은 부드럽게 타고 넘어 승차감은 호감 형. 반칙을 쓴 BMW X1과 달리 확실하게 높은 운전석 위치를 가졌고 그만큼 넓은 시야를 주지만, 높은 차답지 않게 탄탄한 해치백의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는 유럽 스타일의 하체를 선호하는 이들에게 어필할 만 하다. 스티어링휠도 대체로 묵직한 편이라 신뢰감을 준다.
특히 프레스티쥬 모델에만 달린 다이내믹 롤 컨트롤 시스템이 이러한 장점을 부각시킨다. 명칭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차체의 좌우 쏠림을 줄여주는 장치다. 후륜 좌우의 댐퍼를 유압 통로로 연결하고, 그 사이에 댐퍼 하나를 더 달았다. 차가 한쪽으로 쏠릴 경우 발생하게 되는 양쪽 댐퍼의 압력 (스트로크) 차이를 제3의 댐퍼가 억제해주는 것이다. BMW의 다이내믹 드라이브처럼 앞뒤 안티롤바를 비틀어 주는 방식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게 제법 효과가 있다. 무모하게 진짜 해치백을 흉내 내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승차감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일정부분 운동성능을 확보하고 지나친 가격상승까지 막았으니 서스펜션 설정으로 칭찬받아온 푸조차 답다. -푸조 시트로엥 그룹은 이 시스템을 납품하는 KYB(가야바)에게 혁신상을 주었다.-
3008의 근간이 되는 308패밀리에서 익히 경험한 바 대로 소음과 진동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100km/h, 6단에서 엔진회전수는 1,900rpm정도. 엔진소음은 멀리서 들려오고 바람소리나 노면소음도 잘 억제되어있다. 다만 시승차는 속도가 130km/h쯤에 이르러 엔진회전수가 2,000rpm을 넘어가면 거슬리는 소음이 있었다.
배기량이 높아지고 변속기도 수동(기반)에서 자동으로 바뀌었으니 1.6MCP의 엑셀랑에 비해 연비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프레스티쥬의 공인연비는 15.6km/L로, ‘2.0리터 디젤/2륜구동/자동변속기 SUV중 최고 연비’임을 자랑하는 투싼ix와 동일하다. 단지, 19.5km/L의 ‘엑셀랑’한 연비를 달성한 1.6 MCP에 뒤질 뿐이다. 총주행거리가 4,500km를 넘긴 이번 시승차의 240km구간 평균연비는 13.1km/L가 나왔다.
외관은 언뜻 보기에 엑셀랑과 차이가 나지 않는다. 휠이라도 커질 법 하지만 사이즈는 물론225/70R17규격의 미쉐린 프리머스HP 타이어까지 같다. 외관, 성능, 승차감 면에서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겉모습에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엑셀랑에 없었던 전방 주차센서가 추가됐고, 헤드램프가 할로겐에서 제논으로 바뀌면서 안쪽 구성요소들의 배치가 달라졌다. 앞바퀴 조향에 따라 헤드램프의 조사각이 바뀌고, 세척장치도 달렸다.
실내에 가죽마감이 적용된 것은 국내 시장상황을 고려해 반가운 변화다. 엑셀랑에 빠졌던 시트 열선과 운전석 전동 조절 기능도 들어갔다. 8웨이 전동조절 시트가 반가운 것은 그저 손가락만 까딱하면 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수동조절 시트의 등받이 레버가 불편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요추받침은 운전석 것만 수동으로 조절할 수 있다.
엑셀랑에도 한국형 내비게이션이 기본 적용되지만 지난 번 시승차는 인증용으로 들려온 지라 이것이 빠져있었다. 프레스티쥬를 통해 처음 만난 3008의 내비게이션은 푸조, 혹은 수입사인 한불모터스 특유의 대시보드 상단 매립형. 운전 중 잘 보이는 위치에 있는 대신, 손가락으로 화면을 찍기에는 거리가 꽤 멀다. 화면 바로 옆에 USB단자와 메모리 슬롯이 있어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재생하기에 편리한데, 순정 오디오와는 완전히 독립된 시스템이라 내비게이션의 자체 스피커로만 재생되는 것이 흠이다. 순정오디오의 AUX단자는 가운데 팔걸이 덮개 안쪽에 마련되어 있다.
그 외에, 3008의 특징과 사양들은 그대로이다. 전투기를 모티브로 한 운전석 구성, HUD, 차간거리 경보장치, 실용적인 수납공간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파노라마 글라스 지붕까지. 자동헤드램프와 자동와이퍼, 듀얼 에어컨, ECM룸미러를 갖췄고, 유리창은 네 개 모두 원터치로 오르내린다. 뒷좌석에는 측면 햇빛가리개와 바닥 수납공간도 있다. 주차브레이크는 전동식이고 경사로 밀림 방지 기능을 제공한다. 조명과 계기판 메시지는 꼼꼼하고 친절하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투박하게 받아들여질 수는 있다. 3008의 만듦새가 가진 매력은 트렁크에서도 잘 드러난다.
푸조 3008 프레스티쥬는 디젤이지만 유로5를 만족시키는 저공해차량이기 때문에 5년간 환경개선 부담금이 면제된다. 차 값은 4,250만원으로, 엑셀랑보다는 400만원이 더 비싸다. 3천만 원대와 4천만 원대는 어감부터 다르긴 하지만, 이정도 차이라면 많은 이들이 미련 없이 프레스티쥬를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글/ 민병권 (www.rpm9.com 에디터)
사진 / 박기돈 (www.rpm9.com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