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폭스바겐 골프라고 하면, 대중적인 수입차이자 해치백의 교과서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차로서, 기본적으로는 ‘연비 좋고 실속 있는’ 2.0 TDI와 ‘핫해치의 대명사’ GTI가 양동작전을 펼치고 있는 모양새다. 이 두 모델은 사용 연료가 다르고 지향점도 딴판이지만, 2.0리터라는 동일 배기량에 연료 직접 분사 방식과 과급기(터보 차저)를 채용했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그런데, 200마력이 넘는 출력을 가진 골프 GTI는 아무래도 상징성이 강한 모델이다 보니, 주력을 맡고 있는 것은 역시 140마력의 TDI. 그리고 둘 사이의 절충안이라 할 수 있는 GTD(170마력)가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TDI와 양동작전을 펼쳐야 할 것은 (터보가 없는) 가솔린 직분사 엔진의 FSI 모델이 되겠지만, 우리나라의 유별난 배기가스 규제책 -유럽 기준을 따르는 디젤차와 달리 가솔린 차는 미국 기준을 따르기 때문에 미국시장용 버전이 없는 낮은 배기량의 가솔린 차는 수입이 어렵다 - 덕분에 시장에서는 사라진 지가 꽤 됐다. 이번에 시승한 1.4 TSI도 같은 이유로 국내에는 수입될 수 없는 차였지만 한-EU FTA와 관련해 소량(350대)이나마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이다.
2009년 국내에 출시된 6세대 골프는 올 들어 폭스바겐이 수입차 시장에서 3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특히 골프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버전을 연타로 들여와 위상을 더욱 강화하기로 한 폭스바겐 코리아의 전략이 유효했다. 가령 지난 1월에 300대 한정으로 출시됐던 골프 1.6 TDI 블루모션은 3,090만원의 가격과 21.9km/L의 연비 등이 화제를 모으며 판매 5일만에 매진 사례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번 골프 1.4 TSI 역시 그 연장선 상에 놓인 모델이다. 배기량이 낮다 보니 친환경 모델인가 싶기도 하지만 블루모션 버전에 적용된 효율 좋은 디젤 엔진과 엔진 스타트 스톱 시스템, 제동 에너지 회생 시스템 등의 연비 향상 공식은 동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요소는 이쪽이 한층 강력하다. 공존할 수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던 터보차저+수퍼차저 동시채용의 ‘트윈 차저(Twincharger)’ 시스템에 직분사 방식까지 더한, 유일무이한 차이기 때문이다.
터보차저와 수퍼차저는 엔진의 연소실에 공급되는 공기를 압축해서 밀어 넣어주는 과급기들인데, 작동 방식이 서로 다르다. 터보차저가 배기가스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반면, 수퍼차저는 엔진의 크랭크축에서 나오는 힘을 이용하는 것. 이 때문에 두 방식은 나름의 장단점을 갖고 있고, 자동차회사들은 추구하는 방향과 제품 성격에 따라 어느 한쪽을 선택하곤 했다. 가령, BMW의 미니 쿠퍼S는 1세대 때 수퍼차저였다가 지금은 터보차저로 바뀌었고, 아우디 A6의 3.0 TFSI는 과거 터보차저였다가 지금은 수퍼차저가 됐다.
그런데, 폭스바겐은 양쪽을 한꺼번에 사용해 서로의 단점을 보완시키고 오히려 시너지를 일으킨다는 기가 막힌 발상을 현실화한 것이다. 덕분에 1.4 TSI는 1,390cc에 불과한 배기량으로 160마력의 최고출력을 내고, 2.5리터 V6 엔진을 능가하는 24.5kgm의 최대토크를 가졌다. 이 풍부한 토크가 1,500rpm의 낮은 회전수에서부터 시작돼 4,500rpm까지 계속 될 뿐 아니라, 1,000rpm을 갓 넘어선 시점부터 이미 2.0 엔진을 능가하는 수준의 토크를 발휘한다.
여기에 변속기까지 7단 DSG를 적용했다. 자동변속기이면서도 수동 변속기 이상으로 효율이 좋고, 반응까지 민첩한 폭스바겐의 자랑거리이다. 특히 7단 유닛에 와서는 건식으로 바뀌면서 무게가 줄고 효율이 더 높아졌다. 이렇게 낮은 배기량에서 7단 변속기를 쓴다는 것 자체도 주목할 일이다.
이들을 잘 조합해낸 골프 1.4 TSI는 0-100km/h 가속에 8초가 걸리고 최고속도는 220km/h에 이른다. 100km/h 정속 주행시의 엔진회전수는 2,000rpm에 불과하다. (재래식 6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한 미니 쿠퍼S도 같은 회전수이긴 하다.) 우리나라 공인연비는 14.6km/L인데, 평소보다 고속도로 구간이 좀더 많았던 이번 시승에서도 딱 그만큼의 평균연비를 얻을 수 있었다.
공인연비만 놓고 보면, 비슷한 체구인 현대 i30 1.6가솔린(15.2km/L)보다 못하지만, 동력 성능이 i30 2.0가솔린(12.4km/L)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배기량에 따라 세금을 책정하는 우리나라에서는 i30보다도 연간 자동차 세금을 덜 낸다는 장점까지 있다.
골프 TDI나 블루모션에 비하면 토크가 약하고 연비도 떨어지지만, 대신 출력이 높고 상대적인 정숙성이 뛰어나니 아쉽지 않다. 하다 못해 출발도 더 부드럽다. DSG라고 하는 변속기는 장점 못지 않게 까탈스러운 모습도 자주 보여주곤 해왔지만, 이 1.4 TSI에서 보여주는 수준이라면 그 방식 자체를 의식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클러치 미트 시점까지 약간의 시차가 느껴지는 것 정도가 이질감을 줄 뿐이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키를 돌리면 시동이 걸린다. 시동을 처음 걸 때나, 그 직후의 냉간 중에는 소리가 다소 크고 진동 유입도 두드러지지만, 이것은 금새 잦아든다. 가속 때는 일반 엔진과는 조금 다르게 연주되는 소음들이 재미있다. 낮은 회전수에서 가속페달을 확 밟으면 왱왱거리는 수퍼차저의 독특한 작동음이 들리고, 발을 떼면 터보차저 계통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다. 양쪽 다 흥미를 유발할 뿐, 거슬리는 소음은 아니다.
기대치가 높았던 탓인지 처음에는 생각보다 안 나간다 싶었다. 하지만 오르간 타입 페달에 발을 제대로 위치시키고 까딱거리면, 굳이 변속레버를 스포츠모드나 수동모드에 옮기지 않고도 활달한 주행을 즐길 수 있다. 비슷한 성능의 자연흡기 엔진-혹은 디젤 엔진-을 얹는 것과 비교하면 앞머리가 더 가볍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최고속도 영역까지 너끈히 오르내릴 정도로 고속에서도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중적인 자동차들을 만들어 파는 한편으로 1000마력이 넘는 슈퍼카 또한 개발해낼 수 있는 거대 자동차 그룹으로서의 폭스바겐이 가진 기술력을 실감할 수 있는 종합선물 세트 같은 차가 바로 골프 1.4 TSI이다. 여기 얹힌 트윈차저 엔진 자체는 2005년 말에 이미 시장에 나왔고, 그 동안의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소형이면서도 강력한 힘과 뛰어난 연비를 동시에 갖춘, 혁신적인 발전을 이루어낸 엔진이니 그럴 수 밖에. 유럽의 경우 골프뿐 아니라 다른 모델들에서도 만날 수 있는 1.4 TSI (트윈차저) 구동계는 ‘최소의 연료로 최대의 다이내믹한 주행 성능’이라는 개발목표를 충실히 만족시켰다.